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걸음
갑작스러운 시작이 그렇듯,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된 나는 서툴렀다.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해."
많이 들어본 얘기처럼 미안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아내와 단 둘이 지냈기에, 단순히 연애의 연장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육아가 끼어들었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미리 준비도 하고 어떻게 개선하고 대처할지도 연구하던데. 어째서 난 이리도 천하태평일까?
여하튼 출산일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조금씩 실감이 들기는 했다. 아이가 자연분만으로 나오기 힘든 위치(머리가 위를 향하고 있었음)에 있어서, 일찌감치 제왕절개로 분만일을 잡아 놓았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왕절개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게 없었다. 단지 배의 어딘가 쯤을 열어서 아이를 꺼낼 거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야‼️ 생배를 찢어야 하는 내 기분을 알아?"
아내는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난 그저 옆에서 그러려니 하며 회사 일 생각만 했다. 무심한 남편 그 자체. 그런 내 모습은 점점 아내를 더 열 오르게 만들었던 거 같다.
"사람이 말이야! 바뀌기도 해야지! 맨날 지 몸만 소중하게 생각하고."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지금 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당시의 난 엄청 무서웠다. 혹시나 제왕절개 수술 끝에 아이나 산모 중 한 명만 살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별별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던 거 같다. 그래서 차마 입 밖으로 내 고민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머릿속의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보 같던 나. 시간이 지나고 산모와 아이가 전부 건강함을 확인한 이제야 털어놓는 마음의 소리기도 하다.
여하튼 시간은 흘러서 분만일이 다가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실 밖에서 대기했다. 마취주사를 맞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헤롱거리는 아내를 보자 안쓰러웠다.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야 오빠는!"
머쓱하네. 아내는 나를 잘 알아도 너무 잘 아는 게 탈이다.
"출산하셨습니다! 보호자분 오세요 빨리~"
"어.. 엇? 네네!!"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리는 데 긴급히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나왔다고?'
머리가 하얘졌다. 어떤 만남을 하게 될지 아무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준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로 오세요. 남아예요."
TV에서 보던 것처럼 우렁차게 "응애!" 하며 울고 있진 않았다. 아마도 제왕절개로 나오면서 그 과정은 이미 진행된 탓이겠지. 문득 내 눈엔 아이의 발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어..? 왜 아이 발이 보라색이에요?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아. 이거 발도장 찍어서 그래요."
그렇구나. 혹시나 피가 굳어서 보랏빛으로 변한 건가라는 생각을 했던 게 부끄러웠고 다행이었다.
"이제 옮길게요. 추후 일정은 천천히 설명드릴게요. 산모님 잘 보살펴 주시고요."
뒤이어 수술실에서 나온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취가 덜 깨어 있어서 어지러워 보였다. 눈가에는 살짝 울었었는지 눈물자국이 존재했다.
"고생 많았어."
"으응.. 아이 봤어?"
아내보다 내가 아이를 먼저 확인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응 이상해 기분이."
"뭐야 그게.. 으.."
"아파?"
"어.. 나 좀 쉴게. 병실에서 봐."
둘에서 셋이 되는 순간의 기억은 그렇게 경황없이 현실이 되었다. 이어서 부모님들의 방문과 아내의 친구들이 방문했다. 결혼식도 참 정신없었는데,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직접 낳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아이가 빈호흡 증상이 있네요."
"그게 뭐죠?"
"호흡이 정상 범주보다 가빠진 상태인데, 첫 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할 경우 그럴 때가 있어요. 지켜보도록 하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 또한 엄마는 처음이라 그 얘기가 충격이었던 거 같다. 아픈 와중에도 아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늦은 밤 결국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지금 가까운 소아응급센터 수소문 해놨는데 선택해 주세요. 계속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이동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올 게 왔구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내한테 이 사실을 얘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알겠네. 지금 바로 갈 테니 애 데리고 어서 병원으로 가게."
뒤이어 아내에게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말도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까지 흔들릴 수는 없었다.
"장모님 곧 오실 거야. 그리고 아이는 내가 잘 데리고 이동할 테니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는 오롯이 내가 안아야 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부모 대신 혹시나 잘못될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으리라. 평소 아이를 안아본 적 없던 난, 안는 순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고작 손끝에서 팔꿈치 정도까지도 안 되는 크기의 아이를 포대기에 감싸놓은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평상 시엔 찾지도 않던 신을 향해 기도했다.
'부디 무사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내 소원을 신이 들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무사히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커가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찾던 무수히 많은 신 중 한 분 정도는 들어준 게 아닐까?
소원의 대가로 내가 지불해야 할 게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가 건강하니 그걸로 됐다.
내 품에 안겨 응급실로 향했던 아이는 어느새 10살이 되었다. 주짓수도 배우고 있고, 로블록스도 미친 듯이 플레이 중이다.
"게임 좀 적당히 해‼️"
"아이. 여기까지만요."
"맨날 질질 끌기만 하고. 게임 지워버린다악!!!!!!!!!!"
"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하지마요"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나이를 먹으니 제법 반항기도 생겼다. 아직 사춘기는 멀었을 텐데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오기라도 하는 건가?
"오빠가 뭐라고 한마디 좀 해!"
아빠의 위엄을 보여줄 차례. 오오냐. 40여 년 살아온 중년 남자의 파워를 보여주마.
"이놈!!!!!!!!!!"
"정리했습니다."
"응?? 정리.. 했네?"
엄마 말에는 그렇게 토를 달더니, 내가 나서기도 전에 황급히 정리해 버렸다. 허탈하지만 아무튼 미션 성공!
가족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느샌가 둘에서 셋이 되고 넷이 되어버린 지금까지의 과정을 떠올려봤다.
"여전히 아빠는 처음이라 잘 몰라.. 허허."라며 뻔뻔하게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분명 10년 전 산부인과에서의 내 모습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 있지 않을까?
앞으로 10년 뒤에도 어쩌면 "여전히 아빠는 처음이라서.."를 시전 할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아이들이 날 많이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내가 유일하게 꿈꾸는 친구 같은 아빠 되기 만큼은 성공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