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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D ACTIVIST Nov 06. 2022

저도 계속 가보겠습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읽고……

1. 1999년 씨랜드사건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에 공교육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지만 이 정도까지 어린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것에 너무나 큰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4개월 뒤에 일어난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는 다시 한번 크나큰 황망함을 느끼게 하였다.

화재원인과 해당 업소의 문제점에 대한 브리핑을 들으면서 또다시 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테리어와 건설 일을 하면서 그 세계가 얼마나 지저분한 세계인지 알게 되었다.

소방법이라는게 있지만 그 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경우는 단 1%도 되지 않을꺼라는 지인의 말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공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간활용을 늘리기 위해, 더 빠르게 장사를 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편법을 쓰는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고 그런 업계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2. 09년 겨울, 천안에서 미팅을 하던 중에 입구쪽에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어느 한사람 일어나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막연하게 별 일 아닐꺼라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소방훈련 때 교관이 경고했던 골든타임이 떠올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층 음식점에서 불이 났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계단으로는 이미 시커먼 연기가 자욱해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완강기가 있는 탈출구쪽은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몇달 전에 태어난 딸아이를 안고 아내가 울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야했다.


완강기쪽 탈출구로 혼자 뛰어내린다면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곳에는 두명의 직장동료가 있었고 연기에 벌써 어지러워 하고 있는 7명 가량의 손님들이 있었다.

대부분 여성이었고 이대로면 소방차가 오기 전에 질식할게 뻔했다.


혼자 빠져나간다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수건에 물을 적셔 연기가 올라오는 문틈을 막은 뒤 모두에게 물수건을 나눠주고, 말리는 매니저를 아랑곳 하지 않고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 쪽 통유리를 의자로 깨고 완강기 로프를 떼다가 탈출로를 만들었다.


연기를 먹지 않고 창문쪽에서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 되지 않아 용기 내어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내려가고 몇몇은 그 공간에서 숨을 쉬며 소방대원들을 기다렸다가 내려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저기 유리에 베이고 살이 까지고 화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단 한명도 죽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실직사 하거나 폐와 뇌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3. 나중에 화재원인을 이야기 들어보니 1층 음식점이 가스시설과 재료창고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고, 오랫동안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을 보아하니 소방점검이 나왔을 때 뒷돈을 주고 눈감아 달라고 한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하고 나니 경각심이 더욱 더 극에 달했다.

군시절에 열심히 배웠던 훈련 덕분에 내게 내 몸과 이웃의 몸을 지켜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꼈고 틈이 날 때마다 후배들에게 안전에 대한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

세상을 너무 위험하게만 생각하는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하기 그지 없었고 이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사업을 할때 돈 대신 안전을 선택할리가 없고 위기의 순간에 이웃을 생각할리 없다는 생각에 내 경각심은 계속 심각해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배웠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을까 한동안 고민을 했지만 그 고민은 바쁜 일상에 뒷전으로 밀려나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사그러들어버렸다.


4. 2014년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순간부터 몇날몇일을 울고 후회 했는지 모른다.

내가 그때 좀 더 사명감을 갖고 안전교육을 실행해나갔더라면…….

그때 무렵 알고 지내던 중고교 교사들과 연합해서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훈련을 시켜줄 수 있었더라면……

내가 알고 있는, 내가 경험한 세상의 부조리와 위험성과 문제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내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매일 기사를 확인하고 매일 흐느껴우는 내게 기사 좀 그만 보라고 지적하는 동료에게 난 말했다.

“지금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저 부모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 짊어지는 것 밖에 없다. 이 사건을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놓고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 밖에 없다. 충분히 괴로워 할 수 있도록 그냥 놔둬라.”


5. 세상을 바꾸기에는 부족하기 그지 없고, 아무런 힘도 없다는게 얼마나 슬프고 아프고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촛불도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세상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인연이 끊어져갔다.


