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걸음
Found footage를 직역하면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이다. 흔히 1인칭 시점으로 찍혀있는 형태로 발견된 캠코더나 장비를 발견하며 영상을 재생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공포 영화의 장르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상과는 다르지만 글도 어딘가에 흔적을 남겨 놓는다는 역할로만 보자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거 같다. 마치 미션을 완수하고 태양계 너머에서 방황 중인 보이저호에 실려 있는 [보이저 금제 음반(Voyager Golden Record)]처럼, 내 글도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기록 중독자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알 수 없는 의지(?)에 의해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계속해서. 물론 어떤 계기에 의해 지금의 행동을 멈출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며칠 전 서울대공원과 과천국립과학관을 다녀왔다. 두 곳 모두 오랜만에 다녀온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는데, 특히 과학관은 30여 년 전에 다녀온 곳이라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과학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천체투영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돔스크린 극장이었다. 동그란 돔 천장 전체를 스크린으로 만들어 놨기에 상영하는 영화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보이저]. 보이저 1,2호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길지 않은 상영시간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은 부족했지만, 어떤 내용을 보여주고 싶어 한 건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위에 이미지로도 첨부한 금제 음반이었다. 어딘가에 불시착해서 발견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금제음반이라는 인류의 흔적을 싣고 유영 중인 보이저호. 그 모습이 어딘가 나와 닮게 느껴졌다. 물론 보이저호는 인류에 대한 기록을 싣고 돌아다니는 중이니 사명감이 남다르겠지만.
그래도 보이저호의 상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족에게라도 언젠가 읽힐지 모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망망대해 같은 우주를 떠도는 것에 비하면 좀 더 희망적이지 않은가. 물론 읽어주지 않는다 해도 탓하고 싶진 않다. 그저 그럴 운명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 기사
발견되기까지 기록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기록에 대한 정의를 말하기엔 그 범주가 크니 감히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발견이 되지 않는 것 또한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을 남기려는 시도 중에 늘 두려운 것이 있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구속된 생각과 지식의 한계 내에서 표현이 되는 관계로, 결코 객관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것. 그래서 함부로 확언을 한다거나, 진리인 것처럼 글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별개로 내 손가락은 통제를 벗어나 자꾸만 욕심을 내려할 때가 생기는데,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두려워지곤 한다.
'편하게 쓰면 되지. 뭘 또 이리저리 재는 건지.'
아무래도 좋은 모습 위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려나? 소개팅 자리에 최대한 멀끔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멀끔함을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닐까.
- 너무 앞서서 생각할 필요 없어요.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니까요.
한편으론 나의 의도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쓴 글이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힐 텐데. 그리고 그의 시선과 해석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에 하나라도 글을 더 쓰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리라.
오늘도 내 눈엔 수많은 [파운드 푸티지]가 들어오곤 한다. 단문의 형태, 장문의 형태 혹은 영상. 모든 창작물엔 누군가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 설령 양산형이거나 AI를 활용하는 것이더라도 노력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어딘가의 스토리지에 저장되어서 발견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많은 푸티지들. 그 안엔 나의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해수욕장에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모래 알갱이가 존재하듯, 내 글 또한 해수욕장의 셀 수 없는 작은 모래 알갱이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모래는 모래놀이 하러 온 아이의 손에 쥐어져서 탑을 쌓는 재료로 쓰이고, 어떤 모래는 트럭에 실려 어딘가에 쓸모 있는 무언가로 재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일부의 모래는 제외한 나머지는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간택받기를 혹은 쓰이기를. 반대로 가만히 자리에 있기를 바라려나?
나의 글은 다른 이의 무엇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과연 읽히도록 간택받을 이유가 존재할까?
여전히 의문 투성이지만 결국 언제나 내 선택은 할 일을 해내는 것뿐인 거 같다. 끝이 안 보이는 산의 정상을 향해 내딛은 한 걸음처럼, 그저 할 일을 하자. 매 순간 다짐하고, 다시 다짐해 가며 쓰는 것에 충실하자. 이러한 일지에 가까운 글도 분명 누군가에게 간택받으리라 생각하자. 누군가에겐 지금의 글에 담긴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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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모스 부호를 써 봤다. 번역하면 그 유명한 [SOS]를 뜻한다.
- 지금.. 뭐 읽어달라고 시위라도 하려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그로를 끌며 조난신호를 한 번 보내보겠다. 어디 읽어주나 안 읽어주나 한번 지켜봐야지. 참고로 절대 강요가 아니다. 단지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모래 한알의 불쌍함 외침이라고 생각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