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망했다.’
하필이면 영화 중에 고른 게 공포물이다. 포스터만 보고 그냥 드라마 장르일 줄 알았는데 완전히 잘못 골랐다.
정희 씨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면 대화는커녕 서로 비명만 지르다 데이트를 망칠지도 모른다.
”경남 씨 이게 뭐예요? 하필 골라도 공포 영화를 고르면 어떻게 해요? 저 무서운 거 못 보는데 정말.”
”미안해요. 근데 저도 그냥 포스터만 보고 고르다 보니. 마음이 급했었어요.”
정말 소개팅 한 번 하기 너무 힘들다.
”경남 씨 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우리 나갈까요?”
”그래요. 미안해요 정희 씨.”
”저.. 제가 고개도 못 들겠거든요. 제 손 좀 잡고 나가주실래요?”
”네.. 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자. 정희 씨의 손을 잡고 어둠 속에서 출구로 걸어간다. 정말 겁에 질렸는지 손바닥이 많이 차가워져 있다. 미안함 마음이 너무 커진다.
”휴. 살 거 같다. 뭐야 경남 씨. 장르는 그래도 좀 보셨어야죠.”
”그러게요. 근데 이게 포스터 느낌으로는 전혀 공포물로 안 보였는데.”
”어디 봐봐요.”
휴대폰으로 예매한 영화 포스터를 보여준다.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렇긴 하네요. 이제 손 놓으셔도 돼요.”
”아. 저도 모르게.”
”일부러 공포물 고른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저 그렇게 계획적이지 않아요.”
”영화관에서 대화하지 말라는 뜻인가 봐요. 그래도 너무 웃겨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뜬금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긴 했다. 정희 씨와 급속도로 친해진 기분도 든다.
”영화관 데이트 망했네요. 괜찮으시면 우리 카페라도 갔다가 헤어질까요?”
”망친 건 아니에요. 그래도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혹시 배 안 고프세요?”
”뭐 살짝 출출한 정도? 배고파요?”
”음.. 늘 배는 고파요. 다이어트 중이니까. 카페 다시 가긴 좀 그렇고 길거리에서 분식 팔면 먹을까요?”
이상하게 데이트의 주도권은 정희 씨가 가져간다. 근데 기분은 좋다.
”갈까요? 아까 영화관 오는 길에 많이 있던데. 뭐 먹고 싶어요?”
”전 매운 음식은 다 잘 먹어요. 다이어트만 아니었다면 맨날 먹었을 텐데. 그래도 오늘은 떡볶이 먹을까 봐요.”
”맘껏 먹어요.”
”근데 경남 씨 얼굴에 긴장이 많이 사라졌네요? 아까는 좀 무서워 보이기도 했어요. 무슨 말을 해도 얼굴에 표정이 잘 없던데. 이제 좀 제가 편해졌나요?”
”데이트를 너무 오랜만에 하니까 생각했던 것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즐거워요.”
영화관에서 나와 첫 번째로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길거리 음식 사 먹네요. 사실 저 오늘 저녁 맛있는 게 먹고 싶긴 했어요.”
”왜요? 소개팅 준비하느라 굶은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요. 회사에서 같이 밥 같이 먹을 사람도 많이 없어서요. 그냥 밥이나 한 끼 같이 하려고 해도 제 직책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같고. 쉽지 않네요.”
”그렇죠. 전 그래서 다이어트 시작한 것도 있어요. 일부러 핑계를 좀 만들었달까. 보셔서 알겠지만 전 그렇게 눈치 보고 살진 않는데 반대로 저를 불편해하는 사람하고 억지로 자리를 함께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정희 씨도 그런 고민이 있었네요.”
”지들도 나이 들어 보라고 그래요. 근데 어쩌겠어요. 저도 예전에 상사가 같이 밥 먹자고 하면 그렇게 싫긴 했어요. 먹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취향에 맞춰줘야 하고. 돈도 각자 계산하고. 차라리 요즘 같은 분위기가 더 나을 수도 있어요.”
”그렇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왠지 마음은 허해요. 그래도 오늘 저녁 같이 먹어줘서 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우리 만나 볼래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기습 고백이 들어온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너무 빨리 뛴다.
”아니 무슨 남자가. 이렇게 강단이 없어. 얼굴은 또 빨개져 가지고.”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그렇죠. 살면서 이런 적이 없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계속 생겨서 그만.”
”제가 좀 즉흥적이긴 해요. 그냥 오늘 보니까 나쁜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사실 소개팅 걱정 엄청 많이 했어요. 혹시 능구렁이 같은 남자면 어떡하지 하거나 이것저것 깐깐하게 따지기만 하는 사람일까 봐요. 일부러 좀 제가 이것저것 멋대로 얘기 꺼냈는데 잘 맞춰준 것도 고마웠고요.”
”만나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