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깨야하는 것은 알겠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해?
일단 다음 행동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었다. 그렇지만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첫발이 느렸다고 했다. 조심조심 그냥 길도 징검다리 건너듯이 첫발을 매우 조심스럽게 내딛고 나서는 걸어갔다고. 이게 그 28년 만에 다시 시작된 "첫 발 떼기"인 셈이었다.
무작정 일단 회사의 시스템을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방법은 아주 다양했다. 회사에 살짝 걸쳐진 채로 부업을 할 수도 있었고, 아예 퇴사를 하고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는 방법도 있었다. 부업의 종류도 아주 다양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하기부터 시작해서 물건을 떼다가 스마트 스토어에 팔아보기, 에어비앤비 운영해보기 등 해 볼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아예 퇴사를 한다면 그보다 더 무거운 일들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른 진로를 위하여 로스쿨 가기나 대학원 가기도 있고, 창업하기도 그 일 중 하나였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퇴사 후 로스쿨을 택했었고, 아주 예전엔 그것도 하나의 옵션 중 하나였다. 물론 법조인이 오랜 꿈이어서 로스쿨을 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 친구들은 '가장 잘하는게 공부이고, 자격증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로 방향을 정한 이상 지금 나에겐 <좋을 것 같아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곳에 남아서도 - 월급이 올라가면, 성실히 해서 임원이 된다면, 오래 다녀서 휴가가 많이 늘어난다면과 같은- <좋을 것 같아서> 정도의 미디요커는 도처에 널려있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엔진을 달고 너무 재밌어서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를 형형색색 붙여나가는 열망의 일이지, 미디요커의 일은 아니다는 생각에 공부 옵션은 지웠다. 유튜버로의 전향은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나는 유튜브를 즐겨보는 사람도 아니고 영상 콘텐츠보다는 이렇게 브런치 플랫폼을 부유하며 글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재밌게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여러 옵션들을 조심스럽게 생각했지만 결국 어디로 첫발을 떼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창업을 하자"였다. 그렇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의 질문이 남아있었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지금까지 꽤 정석대로, 그리고 그 정석을 성실히 살아왔었다. 물론 근본에는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선택하긴 했지만, 그 옵션의 범위 자체가 정석에서 벗어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외국에 살고 싶었을 때에도 워킹홀리데이나 무작정 어학연수를 가기보단 교환학생을 택했고, 문학작품을 읽고 쓰며 방황하고 싶었을 때에도 학교를 벗어나진 않았었다. 휴학을 할 때도 인턴기간이 겹쳐서라든가, 취준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하고 싶어서라든가 항상 이유를 붙이고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창업을 하자"라는 결심에는 정석이 없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단 내가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잘할 수 있는지, 어떤 걸 가지고 있는지를 쭉 적어보고 일단 재밌어 보이는 것 위주로 추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