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간

78 걸음

by 고성프리맨

오랜만에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가족과 함께 있는 삶도 행복하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기쁨도 있다.


며칠 전부터 자유 시간 동안 뭘 할지 고민해 봤다.


1. 카페 가기

2. 맛있는 거 사 먹기

3. 책 읽기

4. 영상 보기

5. ...


생각보다 떠오르는 게 별로 없네. 막상 자유가 주어져도 고작 3-4개 정도에서 버킷 리스트가 멈춰버렸다. 이게 바로 멍석을 깔아줘도 못한다란 거려나.


딱히 따지고 보면 평소에 하던 거랑 별 차이도 없는 행동이다.




"이따 데리러 올게~"


드디어 자유시간이다‼️


막상 시간이 생겼는데 뭘 하면 좋을지 막막해졌다. 전에 생각했던 대로 카페나 갈까 싶었는데 잠시 검색해 보다 관뒀다.


'집에 가면 커피 머신도 있는데 굳이 혼자서 갈 필요가..?'


일단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돌아오면서 맛있는 거나 사 먹을까란 생각도 잠시 해봤는데, 생각만으로 그쳤다. 배가 그렇게 안 고프기도 했고 애매한 시간대라 점심도 저녁도 아니게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집에 들어왔다. 에어컨을 일단 켜고 얼마 전에 아내가 구매해 준 의자에 몸을 뉘었다.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함을 느끼다 보니 이내 입이 심심해졌다.


'커피?'


이럴 땐 커피가 제격이다.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칼로리도 0이고 심심한 입을 잘 달래준다.


까드드드드득-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졸졸 소리와 함께 검은 물이 컵으로 쏟아졌다. 준비한 얼음을 컵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좋다.'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처음 한 일인 커피 내리기는 만족스러웠다. 이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남은 자유시간은 고작해야 1-2시간 정도. 그렇다고 크게 초조하진 않다.


이제부터 고민인데 뭘 하면 좋을까? 그러다가 문득 못다 한 일이 떠올랐다.


'아.. 안돼.'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해버리면 자유시간은 1시간 내로 줄어들 게 불 보듯 뻔한데. 머릿속에 들어온 일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 유튜브를 실행했다.


자극적으로 쓰인 제목을 넘겨가며 뭘 볼까 하다 어딘가에 시선이 고정됐다.


[나중에 볼 동영상]으로 분류된 카테고리 속 콘텐츠였다.


해당 기능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쉽게 설명해 보자면 '지금 보기는 싫고 언젠가는 보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찜해둔 영상 목록이다.


언제 이런 것까지 찜해뒀었나 싶은 영상의 섬네일이 눈앞에 있었다.


영상이 방영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3년도 작품이었으며, 주제는 광화문 네거리. 공교롭게도 그 시기의 나도 광화문에 있었다. 영상도 마침맞게 광화문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어서 내적 친밀감이 살짝 생겼다.


11년 전 영상이라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워 보이는 구석도 있었다. 당시엔 전혀 그렇게 느껴본 적 없었는데 지금 보니 나름 많이 바뀌었다 싶었다.


다른 무엇보다 영상 속에 나온 사람들의 나이에 관심이 갔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도 있었고 훨씬 많은 사람도 있었다.


과연, 1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단발성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반인이기에 그 뒤의 모습은 알 수 없었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고 나니 여운이 남았다.


11년이 지난 지금, 광화문에서 생활했던 내가 고성이라는 곳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될 줄 알았던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는데. 인생은 알 수 없구나.


아차.. 영상이 꽤나 길었던 탓에 남은 자유 시간이 많이 줄었다. 길어봤자 40분 내외로 남았으려나.


갑자기 잊었던 일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젠장..'


결국 끝내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싶어 노트북을 켜버리고야 말았다.




"끝!"


노트북을 덮었다. 역시나.. 자유 시간이 끝나버렸다. 여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

"응. 이제 데리러 가야지."

"#$@#$@#$@#$@#$@"

"으응. 가고 있는 중이었어."


거짓말이다. 이제 출발해야지.


"@#$@#$@#$@#$"

"알았어. 알았어. 빨리 갈게~"


끝나버린 자유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는지 자꾸 시계를 쳐다봤다. 딱히 뭘 한 것도 없는데 지나가 버리다니.


주차장에 가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다. 예상도착 시간은 15분 남짓. 이제 15분 뒤면 완벽히 자유 시간은 역사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특별할 거라곤 하나도 없었던 2시간여의 시간도 안녕.


그렇게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자유 시간 중 한 순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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