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망이 이야기

115 걸음

by 고성프리맨

쫄망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생 시절까지 함께 지내온 반려견의 이름이다. 처음부터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지는 않았었고, 원래 그녀의 소속은 주인집 식구였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집에서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서 주변을 수소문한 끝에, 우연히 우리와 연이 닿았던 거 같다.


첫인상은 치와와답게 귀여웠다. 머리가 둥글었으며, 작고 앙증맞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의 성질은 대단했는데, 주인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눈을 부라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언제나 예민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멍! 멍! 으르르르! (다가오면 물어버리겠다 닝겐!)"


짖는 소리를 해석할 수 있었다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매 순간 예민하게 만들었을지 알았을 텐데, 아쉽게도 개와 인간 사이의 제2외국어는 도저히 배울 방법이 없었다. 단지 몸으로 부딪쳐가며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난 깊은 동질감을 느꼈고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짖음은 사라졌으며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서로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랬었다고 믿고 싶은 내 마음이 더 클 테지만.)




초등학교 3학년은 돌이켜보면 힘든 시기였다. 길러주시던 증조할머니의 품을 벗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살게 된 시기였어서라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거 같다. 하루아침에 사는 환경이 변한다는 건 아이에게도 큰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전학을 가야 했고 그로 인해 친했던 당시의 친구들과는 연이 끊어졌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 교류했던 친구들의 이름조차 떠오르질 않는다. 아쉬웠고 슬펐다. 하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쫄망이도 그랬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저기 많이 떠돌이 신세로 살았다고 했다. 조그마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 예민함으로 인해 그녀가 더 떠돌면서 살게 된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결국 함께할 수 있게 된 계기였으니 나로선 행운이란 생각뿐이다.


떠돌던 치와와와 뒤늦게 부모와 함께 살게 된 초등학교 3학년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던 게 아닐까. 서로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슬픔의 정서를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싶단다 쫄망아.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미용을 시켜줘 본 적이 없었다. 애견문화라는 게 지금과 사뭇 다르기도 했고, 우리 집 형편 상 알았더라도 시켜줄 수는 없었을 거 같다.


식사도 우리가 먹는 식단 그대로 먹었고, 살던 집은 자주 빨지 않아 언제나 까맣게 때가 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미안했다. 잘 관리해 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났더라면 개고생 하지 않고 살았을 텐데. 하필이면 왜 우리 집에 와서..


언젠가부터는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인 거 같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거 같다. 그때는 밖으로 끄집어내러 다가가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느라 안 나왔던 반면, 이번엔 해탈한 듯 혹은 귀찮아서 나오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쫄망이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하지만 나와 함께했을 때부터 성견이었으니 그리 적은 나이는 아니었을 거다. 강아지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이해도까지 적다 보니 맨날 내 생각과 느낌대로만 대했던 거 같다. 어쩌면 진짜로 나이가 많이 먹어서 기운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고려치 않고 나오라며 끄집어냈던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쫄망이가 기운을 차렸는지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끼이잉~ 끼잉."

"이게 뭔 소리지?"

"쫄망이가 문 앞에서 낑낑 거리는데요?"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와 살면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는데, 마치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것처럼 들렸다. 어째서인지 난 그게 못마땅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밖에.


"잘된 일 아니냐. 쫄망이도 동네 산책도 하고 좀 해야지. 맨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것도 얼마나 갑갑하겠어."


나와 달리 아버지는 쿨했다. 약간의 TMI지만 우리 집은 대로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공단이 위치해 있는 탓에 덤프트럭이 쌩쌩 달리는 게 다반사였다. 아마 나의 두려움은 혹시나 분별력이 떨어져 쫄망이가 대로변에서 참사를 당할까봐 였으리라.


"끼잉.. 끼이잉."


그녀가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문을 박박 긁었다. 나의 욕심만으로 계속 가둬둘 수는 없으니 결국 문을 개방했다. 쫄망이는 환하게 웃으며 헥헥거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토끼도 아닌 것이 깡충깡충 뛰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우리 집 현관문은 늘 반쯤 열어 놓게 되었다. 물론 저녁 시간에는 닫아 놨지만 낮 시간 동안은 열어 놨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늦은 오후쯤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디를 가는지? 뭘 하는지? 그런 건 알 수 없었다. 철저히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문을 열어놓지 않았던 어떤 날은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컹컹!"

