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제리라이프 : 나의 퍼스널컬쳐코드

나를 찐~ 하게 들여다보기

by BRAND ACTIVIST

1.저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딱히 없기 때문입니다.


몇년 전부터 육식을 중단하긴 했지만 원래 딱히 가리는게 없었고 다 잘먹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르신들에게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깨작 대지도 않고 뭐든 덥썩덥썩 잘 먹긴 했지만 식탐이 있는 편은 전혀 아닙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반찬투정 같은건 제게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먹든 감사히 잘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왕이면 ‘먹고 싶은 것이 좀 더 선명한 사람이 고르는 음식을 따라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상대방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 음식과 그 사람간의 스토리가 궁금해지고 그것을 관찰하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게는 최고급 음식점부터 길거리 음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이 소중하고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모두 귀합니다.


저에게 있어 음식의 퍼스널컬쳐코드는 ‘상대방의 문화체험’ 입니다.


2. 패션은 20대 때 잠시 깊은 관심이 있었으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게 되면서 관심에서는 멀어지게 되었지만 아내가 좋아하다보니 꾸준히 접할 수 밖에 없었고 아들이 엄마 따라 패션을 사랑하게 되면서 저는 반강제로(?) 비즈니스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패션의 퍼스널컬쳐코드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 입니다.


3. 건축분야는 사회생활을 목수로 시작해서, 집기제작, 인테리어, 건설시행을 두루 경험한 만큼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 꿈은 후순위로 보류 시켜놓았고 평상시에는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잊을만 하면 한번씩 테마파크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잡아달라는 일이 들어오곤 합니다.


최근 5년 후 건설시행을 시작 해보겠다는 목표를 잡고 마스터플랜을 잡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소비자로써의 욕구는 차단하고 있고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건축의 퍼스널컬쳐코드는 ‘마지막 꿈’ 입니다.


4. 자동차는 20대 때 외관을 아주 잠시 좋아했으나 차를 타면 멀미를 하고 멀미 때문에 운전을 해도 졸음이 오는 편이라 중요한 고객들과 이동을 할 때도 그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편 입니다.

그러다보니 자동차에는 원체 관심이 없고 상하이에서 도요타자동차 관련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단칼에 거절을 했습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제게 있어서 자동차의 퍼스널컬쳐코드는 ‘예쁜 장식품’ 입니다.

(오토바이는 좋아합니다만 가족들이 끔찍하게 싫어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5. “제이든은 어떤 걸 잘하세요?” 라는 질문은 가장 난처해하는 질문 입니다.

딱히 싫어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다양한 알바를 해봤지만 달력 상단에 고정틀을 끼우는 알바만 15일만에 도망 쳤을 뿐, 모든 알바에서 사장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거의 대부분의 알바에서 월급 외에 따로 용돈을 받았습니다.


고졸이 23살 나이에 창업을 했는데 무슨 지식과 경험이 있었겠습니까.

항상 규모가 작은 회사를 운영했고, 사업을 막 시작하는 고객을 상대했기 때문에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수익이 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회사 하나를 만드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 할 줄 압니다.

셋팅 된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거의 다 할 줄 알고요.


조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부터 구멍가게까지 정말 다양한 회사들과 일을 해봤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일부터 한사람을 깊게 상대해야 하는 일까지 다양하게 해봤는데 제게는 모두 소중했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이 촉박하거나 자금이 쪼들리거나 마땅한 사람이 없거나…… 뭔가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랜 고객들에게 “제이든, 혹시 이런 것도 해봤어요? 아니 안해봤어도 상관 없어요. 할 수 있겠어요? 제이든이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그냥 드롭할 수 밖에 없네요.” 라는 연락을 자주 받곤 했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일의 퍼스널컬쳐코드는 ‘문제해결’ 이었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30분 내로 낼 수 있고, 내가 낸 대안은 모두 내가 직접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고객들은 저를 해결사 처럼 활용 했습니다.


> 뜬금 삼천포

어릴 적에는 대금을 많이 떼었지만 경쟁력 있는 속도와 퀄리티와 가격으로 승부를 걸면서 선불 또는 당일 결제 구조로 일할 수 있었고 그 뒤로는 떼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고객을 대할 때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습니다.

- 결정권자와 직접 일한다.

- 작은회사나 개인에게는 선불 또는 당일결제를 받는다.

- 큰 회사의 경우 두배에서 세배를 부른다.

(그게 싫으면 선불 or 당일결제를 해달라고 한다.)

- 그 정도로 나를 원하지 않는 고객과는 일하지 않는다.


6. 제게는 ‘사랑’과 ‘가족’이 목숨보다 중요하고 개인이 바로 서고(P), 가정이 바로 서고(F), 커뮤니티로 확장 될 때(C) 비로소 위대한 브랜드의 토대가 된다는 신념(PFC Branding)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며 성장한 브랜드의 스토리는 가급적 참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트렌디한 스타일이 있는 경우 그럼 부분만 참고 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본적으로 부부관계와 자녀교육에 있어서 심도 있게 공부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는 분들을 만나면 그 대상이 고객이라 할지라도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자연스럽게 저에게 잔소리를 듣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많은 기업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시대이고 브랜딩과 마케팅에서 소통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랑과 관계를 오직 책으로만 배운 사람들이 너무 많고 비즈니스사회에서 맺는 얕은 관계와 얕은 주제의 대화만 놓고 관계와 소통을 논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습니다.


