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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Feb 17. 2024

40대, 재능은 지켜나가는 것

열여덟 걸음

초등학교 시절 어느 때던가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까지 부모님과 할머니 댁으로 이동하던 어느 날. 자주는 아니지만 비정기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들아.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줄게."


갑작스럽게 아빠는 말 한마디를 하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 중앙으로 이동하더니 설교를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왜 그래요?"

"응. 그냥 있어 봐 봐."


노량진까지 가는 동안 20분이 넘도록 아빠는 땀을 비 오듯 흘려가며 무언가를 엄청 핏대 높여 떠들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하철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한 마디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지하철과 아빠가 일어서서 얘기하던 모습만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을 따름.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게 이유 없이 싫었던 거 같다. 빨리 설교를 끝마치고 무사히 자리로 돌아오시기만 바랐던 기억. 그리고 부끄러움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내 얼굴이 떠오른다.


한참 뒤에야 노량진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아빠는 우리한테 돌아왔다.


"봤어? 설교는 이렇게 하는 거야."


아빠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만족한다는 듯한 미소. 내게 어떤 것을 전하고 싶으셨던 걸까? 궁금함이 남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결국 시간이 흘러갔고 지금은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문득 며칠 전에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잊었다 싶었다가도 간혹 생각이 나는 모습이다. 생각해 보면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보다도 한참 어렸었다. 아마도 30대 중반 정도 밖에는 안되었던 시절인 거 같은데.


'무엇을 얻고 싶어 그렇게 설교를 하셨을까? 그리고 아들인 내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던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간간히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 보면 분명 무언가 내 안에 강하게 남긴 했었던 거 같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열정? 정열? 확신? 신앙심?] 하나를 콕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복합적으로 조금씩 보여주고 싶어 하셨던 건 아닐까?


목사로 오랫동안 살아온 세월. 하지만 결국 메인스트림으로 합류하진 못한 삶. 어찌 보면 아빠는 실패한 가난한 목회자였던 거 같다. 틀린 말은 아닌 게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돈을 벌지 못한 세월이 더 길었으니 그렇게 보는 게 꼭 틀린 말은 아니겠지.


"목사를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보는 건 잘못된 거예요!"


신앙의 측면으로 판단하는 건 아는 게 없어서 설명을 못 하겠다. 다만 확실한 건 40대의 아버지에게 신앙은 족쇄였던 기억이 난다.


신을 믿지만 항상 버겁고 혼란스러워하셨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그리고 기도가 경제적인 안락함을 가져다 주진 못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불화가 생길 때도 많았다.


30대와 40대의 아버지 모습은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넘치던 열정의 30대가 지나고 40대에 맞이한 안타까운 현실은 빛나던 아버지의 열정을 거둬갔다.


'그래. 지하철에서 설교하던 모습은 아버지의 빛나던 재능의 모습이었어.'


어린 시절 부끄러워했으면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재능]이었던 거 같다. 부끄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서서 즉흥적으로 설교할 수 있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어쩌면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소음 공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40대에 풀 죽어 있던 아버지가 30대에 했던 것처럼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붙잡고 있을 만큼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고 세월 속에 재능은 빛을 잃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재능을 갈고닦지 못한 것이리라.




40대가 된 지금 문득 과거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비슷한 나이가 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일까? 아니면 꿈에 도전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한 남자가 안타까워서일까?


과거 지하철에서 설교하던 아버지가 내게 남기려던 유산은 어쩌면 빛나던 그 시절의 모습 아니었을까?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못하고를 떠나 본인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삶. 그것이 주는 성취감과 행복을 전달하고 싶어 했던 거라며 내 마음대로 정리해 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제가 하려는 걸 포기하고 살지는 않을게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인 나라도 이루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닿을 수는 없겠지만 글에 마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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