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간이 된다는 건.....

기준+관심+욕구+직면+고민+토론+해결책모색

by BRAND ACTIVIST

어린 시절부터 교육 받아온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부분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는 것은 나랏님들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이죠.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인식을 국민 대다수가 가질 수 밖에 없도록 우린 오랫동안 만.들.어.진.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아주 대단한 사람이 누구든 반박할 수 없는 아주 정확하고 분명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수긍 합니다.

하지만 아주 정확하고 분명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면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그 내용에 대해 수긍을 하기 보다는 오류를 찾아내어 지적하기 급급합니다.

이처럼 무언가 입을 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격'이 필요한 것이 지금 우리의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 자격에 대한 인식이 결국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서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불의로 권력과 돈을 거머쥐는 사람들에게 모든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 중 하나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우리 입니다.


요즘 김제동씨가 한 이야기로 여기저기에서 난리법석 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국방부 차원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바라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들쑤시고 들춰내질 수록 불리한 것은 그들일테니 말이죠.

현명함 속에서 그리 했든, 몰지각함으로 그리 했든, 예능프로그램의 이슈를 국감의 이슈로까지 옮긴 것은 이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자면 훌륭한 징검다리가 될 행동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김제동씨 이야기의 팩트 여부를 떠나, 그런 일이 아주 비일비재 한 곳이 군대라는 점에 대해서는 백분 동의를 합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군애자 입니다.

군대를 아주아주 사랑하는 한사람이죠.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정말 서러울 정도로 저는 군시절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강연을 할 때 군시절 에피소드를 자주 이야기 했고 군대 가기 전의 청년들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불러일으켜 주기도 했지만, 이번 김제동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그동안 제가 이야기 해왔던 군대이야기가 대부분 '군법에 어긋나는 일반적인 관행'과 관련된 이야기였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군시절 내내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전투병을 하고, 5시부터 9시까지 행정반 지원업무를 했습니다.

제가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이것은 엄연히 군법위반 입니다.


소대장들과 중대장들의 숙제를 대신 해준 일은 아주 비일비재 했습니다.

저는 숙제를 해준 댓가로 군에서 먹기 힘든 사제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군법위반 입니다.


저의 도움에 고마워 하는 장교들과 종종 밖으로 외출 나와서 유흥시설을 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엄연히 군법위반입니다.


포병대대장과 라이벌 관계였던 대대장이 사단장기자랑 대회 때 포병대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며 3개월간 일과시간 이후에 장기자랑팀을 연습시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즐거운 추억이지만 그것도 엄연히 군법위반 이었습니다.


저는 사단 작전참모의 군사학 석사논문을 대신 썼습니다.

저의 군생활 중 8분의 1은 석사논문대필자로 보냈고 그로 인해 긴 포상휴가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했던 공부가 사회에 나온 뒤 저의 인생에 아주 멋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한 부분이지만 엄연히 심각한 군법위반 입니다.


대충 작업한 바람에 한차례 논문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저는 "다시 제대로 할래? 아니면 명령위반으로 영창 한번 갈래?" 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와 저를 관리하는 대위 한분은 그 앞에서 벌벌 떨며 제대로 다시 할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밤을 새가며 논문을 썼고, 그 대위님은 수시로 제 어깨를 주물러 가며 사제 음식을 반입해가며 저를 독려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저는 강연 때 이런 이야기를 아주 재미나게 풀어내곤 했습니다.

마치 김제동씨 처럼 말이죠.


만약 이 이야기를 국방부에서 듣고 진위여부 밝히자고 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기록에는 있을리가 없는 이야기 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 정말 곤란 합니다.

군애자 한명을 반군투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 되는 거지요.


이렇게 생각을 해보고 나니 제가 얼마나 병영 여기저기에 쓰여져 있던 '군사회정의구현'과 모순된 모습과 타협을 하고 살았던 것인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멋진 군생활을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불법과 갈취 속에 있었으면서 그저 긍정적인 에너지로 헤쳐나갔던 것 뿐이었습니다.


제가 외면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사회운동가나 다름 없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 오고 있습니다.

(저는 '브랜드컨설턴트&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교육운동가' 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수많은 부분들에 대해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나 무지함에서 비롯된 외면이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나 부끄러운 마음이 사그러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삶의 기준(Frame)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삶의 기준에 따라 환경 조성이 됩니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기준에 따라 환경 조성이 되어지고 성인이 된 뒤부터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조성 되어 지는 겁니다.

기준에 따라 조성된 환경, 그 환경에는 비슷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은 세뇌 아닌 세뇌를 겪게 됩니다.

그곳이 익숙하고, 익숙해서 편안하기 때문에,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옳은 기준으로 설정 되어 집니다.


결국 어떠한 시점에서의 언행은 그 시점까지 제 삶의 기준이 어디에 어떻게 설정 되어 있었던 것인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준에 따라 생길 수 밖에 없는 관심,

그 관심에 따라 생길 수 밖에 없는 욕구,

그 욕구에 따라 생길 수 밖에 없는 직면,

그 직면에 따라 생길 수 밖에 없는 고민....

이런 과정은 누구나 겪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철저하게 결여 되어 있던 부분이 무엇인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토론을 할 줄 모르고, 해결책을 모색할 줄 모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이 올바른 기준인지 아닌지를 계속해서 깨닫고 수정해나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다른 이와의 '소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불통에 익숙해져 왔음을,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온 사방이 막히고 서로가 서로를 고립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불통사회가 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 시점에 사회적인간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 자신의 기준이 어디에 설정 되어 있는가 그 기준은 내 자신의 편리와 편의에 보다 더 많은 비중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편리와 편의에 보다 더 많은 비중이 있는가, 나에게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심의 범위에 대해서도, 관심을 정리 하는 것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리한 것들을 삼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판단하려는 훈련도 필요하며, 다른 이들과 공유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욕구,욕심,욕망 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부정적인 키워드로 사용 되곤 합니다만 저는 신이 우리에게 주신 불과 같은 에너지의 근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 에너지가 없다면 우린 발전도 없을테고 어쩌면 인류가 존속할 수도 없었을테니까요.

불과 같이 적재적소에 쓰여질 때 크나튼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심분야를 바라보며 끌어오르는 욕구는 우리를 직면하게 만들어 줍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내 몸이 닿을 수 있는지,

내 시선이 닿는 것에 내 생활이 머물 수 있는지,

내 시선이 닿는 것으로 난 변화할 수 있는지,

그것을 생각하게 되고 현재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와 같은 '욕구로 인한 직면'을 더욱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이 부분 역시 잘 정리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날 제가 했던 대부분의 고민이 내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데 쓰여져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시간, 능력, 물질 등을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데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건강한 의식을 갖고 내 삶 속에서 그와 같은 문제들을 야기 시키는 이기적 욕망, 불의들과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고 공의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만큼은 갖춰나가야겠다는 다짐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7살,8살이 된 두 아이의 아빠 입니다.

이 아이들은 아직 사회적 문제, 정치적 이슈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사회가 얼마나 깨어지고 아픈 곳인지 직면하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엄마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가르치는 부모가 될 것인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깨어진 세상 속에서 정의과 공의를 실현해나가려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부모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매일매일, 아니 매순간 눈앞에 놓여지는 것 같습니다.


Q. 여러분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셨나요?

Q. 여러분은 편안한 타협과 불편한 공의로움 중 어느쪽을 선호하시나요?

Q. 여러분은 틀린 얘기와 다른 얘기를 발언하는 것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사람인가요?

Q. 여러분은 후배들,후대들에게 어떤 것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Q. 여러분의 자녀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여러분의 손주들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