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고……
1. 단단하다. 영상으로 접했던 그의 단단함이 글자 하나하나에서 절로 풍겨난다.
손웅정씨가 어린시절부터 단단했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깊이 언급 되진 않았지만 손웅정씨의 부모님이 상당히 강단 있으신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식의 재능을 알아봐준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먹고 살기 빠듯했던 가난 속에서 공부도 아니고 축구를 하겠다는 자식을 밀어줄 수 있었을까……
부모님이 어떻게 사시면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알았기에 그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경주마와 같이 정면만 바라보며 질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어진 것에 최선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람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과정의 행복과 가족을 중시 여기는 것을 봐서도 난 손웅정씨의 부모님이 무척 궁금해졌다.
마치 ‘세계명문가의 자녀교육’에서 나오는, 가문에 거름이 되어 이름 없이 사그러들었던 1세대들의 모습과 같지 않았을까……
그 거름에 2세대인 손웅정씨가 씨앗을 뿌리고 3세대째에 손흥민이라는 열매가 열린 것 아닐까…….
2.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단단한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냐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확신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 10년의 전반부도 지금보다는 많이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그러니 10년 전 이전의 내 삶은 어땠을까……
풍랑 속의 나뭇잎배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돌면서 모두가 타협하고 가는 길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는 고집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나도 막막했고 내 안에 확신이 없었기에 그런 내 자신에게 더 화가 났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그런 내 모습이 주변을 더 흔들었고, 흔들리는 주변을 보며 외로웠고 그 외로움은 방황으로 이어지면서 나를 더 고립시켰었다.
내가 그렇게 천번만번을 흔들리던 시간동안 손웅정씨는 땅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재끼며 우직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그가 부럽진 않다.
그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 역시도 이젠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 서 있으니까……
3. 과거의 나는 완전히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를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할 때는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뜰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무대가 사라지고 혼자 남아 있을 때에는 외로움이 치를 떨면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찾아 헤매던 나약하디 나약한 나였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까지 좋아했던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가득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강단도 없고 조금만 강압적인 분위기면 겁부터 집어 먹었던 나였기에, 허구언날 일진들에게 돈을 뜯기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과 돈을 훔치고 다녔던 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방황으로 이어져서 인생을 놔버리려는 듯 막나가는 삶으로 자꾸 삐져 나갔던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 내가 이해는 가지만 용납 할 수는 없다.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지언정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변했어야 했다. 진작에 변했어야 했다.
(39살에 깨달은 것도 빠른 편이라고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4. 오랜시간에 걸쳐서 쌓아올린 능력이 아닌 몇가지 사업수완으로 일찍부터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던게 아니었다.
이른 나이의 성공은 저주와도 같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겹겹이 쌓아올린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로또 같은 운은 사람의 껍데기만 단단해지게 만들기 때문인게 아닐까……
결국 그 껍데기를 스스로 깨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그 안의 껍데기를 또 깨기 위해 다시 버리고, 계속 버리고 버린 뒤에야 겨우 시작점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어떤 기본이 부족했는지 그 정수 앞에서 무릎 꿇고 두손 모아 엎드릴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겪지 않길 바라고 있다.
아니 나보다는 훨씬 더 단단할꺼라고 생각하고 유혹도 잘 이겨낼꺼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천국과도 같은 맛으로 채우기 위해 내 인생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려는 절반의 나와 전쟁을 치르는데 절반의 나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아내와 그 여정을 함께 하며 너무나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덕에 아이들은 내 바보 같은 미소와 장난스러운 몸짓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지극히 권위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게 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첫번째 기본이었다.
5. 언스쿨링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격해야 하는 순간에는 정말 엄격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나의 교육관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나만큼 경험하진 못했기에 내가 선을 넘어 본질을 흐린다는 판단이 설 경우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역할을 해주었고 대부분의 교육자&훈련트레이너 역할은 내 몫이었다.
언스쿨링의 특성상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마치 손흥민 선수가 축구를 선택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선택한 것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맡겨놓을 수 없었다.
자유롭게 꿈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다.
