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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드부스터 켄 Jun 24. 2024

확률의존 의사결정은 비겁하다.

(다른 교수가 포기한 산모를 대신 담당하게 된 양석형 교수가 산모에게 말한다)

양석형 :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확률이 제로는 아니니까, 그 확률에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중략, 퇴근하려던 장겨울이 차팅 중인 추민하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한다)

장겨울 : 왜, 무슨 문제 있어요?

추민하 : 이것 좀 보세요.

장겨울 : 이 환자분, 잘하면 성공할 수도 있겠는데요? (위로 스크롤하며) 음 이 분은 조금 힘들겠다.

추민하 : 뭐 이상한 거 없어요?

장겨울 : 있어요. 다른 산모를 한 차트에 쓰면 어떡해요.

추민하 : 같은 산모예요. 차팅한 사람도 같은 사람.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교수님만 바뀌었는데, 차팅이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바뀌었어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中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던 마야는 그의 측근이 파키스탄의 어떤 주택에 들어간 사실을 알아낸다. CIA 국장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이 회의를 열게 되고, 국장은 참석자들에게 그 주택에 빈 라덴이 있을 확률을 묻는다.)

관계자 60%도 많이 쳐준 겁니다. (비밀 거처에 숨은 인물이) 거물급인 건 확실하지만, 빈 라덴이라고는 장담 못합니다.

마야 : 믿기 힘들겠지만, 전 100% 확신합니다.
<제로 다크 서티>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하고, 이순신은 석방되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간신히 판옥선 13척에 초탐선 32척을 수습했지만 수백척에 달하는 왜 수군에 열세다. 조정에서는 조선 수군을 육군에 합쳐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이 때 이순신은 장계를 올린다. 이 장계를 시작으로 이순신은 다시 수군을 재건하여 13척으로 133척을 물리쳤다. 후손들은 이를 명량 해전으로 기억한다.)

이순신 : 임진년부터 5·6년간 적이 감히 호서와 호남으로 직공하지 못한 것은 수군이 그 길을 누르고 있어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맞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말미암아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비록 전선의 수가 적으나 미천한 신이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왜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충무공전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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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생존율이 극히 낮은 태아가 있다.
같은 의사 두 명이 서로 다른 판단을 한다. 한 명은 포기하고, 한 명은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같은 산모의 차트에 서로 반대되는 의견이 담긴다. 의사의 책임감이 감동을 만든다. 

여기 수 년 동안 빈라덴을 쫓은 요원이 있다.
그녀는 빈 라덴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 거처를 발견한다. 아무도 확신하지 못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한다. 그 때 이 요원이 100%를 장담한다. 그녀의 책임감이 테러범을 잡았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전멸한다.
도원수 권율은 이순신 장군에게 배를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 한다. 조정의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다. 이군신 장군은 따르지 않는다. 승리할 확률이 낮더라도 바다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명량에서 왜군을 격파하지 않았다면 일제강점기의 시작은 훨씬 앞당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장군의 책임감이 나라를 구한다.

의사결정자와 만날 일이 많기에 종종 확률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목격한다. 이런 유형의 의사결정자는 모든 결정에 확률을 집어놓고 보고 싶어한다. 그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판단의 책임을 확률에 돌리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 확률을 만들어낸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렇게 의사결정하면 마음은 편할 수 있겠지만 결국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확률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 실패할 확률은 항상 높다. 따라서 실패할 확률에 너무 예민할 필요 없다. 확률은 현상을 표현하는 일부일 뿐,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지 못한다. 확률이 아닌 자신의 전망에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성공을 만든다.


지금의 문명이 그 증거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작물을 기르고, 건물을 짓고, 언어를 만들고, 철을 제련하고, 에너지를 운용하고, 기계를 설계하고, 빠르게 이동하고, 컴퓨터를 만들고, 달에 착륙하고,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게 확률로 따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오히려 낮은 확률을 극복했을 때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무엇보다도 당신 자체가 이미 3억 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났다. 당신 자체가 이미 낮은 확률을 이겨낸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증명한다.


의사결정은 확률에 의존하지 말고 체계와 직감에 의존해야 한다. 만약 직감이 부족하다면 체계를 따르거나 직감을 기르던지, 그것도 못하겠다면 더 나은 사람이 의사결정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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