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Ⅰ. 남의 회사에서 배우는, 내 브랜드의 답
오너와 만남 [ 프롤로그 ]
브랜드도 사람처럼 일생의 시간 흐름을 가진다.
태어나서 자라고 자손을 둬 큰 일가를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늙고 병들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사망하기도 한다.
얼마의 시간을 영위할지는 브랜드 각자의 생체 시간이기에 기계적으로 끼워 맞출 수는 없겠다.
다만, 어떤 잘 가꿔진 브랜드도 30년이 되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 때라고 느끼는 듯하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공간으로서 서점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츠타야서점의 모기업 CCC는
츠타야의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문을 준비했다.
문화적 지층이 깊은 지역인 다이칸야마에 서양 문물의 파도를 흠뻑 흡수한 세대인 단카이 세대를 위한
컬처 빌리지 T-site를 연 것이다.
T-site는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세대에게는 여유있는 일상의 만족감을 제공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독특한 감성 여행지로서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쌍계명차는 그 서른을 지나 40살로 넘어가던 해에 처음 만났다.
지리산 자락의 하동 땅에서 쌍계사 제다법을 이은 김동곤 명인을 원류로 성장해온 차tea 브랜드다.
김동곤 명인의 정통 우전차와 함께 다양한 대용차와 블렌딩차들을 제안해오고 있었다.
대기업의 tea브랜드인 오설록과 여러 백화점에서 공간을 나란히하며 실질적 경쟁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 작은 브랜드를 백화점까지 이끌어 온 힘은 고객에 있다.
40여년 전 우리 차 문화를 즐기던 교수, 의사 등 소수의 밀도 높은 고객들을 중심으로 한
입소문에 힘입어 백화점의 입점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차 문화를 일상 속에 즐겨 온 깊은 취향의 오랜 고객들이 쌍계명차를 사랑한 이유는,
말과 글로만 내려오던 우전차를 현실화시킨 우전차 명인의 정통성이 건네는 뛰어난 맛과 향에 있다.
그와 더불어 보성이나 제주 처럼 사람이 조정한 녹차밭이 아닌,
신라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야생차 숲의 힘이 희소성으로 작용했으리라.
쌍계명차는 차맛 제대로 아는 분들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하동 땅에서 서울로 초대된 브랜드였다.
브랜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자 위엄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너의 고민 [ 보이는 나무기둥 ]
먼 남쪽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된 작은 브랜드,
그러나 40년이 넘는 생명력을 유지한 브랜드.
멋진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오너에게는 고민거리였다.
40은 브랜드의 생애주기에서도 중년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일찌감치 회사의 마켓 현장을 두루 관리해 온 젊은 오너는
꾸준히 새로운 제품 라인을 제안하고 감각적인 패키지 디자인으로 새로움을 선보여왔지만,
그 반짝임들 만으로는 새로운 세대로 비즈니스의 힘을 확장하기에 역부족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대표의 선택은, 기업 브랜드의 현재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탄탄한 토양 위에 새로운 미래를 펼쳐갈 하위 브랜드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킥오프 자리에서 요청된 새로운 하위 브랜드는 젊은 층에 고정관념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40년의 쌍계명차가 연상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성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그래서 브랜드 네임은 모기업과의 연관성을 최소화하고 오히려 생소하고 낯선,
그러려면 아무래도 영어 명명이 좋겠다는 김대표의 뜻을 비쳤다.
문제의 실체 [ 보이지 않는 나무뿌리 ]
새로운 브랜드의 남다른 방향성도 결국은, 본질을 딛고 차오르는 디딤발의 힘이 필요한 법.
차근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모기업의 내재된 가치를 이해하고 재정의 했다.
쌍계명차의 힘은 단연 ‘지리산’과 ‘김동곤 명인’에 있었다.
그 둘은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단단히 엮여,
흉내낼 수 없는 차별적 아우라를 생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강력한 구심력과도 같아, 브랜드의 모든 요소들을 일관성 있게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 동시에,
거리를 두고 달아나려 할 수록 끌려오게 되는 중력이 되었다.
마치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 멀어지려 해도, 파도에 떠밀려 다시 해변으로 밀쳐지듯.
쌍계명차 ‘답지않은’ 새로운 하위 브랜드를 고민하고 전개하는 시간들이 계속 그랬다.