저는 브랜드가 더 큰 건강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고객의 경험을 한층 더 깊이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고객들과의 소통 이전에 브랜드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그 경험에 있어서 모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처럼 모두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외치고 있는 시기에 한층 더 깊은 경지의 소통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난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룬 가정에서 어려워 하고 있는, 가정경영 속에서의 소통을 보여줄 수 있어야 비로소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하며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자연스럽게 브랜드확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이태원클래스를 보신 분들은 ‘장가’를 기억하실껍니다.

그런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포장되어 알려져선 안되지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브랜드컨설턴트들과 광고홍보마케팅 분야의 비즈니스맨들이 장가 같은 브랜드를 양산해왔는지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본을 놓치는 가장 큰 원인은 ‘가정경영’에서 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가정경영에서 무릎이 꿇리고 겸손해지고 아주 작지만 단단한 성장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오랫동안 지속성장이 가능한 위대한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브랜드의 퍼스널컬쳐코드는 ‘커뮤니티’ 입니다.

‘나다움’을 찾은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너다움’을 찾도록 도와주고 그 두가지가 깊이 있게 더해져 ‘우리다움’으로 확장해본 경험이 삶에 아로새겨져 있을 때 비로소 커뮤니티가 단순한 흥미의 확장이 아닌 ‘건강한 관계의 체험’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힐 수 있습니다.


> 저는 배우자와 자녀에 대해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의주시를 하는 편입니다.

네, 박사학위는 당사자가 주는 거고요.

배우자에게서 “당신은 나를 참 잘 아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라는 말을 듣거나 자녀에게서 “엄마는(아빠는) 저를 참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라는 말을 들으셨다면 학위를 받으신 겁니다. ㅎㅎㅎ


7.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죽음’과 가까이에서 동행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그 죽음의 의미가 상당히 부정적인 것에서 출발해서 부정적인 종착역에 도달하는 것 같은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아주 멋진 것에서 출발해서 아름다운 종착역에 도달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두가지 개념의 차이는 가히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개념이 바뀌기 전 “난 왜 사는가?”와 개념이 바뀐 후의 “난 왜 사는가?”가 완전히 달라졌고, 내 삶을 대하는 태도 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매사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매순간 목숨을 걸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매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인지하지 않고(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무척 많습니다.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의 ‘하루’는 농도가 다릅니다.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의 ‘관계’는 농도가 다릅니다.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의 ‘사랑’은 농도가 다릅니다.

커피한잔도 밥 한술도 양말 한짝도 낡은 집도 털털거리는 자동차도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 농도가 달라집니다.


저에게 있어서 죽음의 퍼스널컬쳐코드는 ‘삶의 농도’ 입니다.

제가 순간순간을 농도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죽음이 있기 때문이기에 저는 죽음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 가족독서토론시간에 아들이 고른 책 ‘시간이 멈춘 방’을 읽으면서(유품정리사에 관한 책) 모두가 원하는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파티처럼 해달라고 했습니다.

옷도 알록달록하게 입고 오라고 하고, 클럽뮤직 틀어놓고, 영정사진 붙여놓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과 멋지게 살았던 순간들의 사진과 영상을 틀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리워서 우는 건 좋은데, 안타까워 하진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마지막이 어울리는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제 장례식이 열리는 클럽에 와서 먹고 마시며 춤을 추며 저를 추억할 수 있도록……


8. 저는 이처럼 특정 단어가 제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있게 파고드는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는지 최초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떠올려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클로테르 라파이유 박사의 컬쳐코드라는 책을 읽은 뒤로 심리학 공부에 푹 빠져 지내면서 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퍼스널컬쳐코드를 끄집어 내어 대화 해보려는 시도를 제 자신과도 오랫동안 나누었고 아내와도 오랫동안 나누었습니다.


그 뒤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계상담을 해주면서 사이가 좋지 않은 연인,부부,형제,동료 등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 경우는 대부분 ‘같은 표현이지만 다른 의미가 담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코드토크’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내 자신과 대화 할 때 어떤 식으로 대화 해야 하는지……

타인과 대화할 때 진심으로 깊어지고 싶다면 어떤 주제로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지……

관계가 어려우신 분들께 그것을 알려드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지인들께서 “이런 얘기는 제이든한테 밖에 안해봤어요.”

“내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제이든 이에요.” 라고 말씀해주실 때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찐한 소통의 경험을 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9. 어떤 걸 잘하냐는 질문이 제일 난처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작년 초에 제가 스스로 ‘내가 제일 잘하는게 뭐지?’ 라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면서 엄청난 고통이 시작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상담할 때 써먹고 있는 퍼스널브랜딩 도출기법을 제 자신에게 적용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해봐도 저는 너무 많은게 나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들에게 물어봐라” 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고객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를 딱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뭔가요?

