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동 아이들 8

정호네

by 고성프리맨

정호 어머니는 진정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가 갑작스레 눈이 뜨였다. 기분 나쁜 꿈을 꾼 것처럼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문득 정호가 다치고 본인이 죽을 뻔했던 아까의 상황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어 목을 만져본다. 움푹 파인듯한 자국이 살짝 느껴지고 만진 곳이 따끔거리면서 아파온다.


’꿈이 아니었구나.’


정호는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내 아들 정호를 이용하다니.. 징글맞은 노인네 같으니. 어떻게든 내 아들은 지켜내겠어.’


아침이 밝은 대로 퇴원해서 아롱이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어? 여보! 괜찮아?”


옆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깬 남편이 눈을 비비며 말을 건다.


”어.. 어.”


말을 하려는데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는다.


”무리하지 마. 좀 쉬어야 한댔어. 그리고 정호는 머리가 좀 찢어져서 꿰맸는데. 찢어진 거 외엔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하네.”

”찌.. 찢어진 상처는 어.. 태.. 요?”

”어떠냐고? 좀 길긴 해. 흉터가 지긴 하겠지. 일단 좀 쉬어. 큰일 안 난 게 다행이지.”




병원에서는 퇴원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다. 마음이 급했지만 일단 다친 정호를 좀 살펴보러 갔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아놔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에게 다가가 볼을 한번 쓰다듬는다.


”여보. 난 좀 먼저 가볼 테니 정호 좀 집까지 잘 부탁해요.”

”몸도 성치 않은데 어딜 가려고. 같이 가.”

”빨리 가야 해요. 마음이 급해서 안 되겠어요.”

”에휴. 일 있으면 전화하고.”


병원 정문으로 나가 줄 서 있는 택시를 잡아 탔다.


”수와동 주민센터 앞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택시 기사는 한번 힐끗 쳐다보고 미터기를 누르며 출발한다.




”아롱 엄마! 아롱 엄마!”

”네 나가요.”


급한 마음에 초인종 대신 문을 두드렸다. 급하게 뛰어나온 아롱 엄마가 문을 열자 미안함이 살짝 생겼다.


”정호 어머니! 목이 왜 그래요?”

”하아.. 안에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어서 들어오세요.”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자 아롱 어머니의 미간도 찌푸려진다.


”그래서 말인데.. 해원굿을 최대한 빨리 하고 싶어요. 괜찮겠어요?”

”휴.. 그러시군요. 그때 날짜를 뽑아 놓긴 했었는데. 잠시만요.”


어느 때보다 긴장된 마음으로 아롱 엄마를 쳐다봤다.


”제가 준비가 좀 안되긴 했는데 오늘도 날이 나쁘진 않아 보이네요. 오늘 괜찮으세요? 몸도 안 좋으실 텐데..”

”전 괜찮아요. 빨리해 주신다면 지금 가릴 처지가 아니에요. 고마워요. 고마워.”


아롱 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그분이 대체 왜 원한을 가지게 되신 건지. 그럴 분이 아니실 거 같아 이상하긴 합니다.”

”아니에요. 그건 아롱 엄마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난 알아요. 죽은 마당에도 어떻게든 날 괴롭히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

”정호 어머니.. 그런 말이 아니라. 조금 진정하세요.”


한참 동안 억울한 본인의 마음을 얘기하던 정호 어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요. 하아. 이런 일을 갑자기 겪고 나니 정신이 없네요.”

”그럼 준비를 좀 해야 하니 3시간 뒤에 굿을 하러 가겠습니다.”

”부탁할게요. 복비 걱정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복비는 나중에 굿이 잘되고 나면 얘기 나눠요. 그리고 저도 어머님과의 연이 있던 사람이라 돈을 떠나 원한을 달래 드리고 싶어요.”




”뭐? 오늘 굿이라고? 이 여편네가 진짜.”


더 몰아붙이려던 정호 아버지는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깨닫고 말을 삼킨다.


”으휴 알았다 알았어. 맘대로 해.”

”오늘 어디 가지 말고 같이 있어요. 정호도 봐줘야 하고 하니.”

”알겠어. 나갈 생각도 없었어. 귀 아프겠네 짜증 나게.”


아롱 어머니는 갖은 도구를 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따로 도울 사람이 없어서인가 혼자 상차림부터 모든 걸 혼자 하고 있다. 정호 어머니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도우려고 다가가 이것저것 물건을 만져본다.


”정호 어머니! 만지면 안 돼요. 부정 타면 안 돼요!”

”아? 미안.. 미안해요. 힘들까 봐.”

”괜찮아요. 이건 제 일이에요. 신기는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그날그날 정성을 다 쏟아내야 하는데 부정의 기운이 들어와 일을 그르칠 수 있어서..”

”필요한 거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요.”


여자 혼자 저렇게 일하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방울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지는 가 싶더니 승무복을 입은 아롱 어머니가 굿을 진행한다.


”훠어이. 억울한 게 있다면 나타나 보시오. 살아생전 김정문의 어머니였고 박옥란의 시어머니였던 박당계. 그대의 노여움을 알고 있다 훠어이. 오늘 이곳에 나타나 가졌던 원한을 다 씻겨 내고 있어야 할 자리로 갈 지어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지금 이 자리로 원혼을 불러내주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아롱 어머니의 발놀림이 바빠진다. 춤은 점점 격해지며 방울 소리가 커진다.


”커헉!”


춤을 추던 아롱 어머니가 방울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그대로 쓰러진다. 그 모습을 긴장된 모습으로 살펴보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아롱 어머니의 움직임이 없다. 점점 불안감이 커져가던 그때 아롱 어머니가 입에 칼을 물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칼을 문 입 주변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고 눈에는 초점이 없고 흰자위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