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 씨는 결혼이 왜 하고 싶으세요?”
”그냥이요. 혼자 지내는 삶은 살 만큼 살았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차라리 이혼을 하더라도 결혼을 해보고 싶어요.”
별난 사람이네. 그런데 소개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사람이 있었던가?
”재밌네요. 소개팅이라서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며 적당히 눈치 보다 끝날 줄 알았어요.”
”재밌으라고 한 얘기는 아니에요. 저 정말 진심이라서요. 경남 씨는 어떤데요?”
”전 결혼이 와닿지 않아요. 그냥 내 이야기가 아닌 거 같아서 실감도 안 나긴 하네요.”
”진지하게 생각해 봤던 적은 있고요? 아니면 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거나.”
”음.. 저도 나이가 있으니 그런 상황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오래된 일이라 그때의 감정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거짓말이다. 단 한 번도 그때를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때 그 사람과 맺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후회했다. 비겁했던 당시의 내가 떠올라서.
”슬퍼 보이시네요. 소개팅 첫날인데 너무 그렇죠?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 편히 즐겨봐요 우리.”
”네 좋아요. 커피도 다 마셨는데 장소라도 옮길까요?”
”술은 별로고 어디 갈만한 데 있을까요?”
”음..”
머릿속에 갈만한 곳을 재빠르게 떠올려본다. 술집을 빼고 나니 갈만한 곳이 많이 줄어들었다.
”영화관 어때요?”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요?”
”아니요. 그냥 대화 나눌 곳이 필요한데 술집을 빼고 나면 갈 곳이 없어 보이네요. 걷기엔 제가 신은 신발이 불편해서.”
”그래요. 가까운 영화관 한 번 찾아볼게요. 근처에 있네요. 30분 뒤에 시작하는 영화가 있긴 하네요.”
”가요.”
영화관으로 이동하면서 그녀가 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 이야기도 하고 요즘 좋아하는 음식이나 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말하는 거 참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말이 없는 것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개팅 자리인지 그냥 여자친구를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경남 씨는 생각보다 과묵하네요. 제가 말이 좀 많긴 한데. 최근 이성하고 대화를 나눈 지가 오래돼서 그런가 조금 기분이 올라갔나 봐요.”
”정희 씨가 하는 이야기가 재밌어서 듣고 있는 거예요. 저도 말하는 거 좋아하는데 지금은 정희 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을게요.”
영화관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눈 지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걸어가며 무심한 듯 툭툭 느껴지는 부딪힘도 나쁘지 않다. 나보다 그녀가 더 밝은 성격인 거 같다.
회사에선 늘 마음을 숨기고 행동해야 했는데 어느샌가 그 모습이 원래 나인 것처럼 변했음을 느낀다. 이성과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전하기 싫어 늘 조심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이 여자는 경계심이 없어 보인다.
20대의 느낌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겠지만 그때의 편한 만남을 가졌던 모습도 문득 떠올랐다.
”정희 씨 팝콘 좋아해요?”
”다이어트 하긴 해야 하는데. 휴. 오늘은 먹을래요. 아무것도 없이 말만 하기도 그렇고.”
”전 맥주도 한 잔 마실 생각인데 생각 있어요?”
”이럴 거면 술집을 갈 걸 그랬나 봐요. 근데 또 첫 만남부터 술집 가긴 싫었거든요. 그냥 맥주 한 잔 저도 마실래요. 이번엔 제가 살게요.”
”오늘 원래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었는데 그냥 살게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서요.”
”에이. 저도 마음이 편하고 싶어요. 혹시 알아요? 다음에 만날 수 있으면 그때 사시면 되죠.”
’다음?’
그래. 다음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뭐.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알겠어요. 그럼 맘 편히 고르겠습니다.”
”네. 어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