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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각진 생각

질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10가지 이야기

by 브랜드부스터 켄

1.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왜 자신을 15년 동안 감금했냐고 질문한다. 이우진은 대답한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리가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이우진은 이어서 진짜 질문을 오대수에게 던진다.


자, 다시.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줬을까요?


이 이야기는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2.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엔딩. 한 야구팀의 단장이었던 백승수는 팀이 홈런을 쳤다는 야구 중계를 들으며 한 건물에 들어선다. 면접을 보러 가는 상황이다. 백승수를 소개한 이전 상관이 전화로 묻는다. '자신 있어요? 야구도 이제 겨우 익숙해졌는데 다른 종목을요?' 백승수는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글쎄요.
해봐야 알겠지만
열심히는 할 겁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덧붙인 물음은 백승수가 화면을 정면으로 보고 한 대사다. 드라마 시작부터 전지적 3인칭 시점이었던 시청자는 백승수의 질문을 받은 순간 드라마 안에 끌려들어간다. 시청자가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며 과연 나는 백승수처럼 살 수 있을까 번민하는 사이 드라마는 시청자를 기다려주지 않고 무심하게 끝난다.



3.

능력과 부패에 관한 유명한 역설이 있다.


청렴하지만 무능한 사람과
부패하지만 유능한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을 뽑을 겁니까?


이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둘 중 하나를 고민하지만, 사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질문의 목적은 양자택일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부패한 사람이 유능하다는 프레임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능력과 청렴도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때로는 질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질문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된다.



4.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연설 직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우선적으로 요청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이 때 중국 기자가 나섰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 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던져도 될까요?'


EBS 다큐프라임에서 소개한 이 사례는 우리나라 교육이 주체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의문점을 던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더불어 기자회견에서는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던 기자들이 정작 국제무대에서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평소에 문제의식이 있었으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5.

광고캠페인 <Got Milk?>는 광고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캠페인으로 꼽힌다. 1990년대 초 우유 소비량이 줄자 큰 타격을 입은 미국 낙농업계는 우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한 광고대행사에게 광고를 맡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우유의 건강함을 강조했던 기존 광고와 달리, 무려 20년 동안 컨셉이 유지된 이 캠페인은 빵을 먹고 우유가 없는 상황이나 필요한 상황을 연출하고 'Got Milk?'라는 질문을 일관적으로 던진다. 사고의 전환으로 우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6.

배우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 시절 너무 힘든 나머지 선생님에게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인생은 행복하기만 해야 하나? 힘들면 우리 인생이 아닌가? 나의 힘든 시간까지 사랑해야 진정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이야기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7.

역대 최연소 펩시 CEO가 된 존 스컬리는 펩시의 전성시대를 연 인물이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가 필요했지만 당시 펩시에 미치지 못하는 애플로 가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게다가 음료와 컴퓨터는 아예 다른 영역이다. 망설이는 스컬리에게 잡스는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역사에 남을 스카우트가 이루어졌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허비할 겁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습니까?



8.

무제한으로 열린 질문의 효용은 답하는 사람의 수준과 고민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정의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서현 교수의 정의다. 그는 저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건축을 이렇게 정의한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적 구조물에서 용도가 사라졌을 때 존재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건물이다. 하지만 용도가 사라졌더라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건축이다.


특히 자신이 몸 담은 직업의 본질에 스스로의 언어로 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업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보는 건 어떨까?



9.

리더에게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런 능력을 가진 리더는 귀하다. 심지어 구성원의 질문에 잘 대답하는 리더조차도 드물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요즘 3요 주의보에 대기업 임원들이 비상이라는 기사가 있다. 이런 질문에 리더가 당황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 일이 무엇인지, R&R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당신의 역량이 여기에 적합해서 적임자라고 설명하는 건 지시의 기본이다. 권위적인 리더는 질문을 용납하지 않고 상명하복을 중시하며, 만약 질문을 받더라도 통제된 시간과 통제된 문구로 받을 뿐이다.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질문을 독려하기 위한 의도일 뿐이다. 바보 같은 질문은 있다. 특히 무례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질문은 바보를 넘어 최악의 질문이다. 멍청한 리더는 질문을 잘하는 게 좋은 리더십이라 믿고 바보 같은 질문을 남발한다.


요즘 일하는 거 어때?

이건 명절에 만난 친척이 '요즘 학교는 어때?'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부러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 사생활까지 묻는 리더도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생각 없는 질문은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 리더는 구성원이 자신의 쓸데 없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게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0.

질문은 힘이 세다. 질문을 들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답을 찾게 되어 있다. 게으른 뇌를 가진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질문을 만들어냈다. 서로 질문하며 서로의 뇌를 자극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스스로의 뇌를 자극한다. 인류는 질문의 힘으로 욕망의 역사를 쌓아왔다. 철학자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니까.


도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런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머지 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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