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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표 Jul 30. 2020

다음 28.5년의 회전은 어떻게

줄탁동시의 시기

줄탁동시 : 닭이 알을 깔 때에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함


원래는 사제지간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고민을 시작한 나에게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바깥의 기운도 나를 끄집어 내려하는 시기. 어쨌든 나는 내면에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지금의 편안하고도 익숙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겠다 라는 막연한 감각을 주었다.

알을 깨고 나가는 데에는 계기가 될만한 사건이 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 지는 거진 1년 정도 되었다. 알을 깨고 나가야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확고해진 데에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알 속의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이었다. 매년 힘들어지고 있는 취업이지만, 내가 취업할 때도 역대급 취업난이었다. 다행히도 지난 시간의 내가 부지런히 고민해둔 덕에 아주 어렵진 않게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이직도 하고 필드도 바꾸고 했지만, 결국엔 6년 차까지 키워온 커리어는 바로 그만두고 나가기엔 너무 괜찮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 얻은 승진 기회는 사실 이 나이에 이루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매일 출근하기 싫다고는 했지만, 서울 중심의 -택시 운전사 분에게 가달라고 하면 내비게이션도 안 켜고 갈만한- 거대한 시그니쳐 건물에 있는 <내 자리>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차지하고 싶을 만한 곳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누구보다 먼저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마스크 대란일 때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한 박스씩 아낌없이 지원할 정도로 복지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나의 매니저는 똑똑하고 쿨한 사람이었고, 팀원들은 모두 모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여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결국 고민은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번 캠페인만 끝나면"으로 미뤄지고 뭉개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등 떠밂>의 신호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줄탁동시의 시작이었던 아주 작은 균열은 예상치 못할 때에 생겼고, 한번 생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작은 다른 균열들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일단 회사에서 가장 친했던 대리가 퇴사를 선언했고, 3일 뒤에 멘토 역할을 하던 내 매니저가 퇴사했다. 그렇게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리고 나니 불현듯 이곳에 있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그 다음 주에 마케팅 서밋에 참석했는데, 나는 그중 한 강연에서 <디자인씽킹>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화이트보드에 컬러풀한 포스트잇은 디자인씽킹의 상징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두근거림의 상징!

<디자인씽킹>은 미국 IDEO CEO인 팀 브라운이 확산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 씽킹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사용자의 니즈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기 위해 공감적인 마인드셋을 활용하는, 일종의 복잡한 문제 해결에 대한 논리추론적 접근법이다. 이는 제품, 서비스부터 비즈니스 모델과 프로세스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는 사용자 중심의 혁신 프로세스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디자인씽킹>을 신문에서 처음 봤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너무너무 재밌어 보였고 이걸 하고 싶어서 경영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씽킹>은 커다란 보드에 다양한 생각들을 스크랩하고 복합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결국 학과 수업에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창업학회를 하면서는 질리도록 했다. 그리고 사실은 절대 질리지 않았다.


이렇게 내가 재밌어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 온 중심에는 <디자인씽킹>이 있었음에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은,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저렇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라는 생각과, "요즘은 그냥 엑셀에 숫자를 넣고 어느 정도 위에서 원하는 답변들을 고려하여 논리를 짜 맞추는 식으로 일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소비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아니 그냥 내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은 '아니오'로 너무 극명했다. 그렇게 균열이 계속되고 있었다. 자 그러면 바깥에는 무엇이 있지? 어디서부터 깨어나가야지? 다음 회전은 어디로 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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