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9 걸음

by 고성프리맨

평소 때와 다름없이 시작한 하루였다. 아내와 난 여느 날처럼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지이이잉-


"잠깐만. 전화 좀."

"응."


운전에 집중하느라 잘 듣진 못했지만 좋지 않은 소식임을 단번에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아내의 친구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셨대.."

"..."


때론 그 어떤 말보다 잠시의 침묵이 더 나은 선택일 때가 있다.


"버스는 있어?"

"찾아봐야지."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연고지가 없는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약간의 수고로움이 생기기도 한다. 연락하는 지인도 이럴 때마다 미안해하곤 한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서겠지. 그런 것과 무관하게 경조사는 챙기려 한다. 특히 조사와 관련해서는 좀 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오랜만에 들려오는 소식이 부고 소식인 경우가 제법 생기곤 한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떠나 부고 소식이 전해주는 무게는 늘 무겁다.




아내의 친구. 본명을 말하긴 좀 그래서 K라고 부르겠다.


아내를 알기 전부터 난 K를 알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며 알게 된 사이였다. 부서와 직무만 놓고 봐서는 접점이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사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는 친해졌었다. 그렇게 모임을 가지던 중 우연히 지금의 아내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부부의 연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 인연의 시작점. 그래서인지 아내도 나도 K에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K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자리에서 바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졌다. 피하기 위해 멀어진 것이 아닌 정말로 삶을 바삐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그렇게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더니 꽤나 긴 시간이 흐르도록 만날 기회가 없었다. 가끔씩 아내를 통해 듣는 간접 소식이 전부였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K도 우리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건네 듣고 비슷하게 안도하진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였던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아마도 부친상을 겪고 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나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 기억이 그러니.)


당연하게도 처음 겪는 부모 중 한 분의 상이라 정신이 없었다. 외동으로 자랄 땐 몰랐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형제자매가 있는 누군가가 부러웠다. 큰 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같이 나눠서 짊어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생각했던 때였다.


조사라는 게 그렇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이할 때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 하지만 기계적으로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솔직히 무슨 기분이었는지, 무슨 상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잘 버텨냈구나 싶은 생각뿐이었다.


뒤늦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추슬러지고 난 뒤였다. 아마 K도 그런 정신없던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을 거다. 그리고 난 무표정하게 혹은 황망한 모습으로 응대를 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누구에게도 물어보거나 들은 적은 없어서 정확히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왠지 K도 그날의 나처럼 황망해하고 있지 않을까?


거리가 가까웠더라면, 이곳에서의 해야 할 일이 없었더라면 당연히 나도 갔어야 했다. 몸의 피곤함은 둘째치고 어쭙잖은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보태러 갔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를 조문 보내놓고 아이가 잠든 뒤, 홀로 스탠드 등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이유 없이 노트북을 켰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일까? 빈 화면에 글을 써야겠다 싶었다.


내 아버지는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K의 아버님은 폐암 때문이라고 들었다. 정확한 내용은 추후 아내를 통해 듣게 되겠지만 암이라는 재해로 나도 K도 결국 가족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부위는 달라도 전이가 일어난 뒤 겪게 될 혹은 겪었을 과정들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환자에겐 직접적인 고통의 시간이 주어졌을 것이고,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말 못 할 고통이 뒤따랐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을 수도 있고, 지금껏 함께해 온 시간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커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위치에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혹은 감당하기 어려울 크기의 고통을 나눠가지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부친상은 후회의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언제나 차가운 아들이었고, 결혼 후에는 특히 그 온도가 더 낮아졌었다.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떠나시고 나서도 난 여전히 차가웠다. 그래서 후회했다.


나는 내게 눈물이 없는 줄 알았다. 조문하는 내내 단 한순간도 슬픈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의 눈엔 그런 내 모습도 슬픔의 다른 표현으로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조문의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랐다. 차갑고 불효한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듯했다.


발인을 하러 가면서까지도 내내 차가움을 유지했다. 그렇게 화장을 거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차가움은 녹지 않을 것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시간이 되자 예정대로 화장이 진행되었다. 이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나오는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부자지간으로 만났던 우리의 모습 중 한 명은 사라지게 된다.


관이 이동해 불길이 치솟자, 갑자기 내내 얼어붙어 있던 차가운 마음이 깨져버렸다. 토해내듯 나오는 울음과 함께 그렇게 나의 차가움도 같이 화장되었다.




K는 어떤 마음일까. 살아생전 그녀의 아버지는 K에게 살가웠을까? 그리움으로 남게 될까? 후회로 남게 될까?


직접 만나서 물어볼 수 없기에 글로 남겨본다. 내 대신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의 친구지만 나와도 연이 있기에 어쩌면 다소 선을 넘은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부디 K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아픈 마음도 잘 추스르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성스레 모시기를.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다시 얼굴을 보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K가 이 글을 안 읽게 될 확률이 높겠지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덜어내기 위해 글로 남겨 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멀리 고성에서, K에게 마음을 담아서 어쭙잖은 위로의글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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