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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08.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7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까 힘 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소영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 내일 통화하자. 나 졸려서 먼저 잘게.] 

[알겠어. 잘 자.] 


뭔가 좀 더 다정한 느낌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리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했을까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나 보다. 전화기 진동 소리에 눈을 떴다. 휴대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였다. 


’누구야. 이 시간에. 아. 설마 엄만가?’ 


받으려던 차에 전화가 끊어졌다. 알아보기 힘든 형태의 긴 전화번호였다. 국제전화가 맞는 듯하다. 잠시 확인 중이었는데 다시 전화가 울린다. 다른 번호긴 한데 여전히 긴 자릿수의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엄마야 경남아. 새벽인데 전화해서 미안해 아들.”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전화를 걸 정도로 급한 일이 있겠구나 싶어 긴장이 된다. 


”미안한데. 한 달 뒤에 돌아와야겠어. 일이 그렇게 돼버렸네.” 

”한 달.. 이요. 네에.” 

”괜찮겠어?”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말을 하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질 거 같았다. 


’엄마 탓이 아니잖아!’ 


겨우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심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근데 사람일이라는 게 어디 계획한 대로만 되겠니. 학교도 잘 정리하고 월세비용은 엄마가 알아서 결제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밥 거르지 말고 알았지?” 

”네 걱정 마세요. 저 너무 졸려서 이제 좀 잘게요.” 

”그래. 다른 날 다시 대화 나누자. 잘 자.”  


전화를 끊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띵동” 현관 벨소리가 계속 울린다.  


”누구지..”  


눈을 비비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부터 찾았다. 아침 10시. 오늘은 아무 약속이 없는 날인데 아침부터 누구지. 띵동 소리가 계속 울려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앞으로 걸어간다. 


”누구세요?” 

”나야!” 

”어? 소영아. 잠깐만 기다려줄래.” 

”알겠어.” 


황급히 화장실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눈곱을 뗀다. 혹시 몰라 콧속도 물로 깨끗이 닦아본다. 거울에 비친 머리는 부스스하다. 


’하아. 이건 어쩔 수 없지.’ 


후다닥 뛰어가 현관문을 연다. 아침부터 꽃단장을 한 소영이가 서 있었다. 


”엇..” 

”안녕.” 

”아니 아침부터 연락도 안 하고. 헐.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이쁘게 입었어?” 

”일부러 연락 안 하고 놀래켜 주려고 왔어. 근데 나 이뻐?” 

”어. 너무 사랑스러워. 맨날 이렇게 입고 나오지.” 

”으휴. 너 여자가 꾸미는 데 시간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르지? 맨날은 힘들어! 너 세수도 안 했구나?”

”당연하지. 이제 일어났는 걸.” 

”그럼 빨리 씻어. 오늘 바빠?” 

”아니 뭐. 그런 건 없고.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했어.” 

”아.. 그렇구나. 그럼 학교 같이 갔다가 놀러 가자.” 


이상할 정도로 소영이가 들떠 있다. 애써서 일부러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알았어. 빨리 씻을게. 그리고 학교는 내일 얘기해도 될 거 같아.” 

”그래? 좋아.”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빠르게 씻고 갈아입었다. 머리는 신경 쓸 시간이 안 돼서 모자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괜찮네. 오늘 많이 걸을 거니까 운동화 신어. 알았지?” 

”응. 근데 어디 가려고 계획한 거야?” 

”그냥 이곳저곳? 같이 걸어본지가 오래된 거 같아서. 맨날 실내에만 있었으니까.” 

”그래. 근데 미안한데 나 배가 너무 고픈데.” 

”그럴 줄 알고 도시락도 싸왔는데. 원래는 밖에서 먹을까 했는데. 배고프다고 하니까 여기서 먹고 갈까?”

”도시락을 싸왔다고?” 

”김밥 좀 말아봤어. 내가 남자 때문에 김밥까지 만들게 될 줄이야. 너 고마워해야 한다?” 


’아무래도 어제 나한테 쌀쌀맞게 대한 게 미안해서였을까?’ 


”자 어서 먹어.” 

”고마워.” 


소영이가 준비해 온 2단 도시락을 쇼핑백에서 꺼낸다. 위에는 적당한 크기에 깻잎이 들어간 참치김밥이 있었다. 밑에 단에는 유부초밥과 반을 갈라 과일이 들어 있다. 


”와. 아침부터 이걸 다 준비한 거야?” 

”응. 너 먹이려고. 맛있는 거 내 손으로 만들어서 해주고 싶었거든.” 

”고마워.” 


소영이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에 약간의 감동을 받았다. 괜히 찡해지며 눈물이 날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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