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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y 06. 2024

그냥 써 보는 이야기 9

그녀와 사귄 지도 벌써 3개월째. 만나면 만날 수록 더 좋아지기만 한다.


"오늘 언제 올 거야?"

"퇴근하고 가면.. 저녁 8시 정도 될 거 같은데?"

"좀 더 빨리 오면 안 돼? 밖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데이트하고 싶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미안. 오늘 그것도 진짜 빨리 퇴근해서 가는 거라서. 대신 이따가 밖에서 술 한잔 하자."

"치~ 알았어! 그럼 파이팅!!"


지금 만남이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할 거라는 건 서로가 알고 있다. 다만 먼저 말을 꺼내면.. 우리 관계는 거기까지가 될 거 같아 서로 숨기기 바쁠 뿐.


그녀도 날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결코 정상적인 관계로 만날 수는 없다.




{4개월 전}


"오? 멋있어졌는데! 몸은 또 언제 키웠어? 어디 함 만져볼까? 흐흐."

"아 왜 이래 형. 그냥 물렁해. 살이야 살!"

"아닌데. 뭐야 힘주는 거 봐? 야.. 장난 아닌데?"


오랜만에 만난 상현이 형은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호회 선배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자주 볼 수 없어 이게 얼마만인지. 도통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형도 좋아 보이는데?"

"당연하지! 오늘 너한테 소개해줄 사람도 있다."

"누구?"

"아. 있어. 좀만 기다려라. 넌 차~암 참을성이 없어. 가만히 형만 듣고 기다리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느니라."

"뭐래."


그래도 오랜만에 저녁 식사하러 나오니까 좋긴 좋네.


"어! 여기야 여기!"


갑작스럽게 큰 소리로 누군가를 향해 형이 외쳐서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향한 곳에는 여자 두 명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뭐.. 뭐야 형? 소개팅이야?"

"짜식아. 소개팅은 무슨. 형 여자 친구 생겼다! 캬하핫."

"저.. 정말?? 형이???"

"아 그렇다니까. 저기 오네."


두 명은 어느새 우리 쪽 테이블까지 걸어왔고 밝게 웃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현영이라고 말했다.


"민호 씨죠?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제 보네요."

"아.. 안녕하세요."

"뭐냐. 왜 니가 내 여친 보고 얼굴을 붉히냐 이놈잇!"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상현이 형의 여자친구 현영 누나. 밝게 웃는 모습이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다. 누나가 데려온 친구는 내 옆에 앉았지만 어색해서 별 대화 없이 술만 기울였다.




"야 이 개XX야!!! 넌 진짜 사람새X도 아니야!!!!! 너란 놈을 동생이랍시고 챙긴 내가 병X이지. 다신 연락하지 말고 둘이 알아서 잘 먹고 잘 살던 맘대로 해!"

"혀.. 형.."

"형이라고도 부르지 마! 이 @#$@#$@#$@#%@!!!!!"


그래.. 내가 미쳤지. 내가 미친 거야. 후- 너무 힘들다. 나도 의도한 게 아닌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이야. 어느샌가 옆에 다가온 누나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자기야~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상현이랑 난 애초에 끝난 사이였어. 걔가 또 뭐라고 해?"

"뭐.. 내 잘못도 있지."

"뭐야아! 나랑 헤어지기라도 하겠다고?!"

"그럴 거였으면 내가 누나랑 만나고 있겠어? 같이 있으면 이렇게 좋은데."


한참 동안을 그렇게 껴안으며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 이건 나도, 누나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민호 씨.. 혹시 연극 좋아해요?"

"연극이요? 많이 보진 못했는데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왜요?"

"그럼.. 저.. 티켓이 생겼는데 볼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내일 퇴근하고 같이 보러 갈래요?"


워크숍 이후로 부쩍 친해진 같은 팀 동료 민혜 씨가 연극표를 가지고 왔다. 뭐 특별한 부탁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


"네. 좋아요. 내일은 뭐 특별한 약속도 없었는데 잘됐네요."

"정말요!!?? 좋다!!! 내일 저녁도 같이 먹어요!!"


저녁은 늘 누나랑 먹댔는데.. 에이 그래도 뭐 하루쯤은.


"네네. 저녁은 제가 살게요. 먹고 싶은 거 있음 생각해 놔요."

"네~"


사실 회사에선 내가 커플인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해서. 그런데 민혜 씨랑 약속을 잡고 나니 괜히 좀 찔리긴 한다. 그래도 뭐. 정말 연극만 보려는 거니까.




"야? 누가 강민혜야!!!!! 어디서 남의 남자친구한테 집적대!!!!!! 당장 안 나와?!"

"저..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한데. 누구 찾아오셨어요?"

"강민혜 데려오라고오!!!!! 아아아악!"


일은 갑작스럽게 터졌다. 회사 복도에서 누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다며 회사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리고 있었다. 마침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서 무슨 일인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그게 나 때문이었을 줄이야..


다행히 민혜 씨는 연차휴가 중이어서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마음이 조금 진정된 누나는 스스로 물러났다. 대신 내 폰에 문자가 와있었다.


[민호야. 미안해. 말도 없이 네 회사에 가서 추한 꼴을 보였네. 어제 너 폰 봤는데 강민혜라는 애랑 만나는 거 같더라?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차마 너네 회사라 니 이름은 떠들지 않았거든? 퇴근하고 좀 보자. 1층 카페에서 기다릴게.]


'뭐?! 아까 전에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게 누나였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혹시나 이상하게 소문이 나면 어쩌나 싶어 손이 덜덜 떨렸다.




얼마 전에 알게 됐다. 누나가 나 몰래 상현 형 하고 다시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일부러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나도 누나도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쓴 상태로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나면 분명 좋기는 좋은데. 대체 우리는 왜 만나고 있는 걸까?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언제 올 거야?"

"퇴근하고 가면.. 저녁 8시 정도 될 거 같은데?"

"좀 더 빨리 오면 안 돼? 밖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데이트하고 싶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미안. 오늘 그것도 진짜 빨리 퇴근해서 가는 거라서. 대신 이따가 밖에서 술 한잔 하자."

"치~ 알았어! 그럼 파이팅!!"


우리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그런데 난 아직 분명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


"민혜야. 나 오늘은 선약 있어서. 먼저 갈게."

"아~! 뭐야아.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했었잖아."

"미안. 좀 급한 일이라서."

"알았어. 이따 전화할 거지?"

"응. 당연하지. 그럼 연락할게~"


짐을 챙기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빨리 가서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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