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걸음
"아르바이트 관둘 날짜 정해졌어."
말을 전하는 아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다닐 때는 힘들었던 점이 많았던 거 같은데, 막상 그만둔다 생각하니 속상한걸까?
"하아.. 기분이 이상해. 앞으로 또 다른 일이 펼쳐지겠지?"
내게서 딱히 답을 듣고 싶어 꺼낸 질문은 아니었다. 지금의 불안함, 서글픔을 떨쳐내고 싶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에 가까웠다고 느꼈다.
"고생 많았어."
"당연하지‼️ 그래도.."
평소처럼 씩씩해 보이려 했건만 다시 또 우울해지나 보다. 그 앞에서 백수 남편은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단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보자는 낙관론을 쏟아낼 수밖에. 가장 나다운 건 역시 무한 긍정하는 미래에 대한 시각을 설파하는 일.
"오빠는 참 대책 없어. 맨날 뭐가 그리 잘될 거 같다는 거야?"
"그러리라 믿는 거지 뭐. 안되면 뭐 어쩔 수 없고."
"그게 뭐야."
무책임과는 결이 다르지만 듣는 이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난 [생각의 힘]을 믿으려 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야말로 유일하게 불안한 미래를 헤치고 나갈 힘을 주리라. 그것이 나의 신앙이요, 원동력이다.
"아 몰라. 그래도 퇴사하면 이제 자유다!"
시원섭섭해하는 그녀의 슬픈 말을 뒤로하고 살포시 백허그를 했다.
"꺼져. 징그럽게."
다행히 평소의 아내로 돌아왔다. 정다운 지저귐을 들으며, 허그를 풀자 반개한 눈으로 살짝 째려보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슬픔도 바로 물리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진정한 나의 능력 앞에 아내는 기력을 회복했다.
"아 생각 좀 하면서 체험단 신청해‼️"
억울하다. 나름 동선을 고려하며 신청한 나의 계획을 진정 몰라준 단 말인가?
"아니 맨날 무릎 아프다면서.. 어딜 이렇게 싸돌아 댕기려고 그래? 체험단 하느라 하루를 갖다 바치는 게 맞냐고!"
"언제는 좋다더니."
"아니 그러니까.. 너무 먼 곳은 신청하지 말자 이 말이지."
체험단 활동을 하다 보니 조금 욕심이 나기 시작해서 활동반경을 조금씩 넓혔다. 원래는 근교 위주만 신청하댔는데, 전국구로 뻗어나가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달까? 그 결과 인스타그램의 내 피드는 온통 [#협찬] 태그로 도배되어 버렸다. 상업성 가득한 냄새.
- 뭐 협찬받았다고 자랑을 돌려서 말하는 중임?
처음에는 그랬던 시기도 있었는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적응이 되기 시작하자 큰 감흥은 진작에 사라져 버렸다.
- 공짜로 음식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닌가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일단은 [시간]을 써야 하고, 어찌 되었든 받은 것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줘야 하는 미션이 존재한다. 소상공인의 삶은 쉽지 않은데, 힘든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까지 지불해 가며 체험단을 써야 하는 사장님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안타까운 건 내가 인플루언서가 아니기에 일으킬 수 있는 트래픽이 한정적이고, 어느 정도 매출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해당업체 사장님의 무궁한 영광과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할 테니 예쁘게 봐주세요!)
'잠깐만.. 아내가 퇴사하고 나면 시간이 좀 더 생기겠네?'
"엉뚱한 곳에 신청하기만 해 봐. 절대 같이 안 다닐 테니."
"알겠어. 그래도 체험단 덕에 새로운 동네도 가볼 수 있어서 좋은데.."
"적당히 해라?"
'뭐.. 신청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닌데.'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항상 많은 모수로 지원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을 이해하려나.. 말로 설득하진 못하겠으니 일단 글로 남겨 놓자.
아내가 나와 같이 [시간 부자]가 되는 걸 환영한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같이 붙어 있을 수 있겠구나.
"3시간 만이라도 떨어져 지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는데.."
'나와는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사사건건 시비 걸고, 간섭하는 남편이라 미안해.'
"그만두고 나면 운동시작하자."
이 패턴도 벌써 십 년 정도 반복됐다.
"ㅁㅁ하고 나면 ㅇㅇ하자~"
보통 ㅇㅇ엔 [운동]이란 단어가 들어갔었다. 십 년 정도 운동을 지속해 왔다면 지금쯤 몸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야 되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한가. 거울 속에는 부정하고 싶은, 내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생물체가 비쳐 있을 뿐이다.
"이번엔 진짜로 해볼까?"
"그래 수영하자!"
"난.. 헬스 하고 싶은데."
"그럼 둘다하든가."
둘다할리가 없다. 분명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텐데. 이번에도 우리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인가?
"아니야. 이제 진짜 해야 해. 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알았어. 이번엔 뭐라도 해보자고."
의지박약 부부의 기약 없는 약속이 다시 한번 탄생하는 순간이다.
귀촌을 결심할 때 유행하던 키워드 중 하나는 [경제적 자유]였다. 경제적 자유를 위한 자산의 크기에 대한 의견은 늘 분분했는데 온라인 세상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준재벌에 가까운 사람만 존재하다 보니, 내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꿈일 뿐이었다.
가끔 귀촌을 한 우리를 보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신 거예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요.. 그냥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혹시 연고가 있으신?"
"... 무연고예요."
"..."
뭔가를 보고 배울 게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분은 내게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딱히 경제적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비전이 뚜렷한 것도 아니었으니. 게다가 귀촌 후 전업 백수 생활 중인 내 모습은 절대로 귀감이 될 수도 없다.
"하아.. 이 양반이 또또 신세한탄하면서 감성팔이하려고 하네?"
"감성팔이가 없다면 내 글의 70%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질 텐데. 다른 건 안 팔아도 감성만큼은 꼭 팔면 안 될까?"
"어휴.. 밥이나 차려."
"오늘은 밥대신 빵이야."
"아니.. 내가 빵 안 좋아하는 거 알아 몰라?!"
Let them eat cake!
그들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을!
-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지 않았던 말이지만 그렇다고 알려져 있는 말
"그래서 케이크를 준비했어."
"집어쳣!"
이제 아내가 떵떵거리며 가장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은 결국 나의 편이 될 것이다.
'어디 그때 가서 두고 보자고 ^^'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 예찬론을 펼치는 아내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