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걸음
한동안 짧은 소설을 쓰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안 써 버릇하니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일상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게 쉬우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멋모르고 시작했던 소설 쓰기도 어쩌면 그 행운의 총량이 다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경험도 밑천이 존재하는 것이라 결국 소진되는 순간이 오는 거 같기도 하다.
"아껴서 썼으면 됐을 거 같은데."
반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모든 소재를 활활 다 태워버리고 0에서 새로 시작하는 글쓰기가 해보고 싶다고. 아껴서 쓸 것이 아니라 나 조차도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로 진입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여하튼 그런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빨리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걸 다 털어내버리고 싶었다. 그래야 새로운 걸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결과적으론 괴로움을 얻었다. 아무래도 경험해 왔던 게 많지 않아서였겠지만, 소재는 금방 소진됐고 이후부터는 쥐어짜 내거나 소재의 돌려쓰기가 주를 이뤘다. 물론 단 한 번도 똑같은 글을 쓰지 않았다고 감히 얘기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다른 작가는 어떨까?'
주변에 아는 작가가 없는 관계로 주로 브런치에 올리는 타작가의 글을 보며 간접경험을 해보곤 한다. 내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글로 풀어내는 포스팅을 발견하는 날엔 기쁜 마음으로 읽는다. 다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마음속 숙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비슷한 고민을 한다 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까지 같은 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아.. 다들 묵묵히 견뎌내는구나.'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것 혹은 글을 써내는 것. 쓰는 사람은 고민의 순간조차 글로 바꿔 표현해내고 있었다. 괴로운 순간이 더 많더라도 고민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글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괴로움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의 글 목록 중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느끼는 고민 중 하나는, 글쓰기가 힘들 때면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위치에서 글쓰기에 관해 글을 쓴다면 덜 부끄러울 거 같은데, 여전히 갈길이 먼 내가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쓴다니.. 쓴웃음이 지어졌다.
[초보의 마음은 초보가 아는 법]
문득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을 받았던 때가 생각났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한 반에 모여 수업을 받던 순간들. 의심도 많이 했었다.
'아니..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모여서 서로 대화 나누는 게 뭔 소용이람?'
쓸 수 있는 어휘도 한정적이고, 문장진행력도 한참 부족한 구성원끼리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수업 중에는 반드시 짝을 지어 일대일로 대화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눈웃음을 짓다가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대화는 이상하게 이어지긴 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선생님이 있어서였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날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게 연습을 하도록 유도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지만 지금은 내게 과거의 영어 선생님 같은 사람이 없잖아?'
잡생각을 하는 중에 아내가 말을 걸어왔다.
"오빠는 대체 왜 책을 읽어?"
잠시 잡생각 하느라 멍 때리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독서하는 모습으로 비쳤나 보네. 완전 럭키비.. (그만해!)
"어?"
꿈이었나? 아내는 마치 내게 질문한 적 없었던 것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하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환청이라도 들었던 것인가. 요즘 기가 허하다 싶었는데 보양식이라도 사 먹어야 하는 것인가.
"유레카‼️"
"아잇! 깜짝이야. 방에 들어가서 혼자 찌그러져 있어! 어딜 감히 내가 요리하는데 방해를 해!"
조용히 발걸음을 방 안으로 옮겼다.
'내가 왜 미처 몰랐었지?'
날마다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 '이걸 몰랐네.'
주요 습관 중 하나.
책을 읽다 인상적인 부분을 메모해 놓는 행동. 언제 해당 구문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를 떠나 어딘가에 기록해 놓는 것.
스스로의 경험은 한계가 존재하기에 필수로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인 [독서]. 그랬구나 그랬어. 그래서 내가 책을 읽고 있었구나.
당연히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행동이지만, 메모를 하는 행위는 독자와 작가의 중간자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간 매개체가 쌓이고 쌓여 결국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단순히 읽기만 한다 생각했던 독서 행위는 내게 필요한 글쓰기 과외 선생님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읽다가 메모하고 다시 또 글을 쓰는 것의 반복.
'지금의 내 레벨에서는 일단 이 과정을 반복해야겠어.'
마침내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들어올 때의 비루함과 달리 당당히 문을 열고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 뒤로 다가갔다.
"하하하. 답을 찾았어‼️"
"..."
"지금 얘기해 줄까?"
"..."
"내 말 듣고 있는가? 응답하라!"
"아 뭐!?@#$@#$@#$@#$@#$ 지금 나 바쁜 거 안 보여? 세 번이나 참았으면 됐지.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없냐! 내가 뭐라고 했는데? 어? 어??? 어어어엉??"
"아까.. 나한테 뭐라고 물어보지 않았었나..?"
"아니 전혀."
"저.. 정말?"
"어‼️"
요즘 기가 허해졌다 싶더니 결국 헛소리를 들었나 보네. 아니면 내가 듣고 싶었던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냈던 거였을까?
'뭐.. 상관없지.'
쓰기가 힘들수록 그만큼 읽는 것으로 채워 넣자. 부족함 투성이인 내게 현재 필요한 건 100가지 조언이 아니다. 읽고 쓰는 것의 반복, 지금은 깨닫지 못하는 쓰기의 정수가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반복해 보자.
'그러다 쓰기의 정수를 평생 못 느낀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