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걸음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수련이 필수로 동반된다. 회사를 퇴사한 지도 3년 정도가 되었으니, 프로그래밍을 한지도 꽤나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아쉽지는 않다.
한창 일을 할 때는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면서 조급했었다. 늘 기술의 부족함에 허덕였었고 어떻게 하면 선두그룹의 뒤를 쫓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어쩌다 이리 태평해져 버렸을까? 지금이라도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면 의미가 있을까?
아쉽게도 [열망]이 사라졌다. 분명 한때는 불타오르는 무언가가 나를 이끌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하얗게 되어버린 재만이 당시의 흔적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강력한 불꽃을 생산해 내던 장작더미가 재로 바뀌고 난 뒤, 한때의 내 꿈도 하얗게 바스러진 재가 되었구나.
흔하디 흔한 퇴사자의 푸념.
꿈을 이루지 못한 자의 아쉬운 소리.
그렇게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 되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후회, 아쉬움.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의 결과를 내기는 어려웠으리라.
나의 가능성을 얕잡아 봐서가 아니다. 어느 순간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다 읽은 것처럼, 내가 했던 일의 결과가 눈에 보였던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래. 나 정도의 스펙으로 이 정도면 해볼만큼 해봤어.'
늘 불안했다. 언제나 세상엔 인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을 놓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과연 나는 이들과 어울리는 사람일까?'
혹시나 나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걸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었으리라. 한때는 한 공간에서 같이 웃고 반목하고 울던 당시의 동료들이 문득 생각났다.
이제는 시간도 꽤나 흘렀고, 더 이상 난 같은 산업군에 속해 있지도 않지만, 가끔은 이렇듯 과거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다들 성인이니 각자의 삶을 훌륭히 살고 있을 텐데 나만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려나. 내 생각은 여전히 3년 전의 퇴사하던 날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부침이 많았다. 회사라는 게 참 그렇다.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의 중심에는 [일]이 있었다. 일을 통해 엮인 사이가 아니라면 언제 모래알처럼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였다.
일을 잘하기 위해 혹은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의 희생과 인내가 있었다. 누군가는 괴로웠고, 누군가는 예민해졌으며, 누군가는 혹독했다.
- 회사가 그런 곳인 걸 어떡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말 중 하나였다. 실제로도 수많은 절을 싫어했던 난 여기저기 좋은 주지 스님이 있을 법한 절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지금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결국 이상적인 주지 스님을 만나진 못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주지 스님이 되어야겠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럴 깜냥도 안되고, 생각만으로도 골치 아픈 일 투성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늘 봐왔던 주지스님들은 하나 같이 대단해 보였다.
간혹 주지스님과의 독대 시간이 주어질 때면 내게 화두를 던지곤 했다. 물론 난 그런 독대가 불편하고 싫었다.
"어찌하여 주인의식이 없는 것이냐?"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허어.. 답답하구나. 불쌍한 중생이여."
굳이 내가 주지 스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내 이해도는 내게 맡겨진 직급에 머무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가늘고 길게 가자고.'
인생의 모토였다.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만큼만 티 안 나게 묻어가는 것. 적을 만들지 않는 것.
여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약간의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원래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생길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 후회하고 있나 봐요?
후회(後悔)라 하면 [늦게 뉘우치다]란 뜻이다. 딱히 뉘우치는 행동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으니, 후회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단지 아쉬움이 있었다 정도로 표현하면 어떠려나.
가끔 오늘처럼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쓰지 않고서는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여전히 메여 있는 과거의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
같이 일하던 동료들 중에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이제 적당히 좀 우려먹어요. 오래된 일이잖아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저 그렇고 뻔한 이야기가 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가끔씩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버리곤 한다.
'회피하면 될 일 아닌가?'
원래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내게 있어 과거가 그렇다. 돌이켜 생각해 본들 바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글로 토해내는 것. 기억이 닳아지도록 써내고 또 써내다 보면 언젠가 아무렇지 않아 지는 때가 반드시 오겠지.
이미 우려낼 대로 우려낸 티백에서는 슴슴한 차의 맛만이 느껴질 따름이다. 그렇게 계속 우려내다 보면 결국 순수한 물의 맛에 가까워지겠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쓰고 싶으면 쓰고 싶은 대로 써보자.'
그러다 보면 분명 과거로부터 초연해지는 순간이 오리라. 글을 쓰는 이유가 어쩌면 과거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려나? 그렇게라도 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피하지 말고 계속해서 받아들이자. 언젠가는 지금보다 좀 더 편한 시선으로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