- 그때의 나는 무엇을 버텼고, 무엇을 기다렸을까
방 한구석, 깊숙한 서랍 속.
노트 몇 권이 겹겹이 쌓여 있다.
꺼낼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손이 갔다.
종이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한 장을 넘기니,
삐뚤삐뚤한 글씨로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라는 문장이 나왔다.
그 글씨를 따라 손끝으로 문장을 더듬는다.
다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계절의 마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잉크는 조금 바랬고
감정은 선명했다.
‘그땐,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하려다 말았다.
지금의 내가 겪는 버거움도,
언젠가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을 일기가 되겠지.
한 페이지 더 넘기니,
자잘한 글씨 사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기다림.”
무엇을 그렇게 기다렸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일 수도 있었고,
‘괜찮아지는 어떤 순간’일 수도 있었겠지.
종이 위에 적힌 건 마음의 잔상.
흘러내린 감정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던 흔적.
지금 다시 그런 일기를 쓰라면
나는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오늘은 별일 없었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정도의 말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라져도,
그때의 내가 남겨둔 문장은
내 마음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그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살아내기 위한 방식이었으니까.
가끔은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래도 잘 견디고 있구나.”
하고.
일기장을 덮고,
서랍에 조용히 다시 넣는다.
햇살이 비스듬히 책상 끝을 스친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또 한 줄의 기록으로 남는다.
당신은,
지금의 당신을
기록해두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