제가 어떤 걸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같은 대답을 했는데 첫번째 대답은 예상이 적중했고 두번째 대답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00%가 같은 대답을 하다니!)


첫번째의 대답은 “괴짜”


표현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괴짜 외에 특이한 사람, 또라이, 유니크한 사람, 이상한 사람 등


두번째의 대답은 “아이 돌보는 걸 잘하지!”


미칠 것 같았습니다.

‘아이 돌보는 것으로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지?

이게 무슨 브랜드가 되지?’

머리가 복잡해지기만 할 뿐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생각하느라고 세월을 다 낭비해버릴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시간을 정한 뒤 생각하는데 생각할 때는 미친듯이 깊고 넓게 전개하지만 시간이 다 되면 결론을 내리고 불도저 처럼 실행에 들어가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BM이 없이 아스빌리지가 만들어졌고 아스빌리지 자체로는 아무런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아스빌리지를 통해 우리 가족의 패밀리브랜드가 선명해졌고 많은 분들이 깊이 신뢰해주시면서 파생된 프로젝트들이 하나둘 도출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20년 전부터 야학 커뮤니티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교육의 장에 깊이 뛰어들지 않았다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청사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PFC브랜딩에 대해 꽂히지 않았다면, 위대한 가문을 만들어 명품브랜드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언스쿨링을 하겠다며 회사를 접는 일은 없었을 것 입니다.


다양한 도전과 기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언스쿨링에 시간을 쏟으면서 생활비를 버는게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1패밀리1커뮤니티&1브랜드1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그런 시대가 도래할꺼라고 강조 했었습니다.

2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드디어 ‘커뮤니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랜 세월동안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주변으로부터 커뮤니티전문가로 인정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아스빌리지를 만들 자신도 없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이른 나이에 직접 클래스를 운영하며 급성장 하는 경험도 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간의 상담경험과 비즈니스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가정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아스빌리지의 찐팬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가족 모두에게 동기부여 되는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메타코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이 13살 나이에 대표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딸이 14살부터 스토리텔러&종합엔터테이너로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다 해볼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아이 모두 3살부터 꾸준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며 경력을 쌓아가는 것을 도와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엄마아빠가 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부부토론을 했고 깨달음을 글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부부가 서로의 퍼스널브랜드에 관심을 기울이고 머리 맞대고 고민하지 않았다면, 고릴라아재는 대중에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스파르탄리딩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 입니다.


되돌아보니 저는 아이 돌보는 걸 제일 잘하는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자라보며 책임감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데 특화 되어 있었습니다.


10. 주변 어른들과 선배들이 한우물만 파라고 할 때마다 그말을 무시하고 내 길을 계속 걸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분들이 본인들의 자산을 보여주며 돈을 모아야 한다, 재테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할 때 저는 그분들의 배우자와 자녀에 시선이 닿아 있었고 그들의 말을 절대 듣지 말아야겠다고 각오했었는데 그 결정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때 그분들은 모두 가정이 깨진 채 돈만 많거나, 가정이 깨진 채 돈도 없이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고 계시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가득한 채 살아가고 계십니다.

퍼스널브랜드? 그런거 생각도 못합니다.

아니 생각을 하지만 도통 잡힐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사실 그들의 퍼스널브랜드는 오랜 시간 동안 ‘돈 버는 기계’ 였습니다.

그 정체성을 이제 와서 부정하며 바꾸려니 잘 될리가 없습니다.


모두들 이제와서 “네가 제일 현명한 선택을 했다.” 라고 말해줍니다.

어린시절부터 저를 골치덩이로 생각하시고 “도대체 네가 제대로 하는게 뭐가 있냐!”고 말씀하셨던 부모님도 이제는 저에게 부럽다고 해주시고 고맙다고 해주십니다.

(고민이 있을 때면 “네가 우리집 목사님이다”라고 말씀 해주시며 두분이 나란히 앉아 부부상담을 받으시곤 합니다.

저와 아내는 두분을 부모님이 아니라 저희의 아들과 딸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인생의 퍼스널컬쳐코드는 ‘My Way’ 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끊임 없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인가?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난 누구인가?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난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진리와 섭리란 무엇일까? 동서고금의 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난 무엇을 부러워 하고 있는가? 난 어떤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난 내 아이들에게 어떤 인생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도전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게 있을 때, 사고 싶은게 있을 때, 몇만원 짜리라고 해도 한번 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패션을 통해 10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돌보며 이 아이들을 모두 먹이고 난 뒤에 우리가 먹자고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션과 정혜영 부부 처럼 1000명의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게 되길, 더 나아가 10000명의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길 가족 모두가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만든 가훈은 “우리의 능력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마음껏 즐겨야겠지만 이것이 절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원래부터 우리 모두는 세상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네, 저희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재가치’의 코드는 ‘선물’ 입니다.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커뮤니티디벨로퍼 & PFC브랜드액티비스트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비즈니스트레이너


COO / OUOS VILLAGE

Creator / METACORP

Chief-Trainer / SPARTAN

co-founder / 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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