몇 차례의 네이밍 리포팅을 통해 후보안은 점차 좁혀 들고,
이제 최종안을 선택할 막바지 단계를 앞두고 있었지만,
이 강력한 밀물의 힘은 여전히 머리 속에 파도쳐 댔다.
마치, 잘 짜여진 소설이나 시나리오 속 캐릭터들의 관계가
작가의 입맛대로 붙이고 떨어지지 않는 것 처럼.
누가 돌아봐주든 말든, 쌍계명차는 40년 간 이미 자신 만의 생명력을 내재하게 된 것이다.
결국, 기존의 네이밍 맥락으로 정리한 최종 후보안과 별개로
전혀 다른 관점의 후보안을 준비했다.
배를 띄워 쌍계명차라는 대륙에서 멀리 달아나는 방향이 아닌,
오히려 중심축을 꿰뚫고 솟아나는 새 순 같은 날카로운 방향성.
쌍계명차의 새로운 활력은 단순히 쌍계명차 답지앟은, 전통과 오래됨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쌍계명차를 새롭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창이 필요한 것이다.
솔루션 [ 존재하는 것을 캐내고 연결하여 재정의 ]
먼저 네임은 기업명인 ‘쌍계명차’에서 자화자찬의 격을 부여하는 ‘명차’를 떼어낸,
‘쌍계’로 하였다.
쌍계명차에서 달아나는 것이 아닌, 본질을 이어가되,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전환하는 네임.
대신, 로고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표현하도록 했다.
기업명인 ‘쌍계명차’의 로고 디자인이 신영복선생의 붓글씨로 쓰여져 히스토릭한 이미지와 대비되도록,
새로운 브랜드는 간결한 선 만으로 기호적으로 표현했다.
간결한 한글 기호만으로도 지리산의 산세와 다완을 담백하게 연상할 수 있는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차라는 제품이 가지는 오감의 태생적 특성을 살려,
시각적 경험과 매장 경험을 통해 새로운 고객 확장의 기회를 가져갈 것을 제안했다.
‘지리산의 생기, 차의 온기로 담다’는 브랜드 매니페스토를 먼저 세웠다.
그리고 복잡다단해서 선택이 어려운 제품 라인들을 쉽게 정리할 방안을 고민했다.
지리산의 녹음, 섬진강의 안개, 야생차의 햇잎 등 지리산의 자연에서 컬러들을 선별하고,
차의 6가지 카테고리에 적용해서 규격화된 단상자 박스들에 적용했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의 지인들을 묶어 여러 차례의 티타임을 통해
‘왜 차를 마시지 않는지’ 파악해 냈다.
커피는 쉽게 마시지만 차는 선뜻 마시지 못하는 이유는,
‘모르는 맛’이기 때문이라는 인사이트를 발견했다.
그럼 차를 ‘아는 맛’으로 제안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은, 백화점 매장에서 그저 우려낸 주전자의 차를 종이컵에 담아 건네는 시음대신에,
나 만의 차를 만나게 해주는 온전한 한잔의 차를 권하자는 것.
그렇게 ‘티 플레이’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타로카드 하듯, 내가 좋아하는 맛과 향(플레이버)와 내가 요즘 고민하는 몸과 마음의 고민(효능)의
총 두 번의 카드 고르기 만으로 금세 나를 위한 차를 찾을 수 있다.
그 다음은 나에게 맞는 차 두어개를 시향하고 한잔의 차를 대접받으면 끝.
이렇게 간단한 카드 게임을 거치면, 어느새 이 한잔의 차는 ‘모르는 맛‘에서 ‘아는 맛‘으로 변신한다.
이렇게 쌍계명차의 대표 브랜드 ‘쌍계‘가 탄생되었다.
이후 10년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브랜드 고민들을 함께 푸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왔다.
애정이 깊어지면 더 궁금해지고, 그 궁금증은 깊이를 더 들여다 보게 한다.
결국 ‘워터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티인스트럭터’ 과정을 수료하는 등,
개인적 변화는 즐거운 덤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로 쌍계명차는 50살이 되었다.
이제 쌍계명차는 여느 다른 브랜드들 처럼,
급변하는 사회 속에 또다른 변화와 도전의 파도들을 만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쌍계명차는 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치며
'K-Tea'로서 다당히 세계 시장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쌍계명차의 커다란 돛을 부풀리는 기분좋은 바람은
김동곤 명인께서 덖는 햇우전차의 향기처럼 맑고 달콤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