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를 읽고
1. 일찍부터 공교육제도의 문제를 직면하고 대안을 찾던 내게 서머힐스쿨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적에 유학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비용도 감당하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눈이 올라가는건 쉽지만 내려가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서머힐스쿨을 안 뒤로는 그 어떤 학교도 마음이 들 수 없었고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언스쿨링’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대안학교들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대안학교라고 이름 붙은 곳을 무작정 좋게 볼 수는 없었다.
좋은 교사가 한두명 있다고 해도 전체 숫자에 비해 소수에 지나지 않을꺼라 생각했다.
그럼 결국 공교육에 비해 차악일 뿐 최선이 될 수 없을꺼라 생각했다.
좋은 가정철학과 교육관이 잡혀 있는 부모가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보다는 아이가 공교육에서 적응하지 못한 경우 뒤늦게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대안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케이스가 소수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수일 경우 대안학교의 매리트가 반감 될 수 밖에 없었다.
대안학교들은 대부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사에게 줄 수 있는 급여는 터무니 없이 적었고 기본적인 운영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대안교육이 추구하는 배움에 대해 적극 동의하는 케이스만 입학을 허락하겠다는 취지는 사라지고 학비를 낼 수 있다면 누구나 받는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많은 학교들이 정부인가를 받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금의 문제 가득한 공교육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권력의 우산 아래로 들어간다?
그 경우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건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서머힐스쿨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갖고 있을 순수한 호기심에서 배움이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교사-학생-학부모’가 그 방향성에 적극 동의하며 ‘구조를 혁신’하기 위한 삼인사각경기를 펼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교사에 대한 신뢰가 확실하지 않았고, 학생과 학부모, 즉 대안학교를 선택한 가정들의 성향에 대해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들이 구조를 혁신하긴 어려울꺼라 생각했고 그 리스크 가득한 곳에 내 아이들을 보내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2. 시간이 흘러 ‘대안학교 20년’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려했던 부분들이 모두 현실이 되어 있었고 지난 20년간의 대안학교들의 도전 끝에 남은 것은 마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폐허와도 같았다.
그나마 그럭저럭 유지 되고 있는 곳은 일부의 초등대안학교…..
하지만 그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일반 공교육학교로 진학할 수 밖에 없었고 전체적인 학업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 때문에 골치아파 하고 있었다.
중고등부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학교 중 손꼽히는 학교 두곳에 대해 우연히 깊은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교사의 질은 더 형편 없었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인식은 너무 떨어져 있었다.
졸업생들의 수준은 공교육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고 그렇다고 해서 서머힐스쿨의 졸업생들처럼 월등히 행복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의 학교들은 ’배움을 위한 최선의 장‘이 아니라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말씀 하신, 한 초등학교의 교감선생님 말씀이 떠올랐고 작금의 대안학교는 가라앉고 있는 배를 피해서 올라탄 역시 가라앉고 있는 배와 같이 느껴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왜 대안교육이 무너져 내렸는지 그것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지 지난 날 놓친 것들을 통해 깨달아야만 한다.
첫번째로 가장 큰 원인은 무너진 가정이다.
어쨌든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보딩스쿨에 보내서 부모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하고 처음부터 독립된 가치관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해도 초등기간은 부모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부모가 갖고 있는 삶의 기준이 아이들의 기준구축에 가장 기초가 될 수 밖에 없고 그 기초공사가 잘 구축된 후에 청소년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부모 외에 주변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이다.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기 보다는 친구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시기이다.
기초공사가 튼튼한 경우라면 잠시 어긋나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초공사가 없었거나 잘못된 경우에는 어디로 어떻게 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물론 기초공사가 잘못된 것이 청소년기에 어긋나면서 오히려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이 시기에 친해지게 된 교사와 친구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4. 두번째로 교육은 교육전문가가 하는 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부모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교사를 판단할 때 어떤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인지를 볼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자기경영/부부경영/가정경영’ 성과를 봐야 한다.
남의 자식교육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내 자식교육만큼 어려울 수는 없다.
