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건가?

118 걸음

by 고성프리맨

휴일.. 특히 샌드위치 데이라고 휴일 사이에 평일을 끼어서 쉬는 쾌감은 짜릿했었다. 그 맛에 중독되다 보니 지칠 때면 언제 휴일이 다가오나만 체크하기도 했었다.


때로는 연초 혹은 연초가 되기 몇 달 전부터 내년 휴가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까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계획대로 쉬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막상 휴일 당일이 돼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집에서 쉬려 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오빠만 돈 벌어? 나도 벌잖아. 육아까지 거의 내가 다하고‼️"

"내가 더 벌잖아. 더 벌려고 노력했을 건 생각 안 해?"

"말이 안 통해. 맨날 똑같아. 지겨워 죽겠어! 혼자 살았어야 될 사람이 괜히 결혼해서는‼️"


우리의 본모습을 모르는 타인이 보기에는 그럭저럭 평범한 가족을 일구며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였겠지만, 알게 모르게 내면의 문제는 쌓이고 있었다. 서로를 위한 배려도 부족해졌고, 되려 이해 못 하는 상대방에 대한 아쉬움만 주야장천 내뱉었다. 그리고 혼자서만 생각했다.


'다음번 휴일에 이 모든 걸 만회하고 말겠어.'라고. 그리고 지켜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셀프 고해성사였을 뿐이었다. 다시 문제는 반복됐고, 해결책은 없어 보였다.




휴일이 되어도 특별히 한 건 없었다. 주로 동네 산책이 전부였는데, 아이들이 어린 핑계를 대며 유모차로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었다. 다행스럽게도 동네에 작은 하천, 큰 하천이 있었기에 잠시의 산책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긴 했었지만, 특별히 어딘가로 놀러 나갔던 적은 없었다.


"오빠. 다른 사람들은 잘 놀러 다니던데.. 우린 뭐야?"

"다른 사람 의식하지 말자. 우리끼리 좋으면 됐지."

"매번 똑같잖아. 동네나 다니고.. 오빠가 운전이라도 할 줄 알면 근교로라도 놀러 가볼 텐데. 그것도 안되잖아."


운전은 언제나 짐이었다. 자신도 없었고, 차를 사게 되면 유지비가 늘어날 거란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다. 가끔 있는 친척모임이나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할 때도 운전을 할 수 없다 보니 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주로 장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거나, 형님 차를 얻어 탔었다. 면목이 없었다. 특히 장모님께는 지금도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운전은 40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차가 필수인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반강제로 배우게 된 것이다. 연수를 받고, 차를 구매하고, 인도받기까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운전을 한다고?'


가끔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신기할 때가 있다. 한때는 절대로 못할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필요에 따라서는 하게 되는 거구나.


그렇게 차를 얻게 됨으로써 들어가는 유지비는 올라갔지만, 더 이상 이동하는 문제로 우리 부부가 다툼하는 일은 없어졌다.




긴 추석연휴를 맞아 형님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거리 문제로 예전보다는 덜 만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연중행사처럼 간간히 보고 있다. 대부분은 형님 가족이 휴가로 놀러 와야만 가능하게 되었지만.


형님(아내의 오빠)의 첫인상은 살짝 무서웠다. 나보다 연하이긴 하나, 아내의 오빠이고 연애시절 내 행동을 못마땅해했기에 대면이 두려웠었다.


"오빠. 긴장돼?"

"후우.. 아니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후우.."

"아니긴 무슨. 한숨 엄청 쉬네. 원래 결혼 전에 인사하는 게 어렵긴 하지."


연애의 끝이라는 결혼이란 걸 해보기 위해 아내의 집 앞에 도착했다. (연애의 끝이 결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엄청난 중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들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띵 - 동 -

철컥-


"어서 와요."


구면이었던 장모님이 맞아주셨다. 아차.. 이때는 장모님이 아니었었지. 그래도 그냥 이해해 주시기를.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집안에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압박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과 형님이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날 대체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버텨낸 나 자신아 "칭찬해.".


기억에 남는 형님의 말 한마디가 있다.


"어? 안 이상하네? 너한테 얘기 들었을 때는 무슨 썩어 빠진 사람일 줄 알았는데. 멀쩡하잖아?"


아내는 대체 나를 어떻게 소개했던 것일까. 물론 연애시절 집까지 데려다주지도 않고 매너라고는 챙기지 않았던 내 모습을 이해받는 게 쉽지는 않았겠구나. 형님의 저 한 마디가 칭찬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님부부, 우리 부부는 같은 해에 결혼식을 올렸었다. 첫 아이도 같은 해에 낳았으며 여러모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연은 여전히 끈끈하게 지속되는 중이다.


물론 끈끈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막상 만났을 땐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편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냥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시선으로 상대를 재단했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고, 만나는 것 자체가 즐겁지는 않았었다. 모르긴 해도 형님도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우리는 만나면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깊숙이 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괜히 끄집어 내진 않는다. 그래도 알고 있다. 우리는 꽤나 좋은 사이라는 것을.


형님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에 가깝다. 무뚝뚝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행동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기에 볼 때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하며, 급구 말려도 집안 청소까지 해주시곤 한다.


내게도 누구보다 고마운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형제가 없는 내 곁에서 끝까지 도와주셨었고, 가계 빚으로 허덕일 때 돈까지 빌려주셨었다. 단순히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고맙다고 느끼는 나도 참 그렇긴 한데, 평생을 의심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내 성향이 이런 걸 어쩌겠는가. 늘 경계심에 가득 차 다가오는 이에게 가시 세우던 나를 좀 더 둥글게 만들어 준 형님. 매번 말은 못 해도 감사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글을 쓰다 보면 1인칭으로만 주로 쓰게 되는 거 같다. 당연하게도 3인칭으로 쓸 정도의 역량이 없어서인데, 다른 누구를 떠나 여전히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 몫한다.


처음에 나에 대해 쓸 때는 [가공]이 우선이었다. SNS에 행복한 모습을 주로 올리는 것과 비슷하게, 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도 어려웠다. 굳이 부끄러운 모습을 써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텐데 쓰면 쓸수록 그런 면을 더 쓰게 된다.


'왜일까?'


나에 대해 많은 사람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데, 어째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인칭의 시점으로 나에 대해 쓰고는 있지만 사실 그 또한 글을 쓰는 도구로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나라는 사람을 이용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나름의 내면화를 시도 중인 건 아닐까?

3인칭으로 쓰기 전에 최대한 1인칭의 시점을 활용해 연습 중인 건 아닐까?


답은 모르겠다. 이런 문제에 답이 있을 거란 생각도 딱히 들지는 않고.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40대라는 시간적 개념이 적용된 나를 활용해서,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리라는 것.

옳고 나쁘고, 좋고 싫고가 아닌 그저 보이고 느끼는 대로 현상을 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수양의 과정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것.


쓰고 나니 한 가지가 아니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는 내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부끄러운 기억도, 좋은 기억도 남기기를.


"오빠? 아직 휴일 남았는데 뭐 해?"

"어..? 글 쓰고 있었지."

"또 취해 있었어? 그만 좀 취하고, 현실로 돌아와. 우리는 따로 휴일 없는 거 몰라? 청소나 가자!"


그렇지. 청소 가야지. 아.. 글 쓰느라 청소 생각 안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말이야.


"청소 가기 싫다고 속으로 생각 중이심?"

"그럴 리가 없잖아 ^^"


자.. 오늘도 부지런히 운전해서 청소하러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어쨌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추석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결론이 이상하지만 전달하고 싶었던 느낌은 얼추 기록한 거 같으니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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