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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11.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8

그날 준비해 온 도시락은 그 뒤로도 가끔씩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만들어 준 도시락이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오랫동안 기억에 자리 잡은 순간이다. 


”우리 너 가기 전까지 정말 재밌게 데이트하자. 서로 하고 싶은 거, 해보고 싶었던 거 미루지 말고 다하기다! 알았지? 난 지금 너랑 사귀는 거 후회하지 않아. 그래도 지금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싶어.” 


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지만 조금만 있다가 얘기하기로 한다. 


”그러자. 나도 지금이 너무 좋아.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꿔왔었는데. 흐지부지 보낼 수는 없지. 근데 도시락 너무 맛있어. 혹시 돈 주고 산 건 아니지?” 

”아니거든! 맛있다니 다행이네. 담에 또 해줄게.”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에게 집중하며 데이트를 즐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약속했던 놀이동산도 놀러 가고 맛집도 많이 찾아다녔다. 때로는 밤 시간에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눴고 그녀를 집 앞에 데려다 주기 아쉬워 한참 동안 놀이터에서 안고 있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데이트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캐나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기분이 안 좋아질 걸 서로 알고 있어서였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캐나다로 돌아갈 날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집에서 데이트하던 어느 날 그녀에게 계속 숨길수도 없는 상황이라 결국 돌아갈 날을 얘기하게 되었고 그날 잠시동안 우리는 서로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소영이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너 정말 밉다.” 

”미안해. 나도 가고 싶지 않아.” 

”안 돌아갈 방법은 없겠지? 너 따라가고 싶다.”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는 거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있는 동안 옆에 있어주는 일 밖엔. 한참을 울다가 그치고 나서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손을 뻗어 내 머리 뒤쪽을 살며시 밀어 본인의 입술 가까이로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따라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댄다. 그렇게 한참 동안 키스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떠 서로를 바라봤다. 그렇게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한 침대로 이동했고 서로를 안았다. 


지금의 결정이 좋다 나쁘다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지금이 너무 좋은 만큼 아팠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그녀도 날 꽉 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고 싶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 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소영이에게 말을 건넸다. 


”고마워 소영아. 내가 많이 밉겠지.” 

”안 미워.”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말하지 마. 이미 헤어진 거 같잖아.” 

”난 많이 불안해. 지금도 너랑 있으면 이렇게 행복한데. 시간만 흘러가고. 결국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야! 그만해. 나도 불안한데 참는 거란 말이야. 솔직히 네가 돌아가고 나서도 우리가 계속 사귀는 사이로 남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억지로 널 밀어내고 싶진 않아.” 

”나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올 거야.” 

”그래. 꼭 돌아와. 대신 늦지 않게.” 

”노력할게. 무조건 날 기다려달라고 하진 못하겠어. 그래도 난 너 만나러 다시 올 거야. 그건 약속할게.”

”정말이야?” 


소영이가 옆으로 돌아 내 몸에 좀 더 밀착한다. 


”나 잊지 마. 사랑해.” 

”나도 많이 사랑해.” 


다시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짐은 다 부쳤고. 더 체크할 게 뭐 있으려나.” 

”야.. 아쉽다. 넌 어째 맨날 떠난다?” 

”미안하다. 나중에 또 한국 올게.” 

”내가 캐나다로 놀러 가는 게 더 빠른 건 아니겠지?” 


공항까지 마중 가주기로 한 정수는 내심 아쉬워했다. 


”소영이는 어떡할 거야?” 

”나도 모르겠어.” 

”헤어진 거야?” 

”그건 아닌데. 복잡해.” 

”이 새끼. 너 잘 생각해라. 소영이 생각도 좀 하고.” 

”아! 알아서 할게. 나도 많이 미안하단 말이야.” 

”휴.. 그래. 너희들이 뭐 알아서 잘 얘기 나눴겠지. 소영이는 오늘 와?” 

”못 올 수도 있다고 하긴 했는데. 모르겠네.” 

”전화라도 해봐.”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보다 가야지. 괜히 마음만 뒤숭숭해질 거 같아.” 

”난 모르겠다.” 


30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소영이는 결국 오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올까 싶어 조바심이 생겼지만 비행기 예약 시간 때문에 갈 수밖에 없다. 


’안 올 셈이야? 정말?’ 


이해가 가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의구심이 생겨났다. 전화를 걸어 당장 와달라고 보고 싶다고 얘기하고도 싶었지만 마음속으로 꾹 참았다. 


”가자 정수야. 소영이 바쁜가 봐.” 

”그래.” 


정수도 더 이상 소영이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한국에 왔을 때처럼 캐나다로 돌아갈 때도 옆에는 정수가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새삼 정수가 고마웠다. 있는 동안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역시 모든 일은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거 같다. 캐리어를 부치고 탑승구로 들어가기 전 정수와 인사를 나눴다. 


”고마웠다.” 

”나도 안다 인마. 혹시 나 캐나다 놀러 가면 모른 체하기 없기다.” 

”당연하지! 몸만 와라.” 

”말은 아주. 건강하고. 아씨 맨날 떠나기만 하냐 넌. 아 나 갈래. 간다.” 


정수의 목소리에 약간의 울먹임이 느껴졌다. 


”가서 연락할게. 고마워.” 


정수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잘 가라는 표시를 하고 그대로 걸어갔다. 그런 정수를 쳐다보다 탑승구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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