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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an 12. 2024

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19

비행기에 탑승 후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소영이 생각이 났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오늘은 나와줄 수 있는 거 아니었나?’ 


그녀의 마음속을 알 길은 없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렇게 난 다시 한국에서 캐나다로 왔다.  




장시간 비행을 끝내고 도착한 캐나다 공항에는 가족이 나와 있었다. 


”고생 많았다.” 

”형. 어서 와.” 


그리고 아버지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고 계셨다. 아무래도 내게 말을 꺼내기가 좀 그러셨던 거 같다. 그래도 다시 가족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고 벌써부터 소영이도 멀어진 느낌이다. 


’아냐! 연락을 해보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올라가 메일을 보냈다. 한국과 시차가 있어 전화는 다음날 소영이 시간에 맞춰서 해봐야겠다. 하루아침에 다시 다른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분명 어제만 해도 소영이랑 함께였는데. 벌써 보고 싶다. 비행시간 동안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도 다시 피곤함이 몰려온다. 


”경남아. 뭐 좀 먹을래?” 

”아니요. 저 피곤해서 조금만 잘게요.” 


그대로 잠에 빠져든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소영이는 단 한 번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조금만 참아보자 하던 게 며칠이 지나기 시작하자 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날 벌써 잊은 거야?’ 


그러기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 어떤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없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이별에 대한 내용을 이미 말한 거였을까?’ 


후회와 자책 그리고 분노가 번갈아 생겼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며 시간이 흘러간다. 이제는 더 이상 연락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차라리 헤어지는 이유라도 속 시원히 알고 싶은데. 너무 갑갑한 마음에 정수를 통해 알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날 무시한다면 나도 똑같이 하겠어.’ 




[10년 후] 


”잘 지내세요.” 

”그래. 나중에 한국에 한 번 놀러 갈게. 건강 잘 챙기고.” 

”도착하면 전화해라.” 

”네. 어서 들어가세요.” 


’다시 또 한국으로 간다.’ 


한국으로 가겠다던 내 꿈은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나도 30이 되었다. 그동안 학교도 졸업하고 취업했던 현지 회사에서도 나름 성과를 내며 승진을 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공고를 보게 되었다. 커져가는 아시아 시장 그중에서도 한국 지사로 발령 갈 사람을 찾는 내용이었다. 


’지원해 보자.’ 


사실 한국으로 가서 지내는 건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이제는 캐나다에서 뿌리내리고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는데 막상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돌아와 다시 한번 공고의 내용을 상세히 읽어보고 그날 밤 지원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냈다. 몇 번의 심층 인터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결국 꿈에 그리던 한국행 비행기에 타게 되었다. 


’한국은 많이 변해있을까? 하긴 벌써 10년이나 지났으니.’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애써 잊고 지냈던 소영이도 생각났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사실 그 뒤로도 몇 번의 연락을 더 했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반은 울다시피 메시지를 남겨 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분노를 담아 장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답도 받을 수 없었다. 


’나쁜 년.’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소영이에겐 더 편한 이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갑갑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뭐. 다시 만나보기라도 하려고? 됐어. 다 지난 일이잖아.’ 


쓴웃음을 지으며 애써 소영이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 본다. 한국으로 가도 이제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지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엔 혼자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야 했었는데 지금은 당당히 내 의지대로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문득 흘러간 10년의 세월이 무의미하지 만은 않았구나 싶었고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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