"아이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어라? 근데 왜 바깥에서 개소리가 나지?'


자세히 들어보니 바깥에서 우리 집 문을 벅벅 긁어대는 소리도 들렸다.


"아니 어떤 개XX가 문을 긁어?!"


화가 난 아빠가 문을 벌컥 열자, 새까만 검둥이 녀석 하나가 혀를 길게 내빼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쫄망이가 꼬리를 흔들며 그 녀석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리더니 둘은 멀리 사라졌다.


"친구가 생겼나 보구나."


'나 외에 다른 친구가 생겼다고?'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당시 내겐 쫄망이만 생각하며 하루 종일 놀아줄 여력이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생 3학년의 차이는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나도 나 나름대로 많이 바빴고, 그녀 또한 그녀의 일상을 지내느라 바빴던 거다.




"컹컹!! 커커커커커엉! (개의 언어라고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건가..)"


익숙한 검둥이의 목소리가 아침부터 들려온 그날은 주말이었다.


'문이 안 열려있나?'


매번 닫혀 있으면 쫄망이를 찾아오던 녀석이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으로 향했다.


"어?"


문은 열려 있었고, 바깥에서 검둥이가 헥헥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이런 일은 처음인데..'


문밖으로 나가자 검둥이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난 제2외국어인 개의 모국어와 소통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껴졌다.


'나보고 따라오라는 거구나.'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잠깐 뛰다 뒤를 보며 "컹컹!"거리 고는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은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해 기찻길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둥이의 짖음은 멈춰버렸다.


'설마..'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봐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좀처럼 놀랜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검둥이가 멈춰 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쉽다는 듯 계속 코를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아보다가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컹컹..(흔적이 여기서 끊겼다 닝겐. 나로서도 도리가 없어.)"


그렇다면 쫄망이는 어디로 간 것인가?


몇 시간이 넘도록 검둥이와 다시 또 찾고 찾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엄청난 상실감이 몰려왔다. 텅 빈 쫄망이의 집을 멍하니 쳐다봤다. 있어야 될 존재가 사라져 있었다. 분명 하루 전만 해도 함께 같은 공간에서 있던, 언제나 만날 수 있던 존재였는데.


"아마도 자기 묫자리를 찾아다녔는가 보구나."


듣고 싶지 않았다. 문을 열기 시작한 처음부터 느껴졌던 불길함은 결국 이런 결말이 일어날 걸 느껴서였을까?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일상을 살아가지 않을 이유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쫄망이가 사라진 그해로부터 지금까지 쭈욱 살아왔다. 그렇게 어느덧 40대가 되었구나.


동네에 지인 부부가 기르는 강아지가 있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보게 될 때면 다가가서는 쓰다듬어주곤 한다. 체구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과거에 강아지와 함께 지냈던 기억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강아지를 쓰다듬다 보면 이따금 쫄망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아마 가출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 시기까지 살아 있기란 쉽지 않았을 거다. 강아지의 기대 수명이라는 게 있으니 결국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긴 했으리라.


과거엔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 때문에 마냥 슬프기만 했었다. 진작부터 해주지 못했던 많은 것이 생각나 아쉬웠으며, 후회하기 바빴었다. 그래서 생각하면 괴로웠고, 괴로움을 느끼기 싫어 마음 한편에 애써 너를 집어넣어 버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 너를 생각해 보니, 즐거웠던 기억이 주로 떠오르는 거 같다. 함께해서 행복했던 추억, 내게로 와줘서 고마웠던 기억.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너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는 세월도 많이 흘러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널 추억하지만 그래도 당시 힘들었던 내게 다가와줘서 고마웠다고 마음을 담아 얘기해 주고 싶었어. 미처 명복도 제대로 빌어주지 못했던 거 같은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고마웠어.


[이미지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6182500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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