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인문학적 영감의 발견, 브랜드 일상다반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의 인기가 이미 글로벌 사회 전반에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제치고 넷플릭스 역대 최다 누적 시청수를 기록한 이 애니메이션을 두고,
BBC는 오스카, 아카데미상을 휩쓸지에 공공연히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자체의 강력한 신드롬과 함께,
OST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과 앨범차트 빌보드200을 동시에 석권했다.
애니 속 아이돌 그룹들은 대기업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 중이며,
깨알 같은 캐릭터 호랑이와 까치는 문화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다.
F&B와 컬처,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 불문 ‘케데헌’과 콜라보는 호불호 없는 인기가 보장된다.
중요한 건,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문화현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압도하는 이 ‘케데헌 현상’은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건 선배 격인 ‘오징어게임’이나 ‘겨울왕국‘ 쪽이 아니다.
'BTS'의 에너지로 전세계가 두근대던 즈음의 감각과 유사하다는 거다.
BTS와 케데헌의 공동점1 " 네임은 거들 뿐 "
'BTS'의 풀네임은 ‘방탄소년단‘으로 데뷔 초 국내에서도 세련되지 못한 팀명의 대표였으며,
그 어휘 특성 상, 아무리 배려해줘도 중국과 일본을 넘어선 활동하기에 한계있어 보였다.
그러나 BTS 노래를 통해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게 된 글로벌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이란 이 불편한 이름도 기꺼이 연호한다.
‘케데헌‘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또한 어떤 기교없이, 애니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나열해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장르를 ‘케이팝’으로 한정하여 관람 타겟을 좁혀 특정하고 있다.
이토록 어디 내놔도 1등할 듯, 멋없고 한계 많은 네임을 가진 둘은
전세계를 반하게 만들고 말았다.
브랜드 네임의 선택을 고민하는 클라이어트께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다.
네임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모든 걸 담고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네임은 죄가 없다.
단지 집의 문고리와 같은 것이 브랜드의 네임이다.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끌 힘을, 네임이 처음부터 지닐 수는 없다.
역으로로 꾸준히 동일한 태도로 브랜드 활동을 쌓아가다 보면, 네임에 그 힘이 입혀지게 된다.
BTS와 케데헌의 공통점2 " 캐릭터 성장스토리의 공감 "
작은 소속사의 BTS는 체계적 투자 기반의 관리를 사실상 받기 어려웠다.
대신 일곱명의 소년들이 했던 것은, 부지런히 자신들의 생활형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하는 거였다.
해외 투어 중에도 무대를 마치고 들어 온 밤, 호텔방에 모여 카메라를 켤 정도였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아티스트들이 라이브 콘텐츠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일이 흔하고,
소속사 주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들이 성장해갈 그 당시에는 아니었다.
그들조차 그 일들이 앞으로 큰 자산이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까' 의 심산이었을 거다.
그 꾸준한 콘텐츠들이, 어떤 것은 지뢰처럼 묻히고, 어떤 것은 산처럼 쌓여,
입덕 만 하면 연쇄적으로 터져올라 어쩔 수 없이 중독되고 말게 한다.
이렇게 봐도봐도 정주행 할 콘텐츠가 무궁무진한 그룹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는지 관심을 가지지만,
사실 가장 집중하는 것은, 한 명 한 명의 모두 다른 작은 소년들이 어떤 노력을 해 왔는 지다.
너무도 다른 성격과 재능을 가진 일곱명이 그 자리에 함께 서기까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이미 수많은 콘텐츠로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케데헌‘은 ‘루미’ 내면의 상처와 갈등과 좌절을 보여주며
사람들 속에서 치유받고 다시 날아오르기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그 순간 느끼는 전율은, 월드투어 무대에서 몸이 부서져라 공연을 펼치고는
매번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마는 일곱명의 월드스타들의 내면을 공감하는 감정과 같다.
BTS와 케데헌의 공통점3 "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살아있는 콘텐츠 "
‘BTS’의 생활형 콘텐츠는 경기도 양평의 작은 뮤지엄을 핫스팟으로 올려놓기도 하고
어느 라면의 용량을 1.5배로 키워 놓기도 하며
광고도 하지 않는 작은 Tea 기업의 매출을 500% 올려놓기도 했다.
이런 생활형 콘텐츠는 ‘케데헌’ 속에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세 소녀는 공연 전 컵라면에 김밥을 씩씩하게 먹고
지칠 때면 목욕탕에 함께 몸을 담근다.
이미 많은 K-콘테츠로 한국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세계의 팬들은
‘케데헌‘ 속의 작고도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
여기까지 오면, ‘ ‘케데헌‘이 진정 K-콘텐츠인가’, ‘일본의 크리에이터팀이 미국의 자본으로
한국 문화를 소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 높은 쟁점은 흐릿해 지고 만다.
이제 K-컬처와 K-콘텐츠는 굳이 made by의 스탬프가 중요하지 않은
깊이와 너비를 지니게 된 것이다.
어느 땅, 어느 국적의 크리에이터가 생성하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라도 즐겁게 누릴 수 있으면 K-컬처다.
누가 만들었고 어느 나라 소유인지에서 자유로와 져서,
그것을 나의 생활형 콘텐츠로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지가 더 큰 가치이다.
"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넘어, BTS의 거울 같은 케데헌 "
‘케데헌’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같은 하이브의 ‘BTS’ 동생그룹 보다 더 영민하게
‘BTS’의 Good point 들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케데헌’은 ‘겨울왕국’이나 ‘오징어게임‘ 같은 미디어 콘텐츠의 Newness로서가 아닌,
‘BTS’ 같은 “사람 브랜드”를 가상 세계에 올려놓는 활동으로 보인다.
‘케데헌’의 속편이 나올지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이것이다.
단지, K-팝과 K-컬처를 얼마나 더 재미있게 풀어갈 이야기가 나올 지가 아닌,
이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현실을 딛고 선 우리를 얼마나 더 살아있다 느끼게 해 줄 것인가다.
헌트릭스의 ‘혼문’은 이미 우리 현실 세계를 향해 열렸나 보다.
" 이제 상징이 아닌 경험으로의 이동 "
이제 브랜드 마케팅의 영역은 위험해 보인다.
한 때, 사회 모든 것은 브랜드로 설명될 수 있고,
비즈니스를 제대로 해보려면 브랜드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누구나 얘기할 만큼,
브랜드 대중화 시대가 있었다.
대중화란 가치성의 확장과 하락이라는 양면을 품고 있다.
결국 브랜드는 응당 존재하는 것이 되었고
그 존재 과정 마저 AI를 통하면, 네임이건 디자인이건 콘텐츠건 쉽게 얻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거대하고 새로운 기술의 밀물과 함께 휩쓸려버린 과정의 시간으로 생각된다.
적용과 확인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결국 다시 사람의 창의력과 융합의 힘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단지 과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브랜드는 죽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브랜드라고 할 때 ,
네임과 디자인 등의 ‘브랜드 상징‘ 중심에서
스토리와 공감 등의 ‘브랜드 경험’ 중심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멋진 이름을 소유하고 얼마나 개성적인 디자인을 보여줄 지가 아닌,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이야기로 공감될지, 어떤 경험으로 재탄생 될 수 있을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