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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표 Jul 30. 2020

28.5년, 토성리턴 1회차

28.5년, 한 바퀴가 지나가고 있다.

28.5년, 토성리턴의 나이

[우리는 보통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 자식이 성장해 부모의 역할을 계승하는 기간으로 한 세대를 잡는다 하는데, 이는 토성의 공전 주기인 29.45년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양 점성술에서 말하는 토성 리턴은 토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제자리에 돌아오는 기간을 의미한다. 토성 리턴은 보통 28~30세와 58~60세, 이렇게 두 번 찾아오죠. 이 시기는 환상과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나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때예요.]  <더 해빙>


2020년 7월 말. 나는 28년 하고 6개월 정도 살았고, 나이로는 29세라 20대의 마지막 해이다. 빠른 년생이라 사실 친구들 다 30대 들어갔는데 부득부득 이 순간을 기다렸다고, 29세라고 우기고 있다. 직장인으로도 벌써 6년 차라 이제 내 실무 분야에서는 회사에서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승진도 했고, 내 논리와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하면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도 되었고, 좋은 사람과 결혼도 했다.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한 친구들과 이제는 각각 재테크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게 되었고 뉴스도 지루해하지 않고 정치에 대해서도 가끔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어렸을 때 소위 말하던 '어른'같은 모습을 띈 셈이다. 그렇지만 자주 공허함과 결핍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난 이대로 살고 싶은 걸까?


이런 질문을 하는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0대의 삶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이렇게 대놓고 말하긴 약간 쑥스럽지만, 소위 SKY 중 하나인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10대의 대부분을 학생의 정석대로 보내야 했는데, 그게 불편하거나 힘든 적은 없었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 거였고 나는 그 학교를, 그 학과를 꼭 가고 싶었다. 어려운 일도 그다지 없었다. 해야 하는 집안일도, 궁핍함도 없었고 그저 11시까지 지정된 야자시간을 꽉 채워 그날의 공부를 해내기만 하면 되었다. 매일을 내리 10시간 넘는 시간을 공부로만 꽉 채우다가 2010년 12월 8일, 예정된 시간보다 몇 시간 빠르게 합격자 발표가 났고 나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사실 시작이었는데.

별개로 난 우리 학교를 진짜 좋아한다. 노는 것 포함 뭐든 열심히 하고 싶게 하는 교정 풍경.

그런 점에서 20세 이후의 삶은 정말 10대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날의 공부는 없었고 지정된 시간도 없었고 꽉 채우기로 정해진 것도 없었다. 한 고비를 이루어냈다는 자부심과 이제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한데 뒤엉켜 다채로운 색깔로 굴러갈 뿐이었다. 다행인 건 모두가 그랬고 모두가 이곳저곳에 부딪히며 굴러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누구는 의연한 척 비틀거리며 걷기도 하고, 누구는 발라당 눕기도 하고, 누구는 지그재그로 내달리기도 하고 그런 모습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불안해하기도 하고 그게 그냥 다들 그런 20대 초반의 모습들이었다.

모두가 부끄러움도 초조함도 없이 다채롭게 방황했다.

아주 다행히도 나는 20대 초 다양한 활동들을 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순간순간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학회 활동도 1년간 치열하게 했고, 싱가포르로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인턴도 컨설팅펌과 외국계 기업에서 몇 개월씩 했다. 항상 이렇게 열심히 살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어떤 학기는 사춘기처럼 강의시간 외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각종 책들을 읽고 필사를 하고 노래를 들으며 생각을 적기도 했고,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빼곡히 채워 쓰기도 하였다. 또 어떤 한 달은 내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무한정 보기도 하였고, 어떤 학기는 그때의 남자친구와 내리 붙어 다니며 별거 없이 캠퍼스 연애를 만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대 초반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뭔 이런 헛짓거리를 많이 했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런 순간들이 하나의 반짝거림이 되어 또 지금까지 오게 했구나 싶은 기분 좋은 경험들이 되었다.


사실 살아온 삶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워낙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동안 항상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꽤 집중하며 살아왔던 것에 비해,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20대의 오색찬란한 충돌들을 겪으면서 나름 세운 ground  rule이 있다면, "나 다움"을 정의하는 질문 몇 가지를 잊지 않고 종종 던지자는 것이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였는데, 직장인이 된 이후의 내가 이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부끄러워졌다. 고작 이달의 월급과 보너스, 눈앞의 휴가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저 그 정도만 원하고 살아왔나 싶었다. 나는 토성리턴 1회차를 이미 보내왔고, 다음 회차는 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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