남의 자식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각기 적정한 거리를 두고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만큼 여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식은 한계가 없고 거리도 없고 여유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관건은 그렇게 한계가 없고 거리도 없고 여유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한단계씩 자신의 한계를 넘고,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여유의 틈새를 발견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남의 자식을 대할 때 그만큼의 노하우가 녹아들 수 있을 뿐더러 학부모가 그 업적(?)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 말에 힘이 실리는 비중이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의 프레임을 넘어서 얼마나 다양한 도전을 해나가고 있는지와 얼마나 끊임 없는 자기성찰 속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은 소수의 운동가가 만든 프레임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교사들로 이루어져 있거나 자기경영에 있어서 철저하지 못하면서 자유로움만 주장하는 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그건 너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상명하복구조의 대기업을 지적하면서 구글의 기업문화를 동경하는 이야기와 같다.
사람들은 마치 누구든 구글에 들어가면 구글 문화에 맞춰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처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에 구글에 입사를 할 수가 없다.
즉, 구글에 입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구글문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고 구글은 구글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만 뽑고 있는 것이다.)
자기 가정을 잘 경영해온 학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관건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교사’가 되고, 그들이 ‘환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대안학교의 기초공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5. 세번째로 시간이다.
위에 말한 부분들은 시간이 걸린다.
벽돌집을 지어가듯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대안학교는 너무 빨리 붐을 일으켰고 시장이 확 달아올랐다가 확 식어버렸다.
그럴듯한 이상향을 이야기 하는 데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엇비슷한 생각을 몇번 정도 해봤던 사람들이 마치 그 분야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 처럼 몰려들어 교사가 되었고 공교육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학부모들이 대거 몰려들어 아이들을 맡겨놓았다.
이상향을 말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교사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학교에 아이들을 맡겨선 안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 모두가 무르익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어선 안됐다.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아주 작게 시작해서 확실한 역량을 키워나갔어야 하며 선명한 영향력을 키워나갔어야 했다.
너무 빠르게 붐업을 시키고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린 곳들은 그만큼 빨리 사그라들었다는 것을 역사가 말하고 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행한 것에 대한 댓가는 생각보다 더 혹독하다는 것도……
6. 언스쿨링을 하고 있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스쿨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무릎이 먼저 꺾여야 한다.
부모의 자기경영이 처절하지 않다면 언스쿨링은 공교육보다 훨씬 문제가 가득한 교육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적인 언스쿨링을 해나가고 있는 가정이라면 그 부모의 자기경영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언스쿨링의 특성상 부부간의 관계가 일그러져 있고 부부싸움이 지속되고 있다면 아이들의 환경은 그 어디 보다도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성공적인 언스쿨링을 해나가고 있는 가정이라면 부부경영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매일 부대끼며 각기 다른 가치관을 조정해가며 공통된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성의 기초이고, 배움의 기초이고, 삶의 기초이기 때문에 그것은 꼭 구축해야만 하는 역량이다.
난 그런 가정에서 훈련된 학부모들이 교사가 되는 대안학교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손주들만큼은 그런 교사들과 그들의 슬하에서 성장한 언니오빠형누나들이 많은 환경에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 학교는 처절한 자기반성 속에서 내 자신부터 혁신하고 내 가정부터 혁신한 사람들의 비중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비중보다 절대적으로 높아야 한다.
그 처절함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부모들만이 자녀를 입학시킬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고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그것이 안되는 사람들은 학교 밖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부모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그들의 수료에 대한 판단은 학교 내의 모든 구성원(교사+학부모+학생)들에게 민주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이 꿈이 절대 꿈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나 혼자만 꾸는 꿈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함께 꾸는 꿈이며 아이들도 함께 꾸기 시작한 꿈이고, 벌써 여러 가정이 함께 꾸는 꿈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절.대.로.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에 대안교육이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만큼 초석을 아주 단단하게 세워나갈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당장 급한 가정을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세상을 버텨주시는 동안 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죽는 날까지 꼬박꼬박 써내려가다가 세상에 남길 메세지이다.
제이든 / 패밀리엑셀러레이터
커뮤니티디벨로퍼 & 마인드트레이너
COO / BRAND ACTIVIST
co-founder / PRIPER
Creator / META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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