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유가 없었을까?

77 걸음

by 고성프리맨

이유 없이 아플 때가 생긴다. 무릎이 안 좋아졌고, 속이 안 좋아진지도 오래됐다.


병원을 다녀봤지만 특별한 진단명을 붙여주지도 않는다. 돌아오는 답은 결국 [노환].


"무슨 40대 초에 노환이에요?"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아마 복합적인 문제겠지만 운동하지 않았던 습관 누적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육식 위주로 빨리 먹던 식습관도 떠오르고.


반대로 생각해 보면 위의 두 가지 정도만 개선해도 많이 좋아지지 않을까?


일단 속에서 받아주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식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아예 안 먹는 수준은 아닌데 과거에 비해 줄은 편이다. 여전히 육식에서 오는 즐거움을 끊어내고 싶지는 않다.


운동.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야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상태가 안 좋아진 부분은 과하게 운동하는 것보단 안쓰면서 악화를 지연시키는 게 더 낫다고 한다.


정작 필요한 하체 운동은 하지 못하고 있으며 간간히 상체 운동 위주로만 가볍게 진행 중이다. 정말 짧은 시간만 투자하는데도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던 목과 팔의 저림이 일부 완화돼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거.. 무슨 생로병사 같은 거 다루는 거예요?"


몸이 아파지면 안 좋은 점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별로라 생각 드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예민의 강도].


아무래도 아픈 상태가 지속되면 짜증이 많아진다. 별거 아닌 거에도 쉽게 폭발하기도 하고 내 상태를 몰라주는 주변인에게도 예민하게 군다. 당연하게도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에 나의 히스테리를 이해할 수 없다.


어른스럽게 묵묵히 참아 보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서운함을 혼자 감내하는 게 쉽지는 않다. 결국 예민함은 그렇게 주변에 전파된다.


"아프다는 소리 지겨워 죽겠어‼️ 제발 운동 좀 하고 관리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내뱉는 나도 그 말을 듣다가 결국 폭발하는 아내도 불쌍하다. 건강 관리를 게을리한 남편 때문에 무슨 화를 입는 건지.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려보려고 노력 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의 운동을 해보려고 시도 중이고. 음식도 양을 줄이려 노력 중이다. 오랫동안 내 몸에 쌓여온 악습답게 쉽게 고쳐지진 않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하긴 해야겠지.


이런 내 얘기를 들으며 어이없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원래 힘듦의 강도는 본인만이 아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내 비록 군대를 다녀오진 않았지만 사회 생활할 때 저마다 자기가 속해 있던 부대에서의 힘듦을 읊조리는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 누구 하나 고생하지 않았던 이가 없었다.


여하튼 이 모든 문제 중 80% 이상은 내 탓이다. 언제까지나 유지될지 모를 젊음만 생각하며 몸을 혹사시킨 것도 문제고, 게을러서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도 지분을 차지한다.


문득 30대 초에 만났던 40대 초의 팀장님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프리맨. 너도 40대 돼 봐라.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날이 올 거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저 술에 취해 떠드는 의미 없는 말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와닿을 말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당시 그 팀장님의 나이가 됐으니 지금쯤 어딘가에선 50대의 팀장님이 다른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있겠지?


연락도 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스쳐 지나간 연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만나게 된다면 얘기드리고 싶다.


"팀장님 말이 맞았습니다."


모든 40대가 나와 같진 않을 거다. 건강에 있어서는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기에 절대로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특히 요즘처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많아진 시대에서 나 같은 사람은 절로 혀를 차게 만들 테니.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제안을 몇 번 받은 적 있었다.


"여유되실 때 골프나 치러 갈까요?" 혹은

"등산 어때요?" 라거나.


감사한 제안이지만 어느 것도 수용할 수 없었다.


첫째로 골프는 비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여 있는 스포츠여서다. 가난하게 살던 습관은 쉬이 벗어지지 않는지 감히 '내 주제에?'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실제로도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감사한 제안이었지만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걸 하기 위해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걸어 다니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로 등산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보다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싫어하기도 했고 특히 벌레가 욍욍 거리며 달라붙으면 호들갑 떨기 바빴다. 지금은 몸 상태도 뒤따라주지 못하고. 결국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아쉬운 점은 있다. 아이들은 한창 팔팔할 나이다 보니 이것저것 경험을 해야 하는데 집돌이인 나로 인해 페널티를 받고 있구나 싶다. 그렇다고 둘이서만 산에 갔다 오라고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보호자가 보호자 역할을 잘 못하니 애먼 아이들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내 얘기는 쏙 빼고 말하지?"


그렇구나. 아내에겐 입이 열개라도 할 말.. 할 말은 있다. 단지 많이 미안할 뿐이다.


"와.. 진짜 어디 나 같은 사람 있을까? 결혼을 잘 못해서 인생을 조지.."

"어허!"

"아무튼 그래. 좀 많이 억울해. 맨날 아프다고 하니까 내가 다해야 하잖아. 다른 남편들은 말이야! 욍알앵알-"


융단 폭격이 시작되려 한다. 이럴 때면 최대한 죄인 모드로 있거나 선수 쳐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같이 지낸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전자의 방법이 후자보다 훨씬 생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되도록이면 쥐 죽은 듯이 있는다.


아내도 사람인지라 한번 마음속에 응어리 진 울혈 한 덩어리를 토해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 보인다. 그 뒤로는 대체적으로 불만은 있지만 잠시 동안은 그러려니 하며 체념의 단계로 접어드는 거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남편으로서 많이 미안해진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별개로 뒤따르는 행동이 없기에 입만 산듯한 사탕발림을 잘못하면 더욱 따가운 눈총을 받게 돼서 잠자코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건강에 대해서는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방법을 알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생을 살아감에 있어 건강을 포기하면 모든 걸 잃은 것과 다름없다고 누군가 얘기했던 것도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는 조금 더 몸을 움직이고 식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말 뿐으로 그치고 나면 결국 모든 업보는 다가올 미래의 나와 우리 가족이 짊어지게 될 테니. 그것은 결코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조금 더 많은 추억과 행복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정신 차리고 수신에 힘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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