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걸음
자랑에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해주는 것 없이 자랑만 일삼다 보면 괜히 미운털이 박힐 수 있음에 관한 이야기. 그 굴레에서 보잘것없는 나 또한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은(본인은) 태생적으로 자랑이라는 걸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유명인을 비롯해 다수의 사람이 자랑 한번 잘못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에잉. 초심을 잃었네."
"쯧쯧.. 그러게 조심했어야지. 왠지 요즘 위험해 보이더라니."
"참 이상해. 그냥 조심해서 욕심내지 말고 살면 됐을 텐데. 뭘 그렇게 티를 내려고."
어째서일까? 그런데 멀리 갈 것도 없이 과거의 내 모습 중에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집을 샀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래도 가진 거 없이 누군가의 집을(정확히는 아파트다.) 부러워만 하던 사람이 집을 사게 되자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10대 20대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부러움과 시기 어린 눈으로 바라봤었다. 집의 형편을 아는 이상 부모님께 그런 마음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상처만 생겼을 테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와 자주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부동산에 올라온 가격을 살펴보고는.
"우리 아파트에 살아볼 수는 있을까?"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언제 벌어서 사."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란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곳이었다.
그 뒤로 나름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어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만, 우리는 바짝 허리띠를 졸라매고 약간의 궁상(?)을 떨며 미래를 꿈꿨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이러저러한 타이밍이 맞아 대출과 함께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성했다.
"오빠.. 우리 어떻게 이사 오게 됐을까? 신기해.."
나도 마찬가지인 걸. 비록 대출은 많았지만, 그런 우울함 보다는 내 집을 갖게 되었다는 성취감이 더 컸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도 부르지 않았을 집에 [집들이]를 핑계 삼아 초대하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아내의 친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친구들은 이미 우리 집보다 아득히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었는데, 주제넘게 그 앞에서 자랑이 하고 싶어 졌었다.
마치 투자의 신인 양, 부동산의 고수라도 된 것처럼,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말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게 하면 할수록 자꾸만 살을 붙이고 싶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별 관심도 없는 쓸데없는 자랑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대출이 껴 있다는 이야기는 쏙 뺀, 가공된 이야기. 마치 SNS에 올린 피드처럼 좋은 면을 최대한 부각하는데 집중했었다.
마침내 나 혼자만 즐겁던 집들이 시간이 파하고 아내와 남았다.
"오빠.. 오늘 왜 그랬어?"
"뭐가?"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냐고. 애들도 다 아파트 살아봤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데.."
"아.. 응??"
'무슨 말이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을 너무한 후유증 탓에 이해력까지 저하돼 있었다.
"자랑 좀 그만하라고‼️ 부끄러워. 우리 갚아야 할 빚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아?"
"아니 내가 무슨 자랑을 했다고 그래. 그냥 집을 샀으니까 어떻게 산 건지 이야기 좀 한 건데.."
"그게 자랑이야 오빠.. 기쁜 마음은 알겠는데 적당히 해. 보기 좀 그래."
그때 아내가 해줬던 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집들이 대신 이제는 회사에서 집에 대해 자랑하기 시작했다. 자랑의 대상은 이제 막 결혼 준비를 하고 있거나, 신혼부부로 출발한 이들이 타깃이 되었다. 잠깐의 커피타임, 회식자리 등에서 틈만 나면 나의 자랑은 계속되었고 결국 뒷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 왜 저런데? 집 하나 샀다고 꺼드럭거리긴 재수 없어.
- 없이 살던 사람이 뭐 하나 가지면 그렇게 티를 내더라고 쯧쯧.
- 커피라도 한잔 사주면서 얘기하던가 지긋지긋하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낯 뜨거운 날 선 리뷰를 보게 된 순간, 뒤늦게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잃어버렸던 감각이 돌아오자 부끄러움의 쓰나미가 온 마음을 휩쓸어 내렸으며, 입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강아지는 범을 본 적이 없기에 무서움을 몰랐던 것이었다. 내게 득인지 독인지도 모른 채 낯 뜨거운 행동이나 하다니.
그 뒤로는 자랑을 하지 않았을까?
어디 하던 버릇이 쉽게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더 이상 집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지만, 다른 건수가 생기면 그걸 빌미로 자랑을 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행동은 부메랑처럼 내게 되돌아왔었고.
추석 연휴 때 일가친척이 모였을 때 싸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술도 한잔 들어간 상태에서 누군가의 자랑이 불씨가 되어 결국 싸움으로 번지는 이야기.
"오.. 그렇다면 다행이다."
"왜?"
"만날 친척이 없으니까 하핫."
"..."
요즘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죠?"
자랑거리가 한 개도 없기 때문이다. ^^...
어느 순간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 일렁거리는 욕망이 다 놓아진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조금은 더 편해진 느낌이 있다.
"도 닦으시나요?"
그럴 리가. 세속적임의 끝을 달리는 내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정말로 자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설령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이제는 예전처럼 티를 내고 싶지도 않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꿈꾸는 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
지금으로선 두 가지만 잘 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 혹시 또 모르겠다 꿈이 현실로 되는 순간 자랑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될지. 혹시나 미래의 내가 다시 또 정신 못 차리고 그렇게 되더라도 오늘 쓴 글을 되새기며 자중할 수 있기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함을 명심하자. 혹시 자랑의 상황이 생긴다면 반드시 [자랑 값]을 지불하도록 하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