처음에는 그들이 그렇게 인생을 사는게 한심해보이고 짜증도 났지만 그들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들도 지옥 같은 삶을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식 키우는 고통 때문에 세상으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고, 배우자와 사랑 없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회적 부와 명예만 추구하는 악다구니만 자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찍부터 부모가 가스라이팅 시킨 사회적 성공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의 삶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고, 숨이 붙어 있으니 또 하루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당장 내 호주머니에 백만원 아니 십만원 아니 만원짜리 한장 생기는 일만도 못한 관심 밖의 이슈일 수 밖에 없었다.


6. 지난 10월 29일 밤에 발생한 이태원참사……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길거리에서, 폭탄테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즐거운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유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 12시부터 뉴스를 보기 시작해서 아침까지 이어졌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하고 있든 머리 한쪽에서는 잔뜩 뒤엉킨 물음표들이 맴돌고 있었고 가슴 한구석이 마비 된 것과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넘어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는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지금 이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구축이 되었고 지난 날 어떤 사람들이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생각으로 공무원을 지원해왔을지 생각해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 밖에 없다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전문성도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닐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회에서 고위직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때야 하는지, 하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봤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일수록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고, 사회와 밀접하게 어우러져 돌아가고 있는 하위직에게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 없는게 현실이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이 현실인 이상 이런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임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꺼라 생각한다.


7. 씨랜드참사도 인현동참사도 세월호참사도 이태원참사도…..

훨씬 이전에 삼풍백화점참사도 성수대교참사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수의 작은 사건사고들도……

알고 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하라고 자리에 앉혀 놓은 이들은 본인들 배불리기에 급급하고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며 우롱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이들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문제를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을 보호하기는 커녕, 그 지식 없음을 손가락질 하고 힘없음을 비웃으며 본인들이 지닌 힘을 악용하여 끼리끼리 세를 불리고 더 큰 이득을 취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책임돌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다보면 국민들이 잊을꺼라는 것을 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보면 남의 사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꺼라고 생각하는 듯 계속 질질 끄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벌을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완화해주면 그만이고, 감옥에 가더라도 나중에 감형을 해주거나 빼내주면 그만이다.


서민들에게는 절대로 주어질 수 없는 혜택이 그들에게만 주어져 있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혜택은 반대세력에게는 칼날이 되어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더 힘을 키워서 그들의 세력안으로 들어가려도 발버둥을 치거나, 그들의 밑에서 콩고물이라고 얻어먹으려고 하거나,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끊임 없이 기억하고,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문제해결을 연구하고 실행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은 진급을 포기하고, 더 나은 부를 포기하고, 한층 더 편리함을 포기하고, 싸워나가고 있다.

시종일관 전쟁을 치르고 있다.


8. 알고도 악용하는 이들로부터, 알면서 외면하는 이들로부터,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이들로부터 내 자신과 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알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알아도 그냥 외면하는게 편하다고 이야기 한다.

외면하지 못한다면 함께 악용하자고 이야기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들에게 휩쓸려 버린다.

그들의 손가락질과 눈흘김을 두눈 똑바로 뜨고 직시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의 따돌림과 억누름 속에서도 끊임 없이 일어서려는 용기가 없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 편에 서 있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현실이다.


이 현실은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어쩌면 수천년, 수만년 뒤에도 똑같을 수 있다.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고, 알지만 외면하고, 알면서 악용하는 이들이 훨씬 많고 모르기에 알려고 하고, 알기에 직면하고, 알기에 바꾸려고 하는 이들은 소수일 것이다.


나는 그 소수가 있었기에 인류가 이어져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믿는다.

인류를 망가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아무리 크다해도, 인류가 망가지는 것을 외면하는 세력이 아무리 크다해도,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사랑하기 위해 실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존재할 수 있는 거라 믿는다.


검찰 안에 임은정 검사과 같은 사람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쓰러진 이들에게 달려들어 CPR을 해준 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본래 칠흑과 같은 어두운 곳이지만 그들이 있기에 희망의 빛이 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9. 내 인생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본다.

세상의 어떤 문제에 끊임 없이 아파하고 있는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점검해본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해결방안을 생각하고,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 부족하다.

힘 없는 내 노력으로는 티도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계속 가보려고 한다.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이 끝없는 전쟁을 이어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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