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창의인재를 만드는 ‘미래의 교육’
1. 저는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몸은 학교라는 공간에 메어 있었지만 일찍부터 학교수업을 포기 했고 부모님과 선생님이 저를 바꿔놓으려는 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만화방,도서관,서점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프로이트의 심리분석학을 집어 들었을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하얀건 종이고 검은건 글씨라는 생각 밖에 안들 정도로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끝까지 완독 했습니다.
도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난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은데 그걸 안다는게 그토록 어렵다는 뜻인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이후로도 가끔 한번씩 다시 붙잡고 완독하는 것을 스무번 정도 한 뒤에야 그 내용이 조금씩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책은 지금 봐도 어렵게 쓰여진 책이었습니다.)
만화방 아주머니가 더이상 제가 볼 만화와 무협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만화방 문턱을 드나들었고(돈이 없을 때는 만화방을 대신 봐드리면서 해결) 학원에 가서도 서가에 비치된 책을 읽었고, 어머니가 시내에 볼일이 있으실 때는 따라가서 교보문고에 서서 끼니 때가 됐는지고 모른 채 반나절 이상을 서서 책을 읽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읽자마자 사고뭉치 제제와 저를 마음 깊이 동기화 하게 되었고 그의 아픔이 제 아픔과 그대로 뒤섞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제제를 아껴주셨던 뽀르뚜가 아저씨가 망가라띠바 기차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충격에 빠졌고 학교를 가면서부터 수업 시간에 이르기까지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왜 울고 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뽀르뚜가 아저씨가 망가라띠바 기차에 치여 돌아가셨어요.” 라고 생뚱 맞게 대답하며 울고 있는 제게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신 분이 친척분 이니?”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명한 소설 속 인물이라는 저의 대답에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졌고 저는 수업분위기를 망쳤다는 죄목으로 복도에 나가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교사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아예 듣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던 것은…….
2.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대화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수많은 위인들이 머릿속에 들어와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며 고통을 잘 견뎌내야 한다고 제게 말하고 있었지만 부모님도 형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대화 상대가 되어주지 않았고 그들이 원하는 틀에 저를 가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화를 내며 저를 때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의 육체는 그들에게 묶여 벗어날 수 없었지만, 저의 정신은 완전히 그들에게 독립했고 저만의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욱 더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만화책을 보고 공상하기와 위인전을 읽고 해당 위인과 대화하는 것이 제게 유일무이한 낙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판단했습니다.
‘저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저 선생님처럼 살게 될 것이다.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면 부모님처럼 살게 될 것이다.
이 위인들의 말씀을 들으면 이 위인들처럼 살게 될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말을 듣자.
그 외의 사람들 말은 절대로 듣지 말자.’
저를 폭력으로 대하는 세상은 저를 길들이는데 실패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운좋게도 그때 그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그들의 세상과 제도로부터 저를 밀어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롤모델에게 배우자’는 선택이 저를 완전히 끄집어내어준 것이었습니다.
3. 아내는 학창시절이 즐거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고 가난해서 배고팠지만 어머니는 따뜻하고 강인하셨으며 형제들과는 공부를 신경 쓰지 않고 뛰어놀고,그림 그리고,폐품으로 만들기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각기 다른 이유로 자녀들의 학업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덕에 아내는 학교에서도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할 수 있었고 학교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항상 가난하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빨리 커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고 일찍부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일찍부터 다양한 일을 시작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 예쁜 옷도 사다준 큰언니의 영향이 컸으며 큰언니를 통해 사회에 대한 이야기 듣는 것이 재미 있었다고 했습니다.
4. 학창시절에 한 선생님이 지나가듯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공부들 열심히 해라. 이왕 하는거 정말 열심히 해라. 그런데 말이다. 저 뒤에서 아무 생각 없이 희희덕대고 놀기만 하는 애들을 너무 무시하면 안된다. 세상이 참 아이러니한게 저런 애들 중에 사장이 나오고 허구언날 공부만 했던 애들이 걔네 밑에서 일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대단한 통찰력(?)을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몸은 제도권 안에 있었지만 제도권의 폐해로부터 일찌감치 벗어나 있었던 저희 부부는 제각기 2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했고 좋은 학벌을 가진 직원들을 두고 일을 했습니다.
한국사회가 학벌중심의 사회라고 했지만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까지 학벌의 기준을 들이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벌 보다 훨씬 중요한게 문제해결능력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주었고 그 능력만큼은 학업능력과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5. 아내는 저를 만나기 전에 이미 이혼경험이 있었고 전남편과의 사이에 딸아이가 한명 있었습니다.
딸아이를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그만큼 일에 몰입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화두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단순한 치맛바람으로 아이를 멋지게 키워내자는 화두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와 교사의 무지함과 맹목적이고 좁은 울타리로 아이들이 갖고 있는 본연의 재능이 짓눌리지 않아야 하기에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하는지보다 가정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했고, 어떤 것을 공부하고 있고 어떤 삶의 태도가 있는 교사를 만나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했습니다.
