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칭자의 최후

86 걸음

by 고성프리맨

절대로 모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른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직접 경험한 것 사이의 거리는 멀다.


[참칭 - 나무위키]

- 참칭(僭稱)은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 임금이라 하거나 분수에 넘치는 칭호에 대해 스스로를 가리키는 것을 말하는 가치판단적 의미를 담긴 단어이며, 넓은 의미로는 사칭에 포함될 수도 있다.


한때는 [참칭자]였었다.


"아니. 그거 별거 아니잖아요. 뭐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구만." 이라거나

"아.. 내가 잠깐 해 봐서 아는데~" 라기도 했던 거 같고

"해보진 않았지만 오래 안 걸리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ooo까지 해줘요!" 라며 마침표를 찍기까지?


분수를 몰랐다. 해야 할 일의 범주를 넘어서 잘못된 판단도 많이 내렸다. 더 큰 문제는 잘못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어설프게 아는 지식은 스스로를 망치는 지름길이었는데, 좁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 모든 걸 맞추려 했다.


반발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 그 마저도 뭘 모른다며 강요를 강요했다. 어째서 돌이켜보면 이토록 오점 같은 것들이 계속 생각나는지. 함부로 열심히 살았다거나 잘 살았다고 말을 꺼내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남이 아닌 스스로 내리는 결론 중 참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겠다 싶은 건, 기분 탓일까?




여전히 참칭 하게 될 때가 있다.


때로는 나이를 들먹이고, 경험을 끄집어내며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특히 아내에게 그럴 때가 있다.


"또 시작이야? 아니 오빠가 해온 일이랑, 내가 했던 일이 전혀 다른 일인데, 왜 자꾸 안 맞는 기준을 들이밀어? 들이밀긴‼️"

"앗.. 아.."

"확!"


퇴사 후 다행인 점 중 하나는, 가장이 된 아내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게 됐다는 거다. 이전 같으면 결코 내 의견을 쉬이 접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가 그립냐고?


"그건 절.대.로. 아니에요. 절.대.로."

"강한 부정은 뭐다?"

"..."


가만히 아내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아무래도 붙어 있게 된 시간이 많아져서겠지만 그녀가 움직이는 동선을 비롯해, 하는 행동, 말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어온다.


"그만 좀 지켜봐‼️ 아 나이 먹더니 왜 이래?"

"아니 그냥. 해본 말인데."


아니 진짜로 그냥 멍하니 보여서 본 것뿐이고, 들려서 들은 것뿐인데.


"억울하네?!"

"조용히 해."


더 이상 우리 집의 참칭자는 내가 아니다. 어느 순간 예전의 명성에 누를 끼칠 정도로 누추해져 버렸다. 하지만 고압적이고 선 넘던 내가 아니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신기하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아직 갈 길 멀었거든?"


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순간을 모면해 본다.




수영을 할 줄 모르다 보니 물에 대한 공포심이 상당한 편이다.


한 번은 집 앞에 위치한 해수욕장에 [구명조끼+튜브]와 함께 입수했더랬다. 보통 발이 땅에 닿아야 안심이 되는 편인데 그날따라 기분이 올라가서는 자꾸만 멀리멀리 발걸음을 옮겼다.


"어.. 어.. 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억???"


아차! 하는 순간 발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진입해 버렸고, 순식간에 몸이 공포를 느끼며 굳어버렸다. 구명조끼를 착용 중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튜브에만 의지한 채 공포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형님네가 여름휴가로 놀러 왔던 터라, 근처에서 같이 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줒세.. 어푸루푸푸루뤂"


형님은 첨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난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인데. 한참이 지나도록 나의 장난질이 멈추지 않자 짜증이 난 형님이 결국 날 구해냈다. (사실 짜증내진 않았던 거 같지만..)


발이 닿는 곳까지 구원의 손길에 이끌려 도착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 살았다."

"아니 뭐 하는 거예요? 구명조끼도 입고 있고 튜브도 있는데. 파도가 치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떠올리면 내게 공포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뭐라 콕 집을 순 없지만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두려움이 몰려온다고 해야 할까?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은 몸에 힘을 빼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래 힘을 빼자.. 지금부터 힘을 빼보자. 힘을 빼는 것이다. 힘을 빼보아요?


그럴수록 평소엔 잘 들어가지도 않던 힘이 온몸을 딱딱하게 만들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참칭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것이 있다.


온몸에 힘을 빼야 물에 뜰 수 있듯,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꼰대력을 버리고, 좁은 시야를 자꾸 벗어나려 노력할 때 비로소 편안해지리라. 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오력.


"그렇게 잘 알면, 지금부터라도 참견 좀 그만해."

"하하. 난 지금 참견에 대해 말하려던 게 아닌데-"

"야이.."


두 번째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저절로 이뤄진다는 것. 오늘도 새롭게 자연의 법칙 하나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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