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l 아무도 읽지 않는 일기장을 펼칠 때

- 그때의 나는 무엇을 버텼고, 무엇을 기다렸을까

by SH

방 한구석, 깊숙한 서랍 속.

노트 몇 권이 겹겹이 쌓여 있다.

꺼낼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손이 갔다.


종이 냄새는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한 장을 넘기니,

삐뚤삐뚤한 글씨로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라는 문장이 나왔다.


그 글씨를 따라 손끝으로 문장을 더듬는다.

다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계절의 마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잉크는 조금 바랬고

감정은 선명했다.


‘그땐,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생각하려다 말았다.

지금의 내가 겪는 버거움도,

언젠가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을 일기가 되겠지.


한 페이지 더 넘기니,

자잘한 글씨 사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기다림.”


무엇을 그렇게 기다렸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일 수도 있었고,

‘괜찮아지는 어떤 순간’일 수도 있었겠지.


종이 위에 적힌 건 마음의 잔상.

흘러내린 감정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던 흔적.


지금 다시 그런 일기를 쓰라면

나는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오늘은 별일 없었고,

그래서 다행이었다.”

정도의 말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기억은 사라져도,

그때의 내가 남겨둔 문장은

내 마음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그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살아내기 위한 방식이었으니까.


가끔은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래도 잘 견디고 있구나.”

하고.


일기장을 덮고,

서랍에 조용히 다시 넣는다.


햇살이 비스듬히 책상 끝을 스친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또 한 줄의 기록으로 남는다.


당신은,

지금의 당신을

기록해두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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