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과 맥주를 시킨 우리는 좌석에 앉았다. 영화보다는 대화에 관심이 있던 터라 맨 윗줄 왼쪽 두 좌석만 있는 곳을 예매했다.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영화관을 통으로 빌린 것 같아요.”
”대화 나누려고 영화관 와본 게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맥주 잘 마실게요.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아쉬우면 또 봐야겠네요.”
’이 여자. 연애를 많이 해본 건가?’
연애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떨림이 생긴다.
’제대로 된 데이트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럴지도 몰라.’
마음을 좀 가라앉혀 보려고 노력 중이다.
”경남 씨 짠할까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요. 제가 좀 제멋대로긴 한데 맞춰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도 즐거워요.”
영화가 시작되려는 듯 예고편이 틀어졌다. 그 사이 3 - 4명 정도가 더 들어왔다. 다들 앞 좌석에 자리 잡는다. 그러고 보니 영화 제목이 뭐더라. 그냥 시간에 맞춰 예매를 하다 보니 제목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희 씨. 오늘 보려는 영화 제목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냥 시간에 맞춰서 아무 영화나 예매했더니.”
”그게 뭐 중요한가요. 전 밝은 곳보다 살짝 어두운 곳이 심리적으로 편해져요. 아까 카페가 너무 밝더라고요. 진솔한 대화 나누기에는 오히려 지금의 어두운 이곳이 더 편하네요.”
여자와 단둘이 오랜 시간 데이트를 해 본건 정말 오랜만이다. 소개팅에서 할 수 있는 대화는 늘 제한적이었다.
틀에 박힌 질문. 서로의 상황을 떠보기 위한 눈치 싸움. 무엇보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다음 만남까진 가져보고 싶었는데. 아마 난 크게 매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경남 씨 얘기도 궁금하네요.”
”저요? 뭐 특별한 일이 잘 없긴 한데. 어떤 얘기가 궁금해요?”
”당연히 연애 이야기죠. 저 어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몸이 더워지면서 땀도 살짝 나는 거 같다.
”아니 무슨 질문이 이렇게 확 들어와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 결혼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너무 제 얘기만 해서 경남 씨 이야기가 궁금해요.”
”솔직히 마음에 없었다면 소개팅 자리를 가지지 않았겠죠.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사진 봤는데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왠지 만나면 밝으신 분일 거 같았어요.”
”다 보셨군요.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바디 프로필 사진 한 번 찍고 싶어서요. 요즘 거울 속의 내 얼굴 보다 보면 많이 늙었구나 싶어서 우울해지더라고요.”
”정희 씨는 나이 얘기 안 하면 30대 중반 정도로 보여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인 거 알지만 고마워요.”
”진짠데. 사실 전 결혼을 당장 할 수 있다는 확답을 하긴 어려워요.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결혼 이야기는 너무 부담 갖진 마세요. 제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거지 상대방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아니까요.”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하셔서요.”
”그것도 맞아요. 근데 결혼이라는 걸 당장 언제 합시다!라고 정하자는 건 아니에요. 연애의 끝이 결혼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저의 희망 사항이니까요.”
맥주를 한 잔 마셔서 그런가 정희 씨가 매력적으로 보인다. 잠시 동안이지만 우리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상상도 해봤다.
’앞서가지 말자!’
정신 차리자. 지금은 지금의 상황에 충실해야 해. 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그녀가 좋은 느낌이다.
”어깨 좀 빌려주실래요?”
”네?”
”걱정 마세요. 저 끼 부리는 거 아니에요. 아닌가 조금은 사심이 있으려나. 그냥 오랜만에 어깨에 잠깐 기대 있어 보고 싶어서요. 이런 자리가 너무 오랜만이라.”
”기대요.”
머리를 어깨에 기댄 그녀에게서 향수 냄새가 난다. 가까이서 맡는 향수 냄새 때문에 오래전 데이트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때는 당연한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특별한 상황이 되어버렸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픈 기분이 든다. 잠시 상영되는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