그 행운에 각고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 “원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거야.” 라는 말을 하며 똑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시작버튼과 정지버튼을 아이들에게 쥐어준 상태에서, 매순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본인들이 선택한 것에 어느 정도로 노력했는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고, 스스로 만족스러운지 생각하도록 했고, 다음 날 어떤 것을 보완해나갈지 생각할 수 있도록, 그 프로세스를 길러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외부의 평가가 아이들을 망치지 않도록, 세상의 결과주의가 아이들을 멈추게 하지 않도록, 언제든지 본인의 선택으로 시작하고 본인의 선택으로 노력을 붓고, 본인의 선택으로 끝을 맺고, 본인의 선택으로 다음 길을 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이야기 나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언제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삶에 끝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렇기에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행복하자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 내가 하고자 마음 먹은 것을 멋지게 해내자고……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지금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배워나갔다.
6. 언스쿨링으로 성장한 두 아이는 내년에 15, 14살이 된다.
15세가 되는 딸은 3살 때부터 그림그리기에 빠져 살다가 지금은 스토리메이킹과 캐릭터드로잉에 푹 빠져 있고, 14세가 되는 아들은 역시 3살 때부터 푹 빠져 있었던 의상제작이 제페토로 옮겨왔고 요즘에는 영상제작쪽으로 확장이 되고 있는 중이다.
어린시절에 패션을 좋아했던 아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돌고 돌다가 아내는 결국 패션관련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난 독서와 글쓰기 관련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날 수많은 내담자들을 상담 하면서도 누차 확인했던 바이다.
우리가 특정 분야를 좋아하고 싫어하는데에는 부모의 유전자적인 영향과 환경적 영향이 가장 컸다.
그리고 어린시절에 무엇을 좋아했었는지가 오랫동안 방향설정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나다움‘과 ’지속성장가능성‘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찾아가고 있고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유전적 영향을 받아 창의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역이 창의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육성방식이 일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확인하고, 선택하고, 진행하고, 판단하는 것을 반복하도록 하고 있다.
부모로써 끊임 없이 관찰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삶의 태도와 인성적인 성장에 대해서만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마침 두 아이 모두 춤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이 역시 엄마아빠의 유전자 영향이 크다.
나는 오랜기간동안 온몸에 관절들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춤에 미쳐서 살았었고 아내와 처음으로 만났던 곳도 클럽이고 이후에도 자주 춤추러 다녔을 정도로 우리는 춤을 좋아했다. (노래도 무척 좋아했다.)
이런 엄마아빠의 유전자라면 춤과 노래에 대한 관심은 당연할 것이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행복한 것을 더 즐기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하든 허투루 하는 일이 없도록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7. 2023년을 준비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첫번째, 아이들에 대해서는 조급함이 없는데 내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은 조급함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새롭게 하고 있는 일들을 전부 접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문제 될게 하나도 없고, 아주 천천히 이어가도 전혀 상관 없는데 도대체 왜 어디에서 조급함이 올라온 것일까 의아할 정도였다.
두번째, 우리가 추구하는 길에서 필요한 기본을 위해 우리 부부는 거름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지게 되었다.
철학과 정서를 구축하고 가문의 가치관을 설정한 첫번째 세대인만큼 우리 세대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 세대에서도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세번째, 미래를 기대하기 보다는 하루하루의 행복에 한층 더 집중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난 우리 아이들이 손흥민 선수처럼 되기 보다는 손웅정씨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엄마아빠는 그 못지 않게 단단한 여정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 안에서 부디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길 바랄 뿐이다.
사회적 성공 같은 것은 할 필요 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으로 먹고 살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적게 일하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만 벌면서 좋아하는 것을 영유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크고 멋진 집에서 살면서 여러 나라를 꼭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거창한 자극보다는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만 먹으면 손을 뻗어 가질 수 있는 것들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속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그리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하다.
저자의 마음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제이든 / 패밀리엑셀러레이터
커뮤니티디벨로퍼 & 마인드트레이너
COO / BRAND ACTIVIST
co-founder / PRIPER
Creator / META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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