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사정(蓋棺事定)

132 걸음

by 고성프리맨

초등학교 시절 집에는 낡고 난해해 보이는 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취향에 가까운 책들이지 않았을까라고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다보니, 심심해서 못 견딜 지경이 되면 어느 순간 책 앞에 기웃거리는 날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시를 모아 놓은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유일하게 알고 있던 [이태백]이라는 인물 때문에 읽어 본적도 없던 한시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라도 쌓였던거려나?


한시도 시인만큼 그 길이가 길지는 않아서 읽기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여하튼 우연히 연이되어 읽게된 한시를 마주한 건, 생을 통틀어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말이다.


한시를 처음 접했을 땐 당연스럽게도 [이백(이태백)]의 시를 먼저 읽었다. 하지만 어린 내게 이백의 세계는 난해했다. 그렇게 헤매다 우연히 읽게된 작자 미상의 한시는 [십오종군정]이었다.


열다섯 살에 전쟁터에 나가, 여든살이 되어 돌아오다..

十五從軍征 십오종군정
八十始得歸 팔십시득귀


가슴아픈 일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었을테니 누군가에겐 현실이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내게도 세월을 뛰어넘은 먹먹함이 그대로 전해졌었다.




생각보다 집에 있던 헌책 중에 재미있던 책이 많았다. 다 쓰기는 좀 그렇지만 몇개를 추려보자면.


[애드가 앨런 포]의 작품선이 있었고 (특히 검은고양이의 첫 인상은 살 떨릴 정도로 강렬했다.), 오컬트와 각종 신화를 다룬 책이 있었으며, 김소월과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 있었다.


"아‼️"


그리고 단편소설도 꽤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전부 기억 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는 조금 안타깝지만 아버지가 왜 그런 책들을 모아놨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물어볼 수는 없으니 이젠 스스로 알아내야될 일이 되었지만.


평화롭게 TV를 보고 있던 주말 낮 시간. 브라운관 속에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 자막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이 무척이나 반짝거렸던 기억이 난다.


"뭘 보세요?"


내 질문에 별다른 답 없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참을 쳐다보던 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딱히 연이어 질문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러려니하고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소설을 써서 응모해보려한다."

"네?"


지금도 TV에서 광고나 자막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아버지는 방송국에서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를 한다는 걸 본 것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정말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다. 그전까지는 200자 원고지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보다 더 큰(두배는 되어 보였다.) 원고지를 잔뜩 사다가 집 한편에 쌓아놓으셨다.


그렇게 하루하루 글을 쓰셨다. 등교를 할때도, 하교를 했을 때도 계속해서 무언가에 홀린듯 써내리고 있으셨다. 어린 마음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그리 싫지는 않아보였다.




"다썼다."


꽤나 두툼한 분량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아버지는 필기체로 글을 쓰는 관계로 내 눈으로 읽기엔 너무나 힘들었지만, 왠지 대단해 보였다.


"당선만 되면 된다. 하하."


그날 아버지는 확신하셨다. 이 작품은 분명 당선되리라고.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소주를 사오시더니 한병을 비우셨다. 그리고 방송국을 향해 거침 없이 욕을 내뱉으셨다. 작품을 몰라주는 썩은 안목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이라며, 공모전 광고를 볼 때와는 다른 결의 안광을 빛내셨다. 그 뒤로 다시는 소설을 쓰신 적이 없었다.




딱히 사본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아버지가 당시 쓰셨던 소설을 읽어볼 기회는 사라졌다.


'무슨 내용에 대해 썼었던건지라도 물어볼걸..'


어째서 후회는 늘 뒤늦게 생기는지. 어느새 당시 소설을 썼던 아버지의 나이보다도 내 나이가 더 들어버렸다. 글과 소설을 쓰겠다며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성향도 유전이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蓋棺事定


쉽게 설명하면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도로 보면 좋으려나. 두보의 한시에 써 있는 문장으로 뜻은 [관 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안다.]라고 해석되어진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공모전에 떨어져 낙담하는 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차후의 문제. 공모전에 출품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하셨다고 이야기를 드리며, 다시 한번 써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그의 의지는 아들인 내가 승계받은 듯하다. 딱히 그러라고 시킨적도 없었는데, 어린시절 봤던 아버지의 글쓰는 모습이 이토록 오랫동안 내 속에 존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지금의 글쓰는 내 모습도 아이들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을까?


평가는 뒤로하고 그저 좋아하고 하고 싶다면 해보도록 하자. 비록 결과가 아프더라도 말이다. 아버지의 소설 쓰기가 훗날 아들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처럼, 지금의 내 행동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지속하는 한, 끝나지 않음을 명심하며, 오늘의 발걸음을 힘차게 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