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과학’을 읽고……
1. 청소년 시절동안 가장 오랫동안 불려졌던 별명이 바로 '혐오'였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수염을 깎으라는 국어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그 교사는 앞으로 내 이름을 '혐오'로 부르라며 공식적으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학생에 대한 폭력이 당연시 되었던 80년대, 사립학교 교장의 사위였던 교사의 권력은 엄청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교사의 공식적 낙인은 '괴롭혀도 되는 대상'을 상징했고 안그래도 지옥 같았던 나의 청소년시기는 더 깊은 지옥으로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난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고, 성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해 갖게 된 악감정들은 엉뚱한 곳에서 삐져나오기 시작했고 어른들 모르게 온갖 나쁜 짓을 일삼기 시작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나를 괴롭히는 그들을 모두 죽이고 나도 자살하는 꿈을 셀 수 없이 꾸었고 그 꿈은 30대까지 이어졌다.)
2. 나를 괴롭힌 이들을 쫓아가서 내 힘으로 때려죽이겠다는 목표 하나로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무서운 목표를 갖고 있었던 만큼 훈련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았고 입대 후 1년도 되지 않아 무술시범단 일렬에 속할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
힘이 생기자 자신감이 넘쳤다.
외박과 휴가를 나온 뒤로 건달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보면 시비를 걸고 다녔지만 실제로 싸움으로 이어진 적은 별로 없었다.
무술교관들은 대련할 때면 내 눈빛이 소름 끼치게 변한다며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내겠다고 악감정을 좀 다스려보자고 이야기 했다.
나를 괴롭힌 이들을 주먹으로 때려서 복수를 하는 것 보다는 사업적으로 성공한 뒤에 그들을 짓누르며 모멸감을 주는게 더 큰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열정을 비즈니스에 쏟았다.
어깨에 얹어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생을 마감하자는 충동과 죽을 때 죽더라도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끊임 없이 내 스스로를 괴롭히며 일에 내 자신을 갈아넣었다.
3. 비즈니스영역에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폭력성은 갈무리 되었고 사회적인 나로 잘 포장되어진채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밤만 되면 미칠 것 같았고 술과 여자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곤 했다.
그 폭력성은 세가지를 계기로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첫번째, 강연
이른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고 나이를 훨씬 뛰어넘은 성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의 조언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서게 된 강연대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주저리다가 우연히 어린시절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고 강연을 듣던 대학생들 대부분이 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본인들 역시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3년간 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는 바람에 이도저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털어놓았다.
과거의 고통을 딛고 투지 있게 삶을 헤쳐나가고 있는 내가 롤모델이 되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거리를 걸으며 오열했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두번째, 아내와 아이들
내 폭력성은 아내를 만난 뒤에 급속도로 사그러들었다.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훅~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회사가 부도나고 20대 나이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되던 시점에 만났고 그런 상황을 모두 다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나를 만나주었고 결혼해주었다.
나같은 모자란 인간이 아내와 같이 멋진 여성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고 사랑의 결실을 상징하는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고 뿌듯하고 세상을 전부 얻은 것 같았지만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아이를 키우기에는 내 자신의 정서가 너무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육아하면서 불쑥불쑥 폭력성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가장 경고하며 신신당부했던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내 자신이 정말 형편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은 상당히 길었다.
그리고 몇번의 이혼위기 끝에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세번째, 본질
이혼하기 전에 마지막 발악을 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1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감정이면 이혼하기로 하고 둘이서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통장은 비어가는데 일까지 미뤄가면서 공부했다.
심리학,철학,신학으로 이어지는 공부와 토론이 매일 5시간씩 백일간 이어졌고,
그 백일간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내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백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인생이 그토록 빛이 날 수 없었고 그 빛은 그때 이후로 꺼진 적이 없다.
4. 내게 '혐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교사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3번이나 같은 반을 하게 되면서 지독하게도 나를 괴롭혔던 일진으로부터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가 된 뒤에야 해방될 수 있었다.
