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 조직들만 알고 있는 열정적이고 행복한 삶의 근원
어릴적부터 읽었던 수많은 위인전들...... 저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 즉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인물이 이룬 업적을 저 역시 따라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이 중요하다고 했던 습관을 제것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했고, 그들이 우선순위라고 했던 것을 저 역시 우선순위로 삼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인정도 받게 되었고, 어린 나이부터 적지 않은 돈도 벌게 되었지만, 공허함이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밤을 헤매고 다니게 되면서 저는 건강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 것, 하라고 말한 것에만 포커스를 맞췄을 뿐, 그들이 왜 그것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진실된 정체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따르기만 했던 것 입니다.
뒤늦게 제가 쫓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철학과 방향성이 제가 갖고 싶었던 행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다는 그들이 누구냐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왜 그런 목표를 세우게 되었을까?
그들은 왜 그것을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왜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많은 질문이 떠올랐고, 저는 돈을 버는 것 보다 그 질문의 해답을 얻는 것을 더 쫓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유튜브를 통해 사이먼사이넥을 알게 되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라는 강연을 접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느꼈던 임팩트가 떠오릅니다.
제가 What을 쫓게 되었을 때의 문제점과 Why를 쫓게 되면서 얻게 된 장점에 대해서 다시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고, 저는 사람들을 분석하는 것 보다 제 자신을 더 깊이 분석하는 것에 시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존경 할 수 있는 어른과 선배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주변의 어른들과 선배들은 한결 같이 탐욕적이었고, 모순적이었고, 발전과 변화를 싫어했던 사람들이었고, 제가 책 속에서 만난 위인들은 마치 판타지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가상의 히어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내 주변에는 그런 인물들을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조차도 없는 것인지 그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고 저는 계속해서 그 동경하는 마음을 키워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나름대로의 의미부여를 하곤 합니다.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그것을 추종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이야기 하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것이 제게는 별다른 의미도 가치로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과연 내가 쫓고 있는 의미와 가치는 어떤 것인지 그 자체가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오랜 방황 끝에 알게 된 저는 ‘건강성’, ‘진정성’, ‘연결성’, ‘확장성’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온통 찢어져 있는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부부가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건강함과 진정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들과 이웃들에게로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순간적인 자극과 편리함과 편안함 만으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만 알아서도 되는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만 알아서도 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 만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개별적인 차이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과 열정을 부어가며 지내온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갈망했던 만큼,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찾아왔던 만큼, 그리고 계속해서 도전했던 만큼 저는 아주 작은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아내와 깊은 교감을 갖고 있게 되었고, 아이들과 한 팀이 되었고, 그렇게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가정이었습니다.
제 삶에는 한순간조차 허락 되지 않을 것 같았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가정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저는 계속해서 부서지고 깨어지고 단련될 수 밖에 없었고 제 안의 의미와 가치는 점점 더 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으면서 손을 마주 잡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우리는 계속 ‘Why’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느끼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모두에게 ‘건강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 것인지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부질 없는 것을 쫓고 있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좋겠고, 진정성 어린 깊은 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부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부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해서 하나하나 다져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How’와 ‘What’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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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스스로도 앞으로 우리 가정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하나하나 잘 준비해나가겠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해나가겠습니다.
끊임 없이 도전하겠습니다.
지금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고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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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러분은 왜 그 일을 하고 계신가요?
Q. 여러분은 어떤 것에서 가치와 의미를 느끼시나요?
Q. 그 생각을 공유하고 있고, 손잡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