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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y 11. 2024

캐나다 이야기

[살면서 영하 30도 이하의 날씨를 겪어본 적이 있나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어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캐나다 중에서도 중부에 위치한 새스커툰이라는 곳이었다.


오래 하진 않았지만 회사에서의 삶에 지쳐 있던 터였고 스스로에게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기였는데 마침맞게 이종사촌이 새스커툰 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여행 겸 이민까지 고려할 생각으로 무작정 캐나다로 떠났다.


당시 영어 실력은.. 음.. 흠흠.. 인사말 할 줄 아는 게 전부였고 5 형식에 맞춰 문장을 만드는 것도 할 줄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태로 캐나다로 가겠다고 한 것 자체가 나름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기와 별개로 캐나다에서의 삶은 현실이었고 영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내게 낯선 타국은 꿈과 희망을 주는 곳은 아니었다.


당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여러 공항을 경유해서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직항 대비해서 몇 십 만원을 절약할 수 있어서였다.


하필이면 수많은 항공사 중에 EVA 항공을 이용했는데 대만 항공사라는 것도 당일에서야 알았다.


인천공항 - 타이베이 - 밴쿠버 - 새스커툰 공항까지 이렇게 이동했는데 시간도 거진 20시간 가까이 걸렸었다. 지금처럼 허리랑 관절이 안 좋은 상태에서는 가고 싶어도 이 방법으론 도저히 못 갈 거 같다.


그래도 에바 항공을 이용해서 좋았던 점은 경유지인 타이베이에서 대다수의 승객이 내리면서 좌석이 남아돌았고 나 혼자 2-3칸을 쓸 수 있어 누워 갈 수 있었던 점이다. 아마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겼던 것이리라.


난생처음 도착한 밴쿠버에 내려서는 삼촌과 잠깐 공항에서 만났는데 새스커툰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여유 시간이 있어서였다.


10년여 만에 만난 삼촌과의 만남은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색하기도 했다. 우리는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봤고 미소를 띠며 인사를 나눴다.


"얼마나 걸렸어?"

"한 13시간 걸린 거 같은데요. 하하. 긴장돼요."

"뭘 긴장하고 그래. 영어는 좀 하니?"

"전혀요.."

"으이그. 공부 좀 하고 오지 그랬어. 삼촌이 용돈 줄 테니까 이걸로 좀 이따 식당 이용하고 팁도 주고 경험해 봐. 그럼 삼촌 일하러 가야 해서 간다. 나중에 밴쿠버에서 다시 보자."

"네 조심히 가세요."


오랜 기간 요리사로 일해온 삼촌은 자영업을 준비 중인 상태 셔서 바빴지만 내 방문 소식에 기꺼이 공항까지 와서 챙겨주고 가셨다. 삼촌과의 만남은 따로 예정돼 있던 게 있지만 지금은 분량상 패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삼촌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는 거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시간이 참 빠르구나.


여하튼 삼촌이 준 돈을 가지고 처음 들어가 본 식당은 공항에 있던 [White Spot]이라 쓰여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뭐.. 잡아먹기야 하겠어?'


용기 내서 들어갔는데 메뉴판을 들고 오는 웨이터를 보는 순간부터 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고 그가 말하는 말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 주술같이 귓가를 맴돌았다.


"Yes! Yes!!"

"???"


느낌이 좋지 않은지 웨이터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워줬다. 일단 사라지고 나면 메뉴판을 한번 살펴볼 요량이었다.


메뉴를 읽는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가볍게 버거 종류 중 하나를 시켰다.


"This. This. Thank you."

"@#$@#$@#$"

"OK. Thank you."


뭔진 모르지만 퀘스트가 완료됐고 햄버거가 나왔다. 뭐 별건 없네? 안심하고 한입을 베어 물었는데..


"윽.. 겁나 짜.."


반도 못 먹고 음식을 남겼다. 아무래도 음식을 잘 못 시켰나? 내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메뉴판에 있던 대로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


"#$@#$"

'wait?이라는 거 같은데 기다리라고?'

"#$@#$@#$ tip @#$@#$@#$"

'아.. 팁! 그래 이건 사전에 좀 알아보고 왔지. 근데 맛없게 먹은 것도 팁을 줘야 해?'


내 행동이 갑갑한지 웨이터는 알아서 받고 싶은 팁 금액을 글씨로 써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의 패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해 버렸는데 음식점을 나오는 내내 찜찜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맞나?'


당시엔 지금처럼 번역 어플이 잘돼있지도 않아서 순수 실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던 거 같은데 그러기엔 내 실력은 Lv.0에 가까웠다.


'뭐..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훗. 나도 이제 레스토랑에서 주문할 수 있는 남자가 되었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법한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괜히 뿌듯해졌다.


식당을 나오고 이동하면서 문득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영어도 못하고 행색도 비루하고 마인드도 너덜너덜해지니 피로감만 몰려왔다. 빨리 새스커툰에 도착해 짐을 풀고 쉬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사촌이 있다. 그가 나의 구원자가 될 것이다!!


새스커툰에 도착만 하면 장밋빛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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