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잘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도착하면 운전을 잘 하는 걸까? 그럼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비게이션이 보여주는 주행거리와 주행시간을 보면 될까? 글쎄, 그 차에 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고 말하겠지.
운전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공통적이다. 운전 실력은 운전자 자신이 아닌 승객이 평가해야 하고,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
그 승객은 차량에 탄 내내 느낀다.
과속방지턱에서 지나치게 덜컹거리지는 않는지
급가속이나 급제동을 하지는 않는지
신호는 잘 지키는지
옆 차나 보행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지
심지어 욕설을 하는지도
승객은 느낄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피드백한다.
너무 빨라요
너무 느려요
조심해 주세요
무서워요
우리 조금만 양보해요
운전자는 그 피드백을 받아들여서 고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전자의 운전 뿐만 아니라 그가 피드백을 수용하는 자세까지, 그 총체적인 경험이 '저 사람은 운전을 잘한다'는 평가를 만든다.
그럼 '일을 잘 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회사는 구성원이 '일을 얼마나 잘 했는지'를 평가한다.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전 글에서 나는 KPI 기반 성과 평가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썼다. KPI는 모든 구성원의 개별 성과를 정확하게 대표할 수 없고,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KPI 기반 성과 평가는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성장을 이끌 수 없다. 사물을 평가한다면 딱 그 시점의 가치를 규명하면 될 일이지만, 사람은 다르다.
저는 회사를 '동일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모인 이익집단'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구성원의 가치는 결과값이 아닌 과정에서의 태도로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서 어쩌다 한 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닌, 통제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의도한 결과가 나오게끔 만드는 게 진짜 실력이다. 찍어서 100점 맞고 다음에 실력이 드러나 60점 맞는 것보다, 꾸준히 80점이 나오는 게 훨씬 낫다. 둘 다 평균 80점이지만 실력은 다르다.
여기서 형성평가와 총괄평가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형성평가는 학습자를 평소에 관찰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 사람이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쪽지시험, 질문, 토론, 피드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총괄평가는 그동안의 학습 결과를 한 번에 확인하는 것이다. 수능, 중간고사, 자격증 시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KPI로 성과를 평가하는 건 일종의 총괄평가다. 내가 겪은 회사 모두가, 혹은 지인이나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은 회사 모두 총괄평가를 하고 있다. 쉽게 말해 1년 단위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중간고사에 벼락치기를 하고 시험 뒤에 다 잊어버리듯이, 평가 시즌이 되면 갑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평가 뒤에 늘어지는 건 다반사다. 말 그대로 그 시점의 '가치'를 매기는 것 뿐.
결과적 평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구성원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제 구성원의 성과 평가는 총괄평가가 아닌 형성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려면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AI 교육 스타트업에 있었다. 이 회사는 AI 기술로 전세계 교육의 평준화를 만들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이 사명이 형성평가에 기반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이라도 능력은 다르기에 실제로 학습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교사가 이걸 캐치해서 학생 개개인에게 신경을 쓸 물리적, 정신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도 나가기 바쁘니까. 이 회사는 이 문제를 AI의 형성평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역시 형성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AI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회사가 설정한 공통 문제를 해결하는데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데이터로 기록하고 매니저가 수시로 피드백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KPI가 아닌 별도의 성과 지표를 만들어서 자신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는 모른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 길이 옳다는 건 믿는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평가해야 좋은 결과가 꾸준히 나올테니까.
기회가 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증명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그 기회가 멀지 않은 듯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