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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07.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6

“그러니까 캐나다로 가야 한다는 얘기구나..” 


소영이의 말 때문에 잠시 멈칫 거리며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이번에도 많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참 동안 우리는 침묵 속에 있었다. 난 그저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어? 소영아.” 

”나 화장실 좀.” 


내 손을 뿌리치고 소영이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말을 최대한 늦게 할걸.’ 

’아니야. 이런 일을 숨기는 건 더 좋지 않아.’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초라하고 한심했다. 만약 한국에 남는다면 과연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알바라도 하면서 학비 충당이 가능할까? 렌트비는? 데이트는? 아무리 아껴가며 쓴다 해도 펼쳐질 암울한 미래가 무겁게 다가올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방법 외엔 답이 없었다.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 소영이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다시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표정에서부터 서운함이 묻어 나오는데 섣불리 말을 건네기가 힘들다. 


”김경남.” 

”어?” 

”넌 왜 이렇게 평범하지 못한 거야? 그냥 데이트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도 우리한텐 쉬운 일이 아닌가 봐.”

”미안해.”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아니지. 휴. 근데 미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럴 거면 한국에 오지말지. 아니지. 내가 왜 이러지.” 

”미안해. 나도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밤새도록 고민을 해봤는데 어떻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그게 더 나쁜 일이 될 거라 생각했어.” 


갑자기 그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얼굴을 어루만진다. 눈에는 눈물이 다시 글썽이기 시작한다. 


”언제 가야 해? 다시 올 수는 있는 거지?” 


나도 그런 그녀가 안 돼 보여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손을 잡았다. 


”엄마하고 통화 나누면 돌아갈 날짜가 정해질 거 같아. 난 꼭 한국에서 생활할 거라 돌아올 거야. 다만 시기가 언제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거 같아.” 

”넌 정말 바보야. 그래도 숨기지 않고 얘기해 줘서 고마워. 근데 나 어떡하지? 너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벌써 떨어져 지낼 거 생각하니까 계속 슬퍼져. 큰일이다. 벌써 보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소영이를 꽉 껴안았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참을 서로 안은채 서로를 느끼며 아무 말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감정이 다시 추슬러졌다.  


”경남아. 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말해. 뭐든지.” 

”우리 놀이동산 놀러 가자.” 

”놀이동산? 왜 뭐 타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냥 남자친구 생기면 같이 가서 걸어 다니면서 얘기도 나누고 음식도 사 먹고 놀이기구도 타고 그래보고 싶었거든. 해줄 거지?” 

”어렵지 않지. 이번주 주말에 갈까?” 

”좋아. 아침 일찍 가자 그러면. 내가 그날 도시락도 싸 올게.” 

”아냐. 힘들게 도시락은 무슨. 사 먹자.” 

”그냥 잠자코 해주는 대로 있어.” 

”네.” 


소영이와 놀이동산 놀러 가기로 약속을 잡고 우리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많이 피곤하다면서 그녀는 먼저 갔다.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말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소영이가 같이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문득 결혼한 사람들이 부러워 보였다. 더 이상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될 테니. 여력만 된다면 그녀와 결혼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다시 현실의 벽이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도 다 알지 못할뿐더러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며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마치 누가 발을 땅으로 잡아끄는 듯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침대 위에 누워있었으면 좋겠다. 


’캐나다로 가면 난 언제 또 한국을 올 수 있을까? 정말 올 수는 있을까?’ 


소영이한테는 한국으로 꼭 돌아오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음속에서는 분명 못 돌아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계속될수록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걸어가는 길에 분식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프구나. 나도 참..’ 


터덜터덜 분식집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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