한국의 모든 학교를 검토하고 일본의 학교를 검토하고 미국의 학교를 검토하고 영국의 학교를 검토하다가 섬머힐스쿨을 알게 되어 유학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되었고, 핀란드의 교육을 알게 되면서 이민을 고민하다가 결국 저희는 ‘언스쿨링’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기 위해 우리 부부의 모든 시간을 갈아넣어서 돈을 버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면 그것 역시 좋은 교육환경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어설프겠지만 끊임 없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성실하게 개선하며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렇게 1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6.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중간중간에 읽는 걸 중단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고 한참을 부둥켜 안고 있다가 오길 반복했습니다.
저자가 구분 짓고 있는 모든 항목을 전부 다 해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당 항목이 왜 필요한 것인지 그 의미로 깊이 들어가보자면 저희가 신경 쓰지 않은 항목이 없고, 시도해보지 않은 항목이 없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 항목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미래교육을 우리는 전부 다 하고 있구나……
우리는 이 미래교육을 방해하는 요소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보호 했고,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만들어내서 우리 아이들에게 성공적으로 제공해줬구나……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가슴이 지릿지릿하며, 자긍심이 느껴졌습니다.
7. 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될지, 얼마나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게 될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대박나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업적을 남기는 위인을 만들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일찌감치 능력이 학력을 넘어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두가지 모두 가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길 속에서 두가지 모두 무너져 내리거나 능력 없이 학력만 갖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리스크로 가득한 세상에 아이들을 밀어넣는 도전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온갖 프레임들이 사람들을 가둬놓고 옥죄는 세상을 살아왔지만 저희 부부는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고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 그에 합당하는 스트레스를 감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좀 더 체계적인 울타리 안에서 스트레스 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자유롭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선택한 것을 선택한 만큼 선택한 시기까지 실컷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들과 주어지지 않는 것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한 것들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결국 이 아이들만의 독창성을 만들어줄꺼라 믿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왔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그저 본인만의 독창적인 능력으로 이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 뿐입니다.
노예화 되어 나를 버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길……..
한곳에 메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내 삶을 혁신하며 살아갈 수 있길……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가길…….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길……
아이를 갖는다면 엄마아빠 못지 않은 혁신부부가 되어 혁신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길……
마음에 여유가 생겨 그 노하우를 세상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길…..
그것을 바랄 뿐 입니다.
8. 저희는 창의적인 교육환경을 그다지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성교육과 사회성교육은 무조건 가정에서 해야 하기에 어떤 부모도 예외 없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개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삶으로 보여주면서 넛지하고 훈육함으로 ‘기초적인 울타리’를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에 90%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나쁜 짓만 아니면 모두 응원하는 것 입니다.
물론 그냥 무작정 응원만 하진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주 “왜 좋아요?” “뭐가 좋아요?” “어떻게 하는 거에요?”를 물어봐주며 설명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노력하는게 멋지다고 칭찬함으로 응원했습니다.
그 외에는 뭘했지? 음……
엄마아빠에게 주어진 것을 성실하게 하는 것,
더욱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끊임 없이 시도하는 것,
노예화 되어 나를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끊임 없이 기술을 익히는 것,
한곳에 메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내 삶을 혁신하며 살아가는 것,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몸소 보여주는 것,
우리의 노하우와 시간 등 가진 것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것……
아이가 살아가길 바라는 삶을 내가 먼저 살아가기 위해 하나하나 모두 시도해보면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 도전하며 살아갔을 뿐입니다.
뒤늦게 시작했기에 대단할 것도 없었습니다.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니고 부와 명예를 얻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노력해나가는 그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봤습니다.
어그러진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봤습니다.
아픔과 고통과 상처와 실패감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는지, 부부가 어떻게 협력하며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고 어떻게 다시 뜨겁게 시작하는지 그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봤습니다.
9. 2022년을 맞이하면서 엄마아빠는 아스빌리지라는 이름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14,13살 두 아이가 그것에서 동생들을 가르치다가 이제는 어른들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14살 딸은 ‘STUDIO R’이라는 크리에이터 프로젝트를, 13살 아들은 ‘METACORP’ 라는 크리에이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제각기 분야에서 이미 10년간 몰입해온 경험이 있기에, 앞으로 10년을 더 몰입해서 20년차가 되어도 겨우 20대 초반입니다.
엄마아빠가 막 사업을 시작하던 무렵에 이미 10년차 사업가가 되는 것이고 남들보다 일찍 실수와 실패와 헤어짐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일찍 세상을 알게 될꺼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너무나 즐거워 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침대로 가기 전에 엄마아빠에게 굿나잇키스를 하며 “오늘도 행복했어요.” 라고 밝게 웃고 있다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10. 저희는 현 시점의 공교육이 행하고 있는 시험제도는 반교육이라고 이야기 하는 김누리교수의 견해에 적극 동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교가 사회성을 길러주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창의성 발달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창의를 가르친단 말입니까?)
부모들이 스스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부모님의 깨어남과 상관 없이 스스로 벗어난 케이스지만 너무 늦게 깨달았고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것만큼은 하지 않는게 좋은 실수이고 실패이기에, 그 세월이 너무 아깝기에 더더욱 부모들의 각성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랜시간동안 고민을 해왔습니다만 결국은 모든 이슈가 안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내실을 더 깊이 다져나가려 합니다.
더 좋은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더욱 더 혁신하려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려 합니다.
그렇게 저희 인생에 주어진 파도들을 멋지게 타보이는 서퍼가 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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