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를 읽고……
1. 10대의 나는 말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집에서도 맞고, 학교에서도 맞고 온 사방에서 나를 괴롭히고 때리는 사람들로만 가득하다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가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겉으로는 얌전한 척, 사고 치지 않는 척 하고 있었지만 내 속은 완전 시커먼 색이었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서 칠 수 있는 온갖 사고를 치고 그것을 덮거나 외면하기 급급했다.
20대가 된 나는 '파이팅 넘치게 일을 하는 태도' 하나가 추가 되었을 뿐,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장 문제는 의존성이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했고, 너무 쉽게 믿었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꺼리낌 없이 건네주었다.
결정적인 크기의 무언가를 건네 받은 뒤에는 꼭 연락이 두절 되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난 그 상황 속에서도 연락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유가 있을꺼야.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럴리가 없어.' 라고 생각했고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난 국가대표급 호구가 되어갔고 결국 '파이팅 넘치게 일을 하는 태도'로 벌어들인 것을 전부 잃어 버리고 말았다.
2. 그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왜 내 인생에는 그런 사람들만 나타나는 건지 하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호구짓이나 하는 내 자신이 병신 같았고, 그냥 그쯤에서 인생을 끝내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가 멀다하고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형이 나를 호구 중의 호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느끼게 되었다.
처음으로 쎄~ 한 느낌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지한 것이었다.
난 그 사람에게 다시는 내 인생에서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고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해서 지저분하게 구는 그를 떼어놓은 뒤로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적정한 거리를 둘 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감정이든, 관심이든, 기회든, 돈이든 상대로부터 받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람과 상황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3. 이 책의 프롤로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사람은 생각보다 별로다"
읽는 순간 "훗!" 하고 웃고 말았다.
순간적인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더해져 있었다.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너무나도 실망스럽기만 했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겉으로는 온갖 멋짐으로 포장해놓은 사람들이 조금만 껍질을 벗겨보면 어쩜 그리도 별로였는지.....
결국 사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아무리 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 앞에서 쓸데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내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사라졌다.
재미 있는 것은 그때부터 내 주변 사람들이 물갈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를 호구 취급 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조금은 다르다 싶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아내도 그때 만난 것 같다.
그 이전에 만났던, 나를 감정쓰레기통이나 지갑으로 여기면서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했던 여자들과는 달리 아내는 자기 중심이 확고하며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멋진 여자가 내 인생에 나타나다니......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4.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도 그런 부분 때문에 힘들어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울기도 많이 울고 이리 저리 휘둘리기도 정말 많이 휘둘렸다고 한다.
첫번째 결혼에서 이혼을 한 뒤로 정신을 바짝 차렸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전에 만났던 겉보기에 화려하면서 생각 없이 사는 남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거나 엔조이 대상으로만 삼을 뿐이었고 '생각하는 남자'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사업체가 몇개 있지만 엄청난 미수금과 빚만 잔뜩 있는 남자,
키도 크지 않고, 잘 생기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왜 만나냐고 했지만,
생각하는 남자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일단 엔조이 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겠다고 생각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빠른 동거, 빠른 결혼.
우리는 결혼 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다른 형태'로 서로에게 너무 기대며 살았고 (정확히는 세상 모두에게 기대지 않아도 이 사람만큼은 기대도 된다고 생각했고) 서로의 기대치에 부합 되지 않는다는 것에 괴로워 하며 숱한 전쟁을 치뤘다.
5. 서로 좋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이혼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좋은 사람 만나자고 합의(?)를 하고,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며 함께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서로가 얼마나 생각보다 별로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얼마나 생각보다 별로인지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모자란 인간끼리 만나서 상대방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내게 주어질 수 없는 큰 꿈을 설정해놓고 상대방과 함께라면 그꿈에 도달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깊이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둥켜 안고 많이 울었다.
내가 불쌍해서 울고 상대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6. "당신은 날 믿어요?" "미쳤어요? 사람을 믿게?"
그 누구보다도 사이가 좋아진 이후의 우리 대화이다.
너무나도 의아한 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우리가 애초에 서 있어야 했었던 위치에 서 있는거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믿고, 희망을 걸고, 의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은 오롯이 사랑만 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 존재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막연하게 꿈꿨던 사랑하는 관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로 우리는 9년째 신혼 때도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사랑을 서로에게 부어줄 수 있게 되었다.
7. 언젠가부터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 좋은 표정을 짓고, 칭찬을 해주는 등의 표정과 말은 내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난 상대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지켜본다.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야기 듣는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신 안의 욕심을 어떻게 인지하고 다스리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무엇에 대해 아파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자신을 어느 방향으로 변화 시키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간절히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버틸 수 있는 바닥은 어디까지인지,
그가 꿈꾸고 있는 최상의 삶은 무엇이며, 그가 각오하고 있는 최악의 삶은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들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대체적으로 문제는 그 모순에서 터져 나온다.)
8. 사람은 네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
두번째, 내가 원한다고 얘기 하지 않았을 때에는 말하지 않다가 내가 원한다고 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
세번째, 가급적 얘기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적극적으로 질문하면 조금씩 조금씩 보여주는 사람.
네번째, 끝까지 얘기 하는 것을 꺼려하고 불편해하고, 싫어하고, 도망치는 사람.
이것을 종으로 나누면 여덟가지 유형이 될 수 있다.
첫번째~네번째 유형을 적어놓고 좌측으로는 꿈이 없고 지금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자 하는 사람을 놓고, 우측에 꿈을 꾸고 있고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갈망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놓고 보면 자신이 어느 유형의 사람인지 보이게 될 것이다.
(페르소나 별로 따로따로 구분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첫번째와 두번째 유형의 사람과는 그 사람의 현재가 어떻든 전~혀 상관 없이 가까이 하고 미래를 도모한다.
세번째 유형의 사람은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네번째 유형의 사람은 조금씩 거리를 둔다.
사람을 사랑해야 할 존재라며 왜 네번째 유형은 거리를 두냐고 물어본 친구가 있었다.
내 자신과 그 사람을 모두 존중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킬리도 없는데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면 두 사람 모두 힘들거나 둘 중 한사람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된다고, 대체적으로 그 사람들이 나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는 것을 설명했다.
9. 이 책에 나오는 상황들 대부분을 내가 직접적으로 겪어봤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신기한 느낌을 유지한채 오랫동안 관계했던 주변 사람들을 곰곰히 생각해보았을때 그들도 이 상황들을 대부분 겪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순간이라도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식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있지 못한가
극복을 했는가 하고 있지 못한가
이런 차이가 있을 뿐 아닐까?
10. "감정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다" 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감정이 훅! 하고 올라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꼭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건 너무 당연한거라고 그게 없으면 감정이 죽어버린거라고.....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에게도 꼭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내가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물론 어렵다.
정말 어렵다.
과거에 비하면 천분의 일, 만분의 일로 줄어들었지만 난 여전히 훅훅 달아오르고 있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부적절하게 튀어나갈 때가 있다.
하지만 빠르게 그 상황을 복기하고 빠르게 사과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감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내림이 있을 때에는 만사 제쳐놓고 감정관찰에 총력을 기울이고 내 감정이 내 자신에게 끼친 영향과 주변에 끼친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난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녀석들을(?) 하나 하나 달래주는 것.....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그것이 모자란 나를 끝없이 사랑해주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
무작정 믿지 말고, 의존하지 말고, 희망을 걸지 말고, 일단은 그냥 사랑해주는 것......
제이든 / 슈퍼제너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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