그들을 잊을 수 있었다는게 아니었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다양한 경우의 수를 유추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행위와 정도'가 다를 뿐, 속알맹이는 그들과 내가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나는.......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존재를 존중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불안했던 사람들이었다.
인생에 대한 허무함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본능이 솟구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악감정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온갖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탓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대상과 행위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그런 악감정을 분출해낼 대상이 필요했고,
내 영혼을 스스로 더럽히는 행동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이미 죽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5. 아동기에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게 건강한 주체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 대한 분노만 가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그 상태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감사하게도 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었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게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삶에 씨앗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발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운좋게도 난 일찍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나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인 어린시절을 보내놓고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상실감이 더욱 컸지만,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고, 상실감보다 희망이 더 커졌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
6. 나를 괴롭혔던 이들에게도, 이 책에서 언급 되고 있는 수많은 사건사고의 가해자들에게도 내게 주어졌던 행운이 동일하게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연히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자신들도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면......
사람을 좀 더 알고, 세상을 좀 더 알고, 삶을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고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들도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가정에서 사랑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마을와 학교를 비롯한 사회에서 '건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들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지 않았을까......
(끔찍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혈육의 유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족의 유대가 생긴다고 한다.
혈육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한 계기에 나쁜 무리와 어울리게 되면 그들과 친족의 유대가 생기게 되며 그 소속감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쁜 짓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애착손상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가정에서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시켜주지 못한 경우, 그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지 그것은 완전히 로또와 같이 운에 맡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7. 이 책에서의 내용이 한국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한국의 멀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이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폭증하게 될 것이다.
이민자를 받아서 인구수를 유지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앞으로 로봇기술과 인공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탓을 할 것이고 그러기에 적합한 타겟을 고를 것이다.
그 타겟에 적개심을 갖고 1단계)적대적인 말을 하다가, 2단계)회피를 하고, 3단계)차별을 하다가, 4단계)물리적 공격을 하고, 5단계)절멸시키려고 할 것이다.
총기를 비롯해 화약류 단속이 엄격한 덕분인지 아직 절멸 단계의 테러는 일어나지 않는 나라지만 4단계인 물리적 공격은 적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3단계인 차별은 엄청나게 팽배한 상태라고 보고 있고, 회피와 적대적인 말은 일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직업은 그만큼 상류사회를 경험한 상류층과 상위 중산층과 소수의 서민층에게만 허락 되고 있고, 서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 영역은 거대자본을 가진 기업들과 영세상인들의 몫이 되고 있는데 이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더 심해진다고 한다.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직업은 더더욱 소수의 집단에게 허락될 것이고,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일은 로봇기술과 인공지능과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때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살아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가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결과는 '폭동'과 '절멸'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노블리스오블리주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안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모든 판이 엎어지고 공멸하게 되는 요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지구촌이 보여주고 있는 사인을......
지금의 내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사인을......
내 마을이 보여주고 있는 사인을.....
내 일터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인을.....
내 가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인을.....
결코 단순하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8.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
나 역시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적개심?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적개심을 갖고 있는 대상이 있고 그들을 비판하며 그들을 내 커뮤니티에 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은 안된다.
기여와 상관 없이 동일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게 아니다.
현 시점의 역량과 상관 없이 동일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넉넉한 시간을 들여서 자기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성과를 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역량을 갖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함과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얻은 열매를 나눠 먹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가진 힘으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서 성장과 개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임으로......
그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사명감을 갖고 소명의식을 가진 이들이 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래야 '혐오'가 줄어들 수 있다.
9. 지난 날 나의 잘못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다.
아무리 나의 잘못을 아내와 아이들이 알고 있고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해도 그때의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런 잘못을 하게 된 원인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그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히 나의 그릇된 선택이 만든 내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가지이다.
첫번째, 내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
두번째, 나와 내 가족이 누군가에게 행운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
세번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 없이 연구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것
그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내가 내 자신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짐하게 된다.
제이든 / 패밀리엑셀러레이터
커뮤니티디벨로퍼 & 마인드트레이너
COO / BRAND ACTIVIST
co-founder / PRIPER
Creator / META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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