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바르게 살자>는 인적이 드문 시골길에서 도로를 주시하는 교통 순경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순경은 이윽고 불법 좌회전을 저지른 한 차량을 잡아낸다. 면허증을 요구하는 순경에게 운전자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나 이번에 새로 부임한 서장인데?'
순경은 서장에게 힘차게 경례를 한다. 그리고 서장에게 딱지를 떼버린다. 원칙에 입각한 완벽한 행동이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상관과 동료들의 눈이 곱지 않다. 이들에게 정도만은 경찰의 모범이 아닌 유도리 없고 문제만 일으키는 말썽꾼일 뿐이다.
당신이 순경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상대방을 법을 어긴 운전자와 서장으로 분리하여 대할 수 있을까? 잠깐이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원칙을 지키며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떠올리게 한다.
2.
원칙은 외부 환경에 일관적으로 대응하는 명확한 행동기준이다. 흔히 철학, 가치관, 윤리, 약속, 미션, 비전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원칙은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한 행동규범인 규칙과 대비된다. 법으로 비유하자면 최상위의 법인 헌법은 원칙과, 그 헌법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법률, 시행령, 조례 등은 규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직의 원칙은 약자와 강자를 구분하지 않고 공정하고 일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사사롭지 않아야 한다. 원칙은 무엇보다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예외'가 없어야 한다. 원칙은 리더가 구성원에게만 강요할 수 없으며 리더 본인부터 솔선수범해야 유지된다.
3.
조직의 구성원 모두 원칙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건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원칙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들기에 대부분 '규칙'을 어기는 행동으로 '현실'과 '타협'을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게 되면 원칙 또한 무너진다.
횡단보도로 건너면 좋겠지만 지금 건너야 하기 때문에 무단 횡단한다. 시속 100km 제한인 고속도로지만 그렇게 달리면 뒤에서 경적이 울리고 센스 없게 운전한다고 욕 먹는다. 기둥마다 못 하나씩만 덜 박아도 큰 이상 없으니까 이걸 빼돌린다. 경쟁PT 결과 에이전시A의 점수가 가장 높지만 에이전시B의 사장이 본부장님과 고등학교 동창이니까음이 더 잘 맞으니까 에이전시B랑 계약한다.
스포츠 경기에 규칙이 필요한 이유는 최소한의 공정함을 부여하여 페어 플레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규칙이 없는 권투는 길거리 싸움이 될 것이며, 규칙이 없는 축구는 럭비와 구분이 힘들 것이다. 스포츠의 규칙이 경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붙잡아서 궁극적으로 스포츠의 원칙을 지키는 것처럼, 조직의 규칙은 조직의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3.
조직의 원칙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은 사람이 원칙 자체가 되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고객 우선'을 원칙으로 외치지만, 정작 회사원이 모셔야 할 고객은 '직속 상사'다. 그 상사 역시 직속 상사를 고객으로 모시고, 그 상사 역시 직속 상사를 고객으로 모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니 고객이 아닌 기업의 오너나 최고관리자가 기업의 원칙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무도 진짜 고객을 신경쓰지 않고, 내 상사의 눈치만 살피는 처세가 중요해진다.
원칙이 사람이 되는 순간, 원칙은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가 아닌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변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얼마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사람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원칙이 사람의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건, 원칙이 없다는 말과 같다. 모든 직장인이 원칙을 지키기 힘든 이유는 원칙을 제일 먼저 지켜야 할 직속 상사가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을 기분에 따라 바꾸면 그건 반칙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원칙을 메뉴얼로 만들어 아예 사람이 원칙이 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낸 디즈니와 무인양품은 원칙을 잊은 기업이 본받아야 할 모범 사례라고 할 만 하다.
4.
원칙을 망치는 주체는 사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칙을 지키는 주체 또한 사람이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원칙주의자라고 한다. 원칙주의자는 모든 의사를 원칙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조직 구성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본능적으로 지름길을 찾다가 길을 잃고 허둥대는 사람들은 바른길을 걷는 원칙주의자를 보고 돌아올 수 있다. 원칙주의자는 항구의 등대이며, 밤하늘의 북극성이자, 탐험가의 나침반이다.
이렇게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원칙주의자는 '현실을 모른다', '꼬장꼬장하다', '유연하지 못하다', '답답한 소리만 한다',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고 불린다. 좋게 좋게 갈 수 있는데 굳이 힘든 길을 가려는 미련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원칙주의자는 둥글둥글하지 않고 뾰족하여 주위를 아프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고슴도치 같은 고집불통으로도 여겨진다.
원칙주의자는 조직에서 인기가 없고 심지어 미움받기까지 한다. 그래서 아무도 원칙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가 되는 건 상당히 피곤하고, 자신에게도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하면서 까탈스럽게 굴지 말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되라는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기업은 조직 구성원이 원칙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리더에게 부여했지만,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진 리더는 많지 않다.
신기하게도 원칙주의자가 없으면 그 조직은 분별력을 잃는다. 직장인이라면 '미션', '비전', '핵심 가치' 등과 같은 조직의 원칙을 홈페이지나 사무실 벽에서 마주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달달달 외워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일할 때마다 그 원칙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잊기 쉬운 원칙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사람이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어야 조직 구성원들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원칙주의자가 조직에 필요한 이유다.
5.
원칙은 도구다. 원칙이 있어도 사람이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원칙은 무용지물이다. 규칙을 어기지 않았으니 된거 아니냐는 태도는 그 근간의 원칙을 잊었다는 말과 다름 없다.
대부분의 위험은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삼풍백화점의 붕괴, IMF 구제금융 요청, 성수대교의 붕괴, 세월호의 침몰을 기억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면 당장의 불편함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피곤하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편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보다 더 생산적이다. 작게는 팀, 크게는 국가까지 원칙을 지키는 편이 조직을 위해 훨씬 이득이다.
우리는 권력이 없어도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존경한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있고 멀게는 비폭력주의를 지켜낸 간디가 있다. 원칙을 지키는 행위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그래서 숭고한 행위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조직에 원칙주의자가 있는 건 행운이며, 조직문화는 이런 사람들을 대우해야 한다.
6.
이 글을 읽고 자신이 속한 조직을 떠올려 보자. 당신의 조직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조직에서 내려진 의사결정, 그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누가 원칙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이야기했는지 구분해 보자.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는가? 당신의 조직에 원칙주의자는 누구인가? 혹은 원칙주의자가 있기는 한가? 그저 현실을 따라가기 급급한 상황인가? 오늘부터라도 이 물음의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한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고 항상 지름길을 찾다가 길을 잃는다. 길을 잃었을 때, 원칙주의자는 묵묵히 바른 길을 걷고 있다. 원칙주의자가 길을 안다. 원칙주의자가 길잡이다.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원칙주의자의 뒤를 따라야 한다. 만약 원칙주의자가 없다면 당신이라도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