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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가 옳을까? 택시가 옳을까?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의 시간

 
파괴적 기술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의 서문을 보면 등장인
물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익스는 도둑놈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이고 여자애는 창녀다.” 이 작품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 세기 전반 영국의 암울했던 상황을 그려냈다. 실제 당시 영국에는 범죄를 직업 삼 아 살아가던 사람들이 1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비참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상케 한다. 문제는 이러한 암울한 상황을 만드는 데 ‘기술의 발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당시 섬유 노동자들은 방직기가 자신의 직업을 빼앗는다고

생각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Luddite 운동을 벌였다. 혁신적인 기술이 일으키는 패러다임을 거부하려는 현상은 방직업계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증기선이 발명되었을 때 선원들은 배에 올라가 출항을 막았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인쇄술이 발달하자, 하층민들이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불만을 전파할까 봐 인쇄술의 도입을 막았다.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한층 더 눈부시게 발전시켰지만, 동
시에 기존의 패러다임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거센 반발과 거부에 부딪쳤다. 이는 한마디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기술은 어차피 발전하게 되어 있고 또 사람을 위해서 발전하는 것인데 정작 기술로 인해 일부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자본과 지식이 스타트업을 주목한다는 것은 향후 기술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트업이 비즈니스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파괴적 기술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인지해야 할 문제다. 스타트업이 열심히 개발한 기술이 결국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딜레마. 이것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이것은 마치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의 시간’과 같다.


‘택시’가 옳을까, ‘타다’가 옳을까

산업혁명 당시 반발했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어제까지 아무 걱정 없이 일하며 돈을 벌었던 내가 갑자기 해고된다면 이것은 부당한 일이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그렇게 했다면 분명 ‘적 (敵) ’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대상을 공격하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공격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저항해도 결국 언제나 기술이 승리해 왔다. 방직기의 발명과 보급은 섬유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 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19 년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다. 가장 대 표적인 것이 바로 ‘카카오 택시’, ‘타다’와 택시기사들의 충돌이었다. 이 사건으로 택시기사들이 연속적으로 분신을 시도했으며, 언론과 여론이 떠들썩하게 움직였다. 택시기사들에게도 ‘카카오’, ‘타다’라는 새로운 플랫폼은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 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은 어렵게 택시 면허를 따서 이런 기반을 유지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는데, 뜬금없는 회사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들에게 ‘카카오’, ‘타다’는 곧 적인 셈이다. 숙박업계도 마찬가지다. 숙박업 면허를 만들고 갱신하는 노력을 해온 기존 업체 입장에서는 에어비앤비가 적일 것이다. 뜬금없이 동네의 이웃이었던 인근 집들이 자신들의 경쟁업체가 되면서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딜레마는 시스템이 잘 발달하고 체계화된 국가
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차근차근 기술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제도를 정비하기 때문에 시스템 이견 고한 편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급격한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한꺼번에 수용하지 못한다. 우버가 한때 유럽에서 큰 저항에 부딪힌 것도 기존의 택시 사업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법과 제도가 다소 허술한 저개발 국가에서 우버나 그랩이 비교적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논쟁과 저항 이전에 아예 혁신적인 기술이 그 모든 것을 ‘접수’해버리는 결과를 낳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를 낳는 또 다른 요인은 각 사회계
층이 갖는 지식의 차이다. 예를 들어 리더나 첨단 지식 분야에서 근무하는 전문가, 디지털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혁신적인 기술이 어떻게 미래를 변화시킬 것인지를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일자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알 기회가 적은 사람들, 생활에 쫓겨서 ‘혁신 기술’과 같은 것을 공부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변화의 물결에 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되며, 더 크게 당황하게 된다.


연착륙을 위한 방법들

그렇다면 누군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기술의 발전을 막아야
할까.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육성을 막아야 할
까. 안타깝게도 혁신 기술의 개발과 확산은 지금보다 더 빠
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다. 또한 그것이 불러일으킬 변화의
폭도 더 크고 넓어질 것이다. 이 변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다. 바꿔 말하면 가까운 미래에 이 첨단기술이 특정 사람들
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르며, 이로 인해 생
계에 타격을 입는 사람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말했듯이 이런 변화는 거침없이 몰려오는 쓰나미나
허리케인과 같다. 막거나 거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대
세인 셈이다.


