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걸음
[고구마 먹는 원숭이]
고구마를 갑자기 들어서 입에 넣어 먹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바나나를 던져서,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고 있어요.
- 초등학생 1학년 OOO
아이들이 깨는 아침시간은 보통 5시 - 6시 사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 첫째를 필두로 둘째도 벌떡 일어났을 게 눈에 훤하다.
화장실에 가야겠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뜨자마자 둘째가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피곤한 척하며 화장실로 향하려는데 나를 불러 세웠다.
"아빠‼️ 이거 읽어봐. 책 썼어."
"으응? 잠깐만 화장실 좀 갔다 와서 읽을게."
"칫!"
어제부터 뭔가를 끄적이길래 몰래 훔쳐봤더니 고구마 먹는 원숭이에 대한 얘기라며 둘이서 킥킥거리고 있었다. 1학기 때만 해도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태였던 터라 담임 선생님의 [지도요망]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었는데, 뒤늦게 재미가 들렸는지 다양한 단어를 써보려고 노력 중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한글에 대한 스트레스가 저만치 사라지자 둘째는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다.
첫째와 달리 둘째는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부터 성격이 확고한 편이었다.
"난 공부가 싫어. 안 할래."
"호오?"
본인이 좋아하는 원피스 만화의 루피처럼 패왕색 패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마주하자 말문이 턱 막혔다.
"진짜야. 공부하기 싫어. 다른 거 할래!"
"어. 알았어."
그 뒤로 우리 부부는 둘째에게 공부를 권유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어서라거나 걱정이 되지 않아서는 아니다. 대신 둘째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귀 기울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가 지내고 있는 고성으로 이사 오고 난 뒤에는 더욱더 열심히 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담임 선생님께서 우려 섞인 이야기를 전해오셨다.
- 저.. 아이가 밝고 참 좋은데요. 수업 진도를 못 따라가는 문제가 있네요. 한글을 모르다 보니 자존심 강한 성격에 자꾸 회피하는 거 같아요. 괜찮으시면 집에서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가까이서 지켜보는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때부터 둘째에게 한글만큼은 꼭 익혀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입으로만 가했다..)
"아.. 알겠다고요. 알겠어요. 그마안~"
하지만 그럴수록 둘째는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했고, 점점 더 하기 싫어할 뿐이었다. 웃으면서 도망 다니는 녀석을 붙잡아 놓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몇 번의 시도를 하다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한글을 익히리라는 기대감은 점점 사라졌으며, 담임 선생님께는 면목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랬던 아이가 책까지 쓰고 있다니, 기적이다. 물론 책의 내용이 엉성하다거나 맞춤법이 틀리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생각을 글로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변했고 이제는 길거리에 간판도 곧잘 읽고 있다. 이 모든 걸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부모여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한국인으로서 한글을 익힌다는 건, 때가 되면 해야 되는 평범한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엄청 빠른 나이에 한글을 뗀 것도 아니고.
"아이의 부모기 때문에 그냥 이뻐 보이는 거 아닐까요?"
맞는 말이다. 내가 아이의 아빠라서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도 당연하고 평범한 일일 뿐이지만 지금의 감정이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걸 어쩌겠는가.
원숭이를 떠올리면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붙는 게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바나나]다. 분명 원숭이는 잡식성이기에 바나나만을 먹고살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원숭이와 바나나를 영혼의 단짝처럼 생각하게 된 걸까?
먼먼 옛날 원숭이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원숭이들은 바나나가 주식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바나나 먹는 방법을 배웠답니다.
그래서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원숭이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최근 태어난 아기 원숭이 중에서 바나나를 못 먹겠다며 거부하는 원숭이가 생겼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숭이 왕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율령을 반포했습니다.
[앞으로 바나나를 먹지 않는 원숭이는 왕국에서 쫓아내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나나를 먹기 싫은 원숭이도 강제로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어린 원숭이는 바나나 냄새조차 역겨워서 맡기만 해도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럴수록 원숭이의 부모는 마음이 타들어 갔습니다. 여러 번 먹여보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구역질을 하는 아이 원숭이에게 차마 강제로 바나나를 먹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원숭이 왕님. 저기 마을에 바나나 먹기를 여전히 거부 중인 괘씸한 원숭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원숭이 왕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는 씩씩거리며 호위 원숭이들을 이끌고 집에 찾아갔습니다.
"당장 내 눈앞에서 바나나를 먹여라‼️"
결국 어린 원숭이는 왕 앞에 끌려와서는 양손과 발을 붙들린 채 강제로 바나나를 먹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바나나가 입 근처로 다가오자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고 아이의 구역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어허! 참고 먹도록 하여라. 바나나를 먹지 못하는 원숭이는 자격이 없다!"
부모 원숭이들은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닦아낼 뿐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얘야.. 바나나는 맛도 있고 몸에 좋단다. 너도 한입 맛보면 괜찮을 거다."
그저 왕의 행동을 받아들이기를 권유하는 말 밖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는 문득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역겨운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머.. 먹을게요. 팔다리를 놔주세요."
그 말을 들은 원숭이 왕은 비로소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뗬습니다.
"놔주거라. 그리고 어서 바나나를 먹도록."
아기 원숭이는 슬픈 눈으로 부모 원숭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바나나를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괴로워하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냄새를 견뎌가며 "꿀꺽" 마침내 바나나를 먹었습니다.
"맛있지 않으냐!?"
왕은 바나나를 삼킨 아기 원숭이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슬픈 눈으로 왕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원숭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바나나를 먹기 싫어했던 아기 원숭이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결국 억울하게 죽게 된 아기 원숭이의 사연은 원숭이 왕국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었고, 왕에 의해 강제로 선포된 율령도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기 원숭이를 불쌍히 여긴 원숭이들에 의해 매해 기일마다,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며 기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기 원숭이는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로 인해 원숭이 왕국에서 더 이상 바나나 먹기를 강요하는 문화는 사라졌답니다.
아이들이 대화 나누며 킥킥거리던 내용을 흘려버리기 싫어서 글로 써봤다.
세상에 정해져 있는 정답 같은 삶은 없지 않을까?
가끔씩 아이들을 보며 내가 옳다고 믿고 행동하던 생각을 교육이란 이름하에 주입시키려 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잘못 배운 진리를 정답이라고 믿었던 어리석은 나에 대해 반성한다. 바나나를 먹을 수 없게 태어난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먹여서는 안 되듯, 아이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라는 게, 곧 [나의 소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없다에 대해선 쉽게 말을 못 꺼내겠다. 다만 지금의 내 삶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살아가듯, 아이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의향은 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돕고,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면 거리를 둬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https://kr.freepik.com/premium-photo/monkey-eating-banana-isolated_1776819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