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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Mar 06. 2023

사수는 문제집의 해답지다.

부사수 입장에서 사수는 문제집의 해답지 같은 존재다. 내가 푼 문제의 풀이 방식과 답을 바로 확인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답지는 유용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직접 문제를 푼 다음에 봐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해답을 보면 문제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되고, 다음에 같은 문제를 만나도 풀지 못하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성장은 느릴 수 밖에 없다.


사수와 해답지는 문제를 충분히 고민하고 푼 다음에 찾는게 맞다. 많은 부사수가 이 점을 모르고 사수를 검색 포털 사이트나 챗GPT로 대하다가 꾸중을 듣는다. 


사수가 없다면 그건 해답지가 없는 문제집이다. 다시 말해 시험이다. 문제를 풀어도 이 답이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다. 풀이 방식을 비교할 수 없으니 맞춰도 왜 맞는지 모르고 틀려도 왜 틀린지 모른다. 비수기에는 매일 쪽지시험 보고 성수기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 직장생활은 생각만 해도 괴롭다.


사수 없이 버티면 단단해진다. 경험이 쌓이면 답을 맞추는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낸다. 왜 맞는지, 왜 틀린지 경험하고 그걸 체화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만든다. 문제를 풀면서 겪은 고민과 고생의 흔적은 휘발되지 않고 고스란히 뇌에 남는다.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사수를 맞이하는 부사수는 큰 혼란을 겪는다. 일단 사수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데, 나에게 시키는 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타 체크, 표 만들기, 정산하기, 서치하기 등 잡일만 들어온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할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선배였는데, 사회에 입학할 때는 가장 어린 후배가 된다. 많은 신입사원이 이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누렸던 주목도와 명성이 그립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의욕이 앞서 조급해진다.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 신입사원에게 나는 항상 문제집과 해답지의 상관관계를 이야기 해준다.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는 문제집은 없다. 어차피 소화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시간과 에너지만 잡아먹고 제대로 풀지도 못한다. 모든 문제집은 개념부터 시작해서 기초 문제를 제시하고 조금씩 수준을 올리는 식으로 단련시킨다. 신입사원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기업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이 순서는 문제집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오히려 기업의 시스템을 이해하기도 전에 실전 감각을 키우라며 일을 던지는 사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문제 풀기도 전에 해답지 보여주는 과외선생과 다름 없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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