딜레마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스타트업이 같이 성
장할 대안은 없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적 안전망을 마
련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먼저 국가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
인지 재검토해야 한다. 이는 스타트업의 발전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게 감안해야 할 점이다. 파괴적인 기술이 점점 많아지
고, 이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고 그래서 이를 거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결국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지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히
스타트업에 자금을 대고 그들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이 문
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
을 때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에 따른 문제는 무엇인
지, 그때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게 지킬 것인지 대안
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적일수록 실업률은 높아지는 법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이것이 기존의 일자리를 자꾸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나 KFC 만 떠올려 봐도 쉽게 이해할 것이 다. 요즘 직접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없
다. 거의 대부분의 매장이 음식 주문용 키오스크를 두기 때
문이다. 이 역시도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
는 딜레마’ 일 것이다. 이때 국가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
는가?

현대 경제연구원은 ‘ 2019 년 다보스 포럼의 주요 내용과 시 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술혁명으로 생상성이 향상되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효
과가 기대되나 향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등 노동시장
의 변화가 예상되어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AI , 스마트 공장 확대 등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여 경 제성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술혁명으로 노동
의 대체 및 보완이 예상되고 이에 따라 일부 일자리 소멸, 새
로운 직업군 탄생 등이 수반되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불가피
하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적인 안전망이 튼튼하면, 즉
실업에 대한 보완책이 확실하다면 어떨까. 국민이 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국가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다면 어떨까. 일자
리를 잃었다고 해서 혁신기술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거부하
는 현상이 줄어들지 않을까. 최소한 정부가 일자리를 잃어버
린 사람을 방치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저항하기보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앞으로 국가가 어떤 모습을 지향하면 좋은 사례가 있다.

 있다. 바로 스위스 정부다. 스위스는 강력하게 스타트업을 지원함으로써 혁신적인 기업들이 자국에 빨리 뿌리내리도록 애쓴다. 덕분에 스타트업으로 인한 고용 창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동시에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직업 교육을 실

시하여 실업률을 더욱 낮추고 있다. 또 복지제도를 강화하여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한다. 스위스의 이런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이야말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좋은 대

안이다.


이러한 노력 덕에 스위스는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 WIPO에서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 GII에서는 무려 8 년간이나 세 계 1 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전 세계 80 개국을 대상으로 국가 경제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측정한 지표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에서는 매년 4 만 개의 신생기업이 창업한다고 한다. 또 그중 82 %가 스 타트 업이다. 거기다가 창업 5 년 이내 3 년 연속 평균 20 % 이 상 고성장한 ‘가젤기업’ 수도 400 여 개나 된다. 그런데 스위 스의 청년 실업률도 놀라울 정도로 낮다. 2018 년 기준 2.5 % 정도인데, 이는 거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수준이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스위스 정부가 하는 일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정부 운영에 가깝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국가의 미래를 바꾼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도-높은 혁신 성-낮은 실업률’ 이 3 박자가 어우러진 시스템은 앞으로 국 가가 반드시 구축해야 할 시스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정부 신뢰도가 낮다. 정치의 영향이 크지만, 정부 정책 역시 규제가 강하다 보니, 이 부 분에 대한 신뢰도도 낮고 혁신성도 떨어진다. 실제 OECD 가 발표하는 정부 신뢰도 조사 ( 2018 년 OECD - KDI 간 공동연구 보고 서)에서 한국이 36 개 회원국 가운데 역대 최고 성적인 22 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으며, 혁신성 분야는 11 위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실업률도 매우 높다. 지 난 2019 년 2 월 기준으로 보면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 준으로 치솟았다. 스위스와 정반대인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낮은 혁신성-높은 실업률’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의 시간’은 기술이 발전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문제이긴 하지만, 정부의 역할과 시스템 개편으로 얼마든지 이 혼란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시스템 개선 없이 딜레마의 시간을 길어지게 두면 사람들은 점점 혁신을 거부할 것이고 개인-기업-사회는 더 퇴보하게 될 것이다.


사회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연구하면

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

은 ‘곧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스타트업이 환호할 만한 기술을 개발하여 사업을 확장시킬

는 일이 누군가의 분신자살을 부른다는 것은 이 ‘만인에 대

한 만인의 투쟁’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이를 막으려

면 개인과 기업이 빠르게 변하듯 국가도 더 빠르게 변해야

한다. 스타트업만 독려한다고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파괴적 기술이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대안도 있어야 혼란

을 줄이면서 좀 더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출처_변종의 늑대에서...‘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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