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걸음
쓰는 글의 성향에 따라 찾아와 주는 이도 달라졌다. 사람마다 관심사는 다양하고, 그에 따른 읽고 싶은 글도 달라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글은 사실상 모두에게 외면받는 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글 또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타깃이 필요한 것은 확실한데, 어째서 알면서도 중구난방 식의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아직 내면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뚜렷한 나만의 색깔을 찾는 과정이라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어떻게 해야 나만의 확실한 색을 찾을 수 있을까?
글에도 [퍼스널 컬러] 같이 부담스럽지 않고 잘 어울리도록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방황 중인 걸까?
오늘도 답이 나오지 않을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막연하게 들어가고 싶었던 학과가 있었는데 [국어국문학과]였다. 특정 학문을 배운다는 게 해당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환상은 존재하는 법이다.
'저.. 국어국문학과 가보고 싶습니다.'
차마 이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보지는 못했다. 세상의 많은 부모가 그렇듯, 자녀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앞선 탓이리라. 나의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을 뿐이었다.
사실 부모 핑계를 댈 필요도 없긴 하다. 만약 뒤늦게라도 국어국문학을 배우고 싶었다면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그저 좋아 보이는 꿈을 잠시 꾼 것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꿈으로 간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이상적이도 않을 때가 많으니까. 그나마 기술이라도 배워서 직업을 구해 먹고살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아쉬움은 살짝 존재한다.
내 글은 어떤 느낌일까?
상당히 궁금하긴 하다. 그나마 유일하게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아내가 있어서 물어보곤 한다.
"어땠어?"
"뭐가?"
"아니 글 내용 이상하진 않았어?"
"어. 그냥 써."
"..."
좋다는 건지, 이상하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데. 하다 못해 개선점에 대한 피드백도 없고.
"내가 개선해 달라고 해도 바꿔지겠어? 그냥 쓰면 돼. 나보다 오빠가 더 잘 써. 안 이상해서 안 이상하다고 하는 것뿐이야."
"하. 하...."
바라던 감상은 아니지만 강요할 수도 없는 법이지.
계속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우거나 느끼는 건 어떤 것일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마음을 담아 쓰기만 한다면, 그렇게 계속 써나가다 보면, 깨우치게 될까?
자존감은 있지만 날마다 의심하고 작아진다.
'매일 나아지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상하게 글쓰기만큼은 나아진다 혹은 후퇴 중이다를 판단하기가 힘든 거 같다. 조회수나 좋아요 수가 그런 의미도 아닐 테고. 때로는 쓰고 나서 후련하게 느껴지는 글의 반응이 훨씬 나쁠 때도 많다. 반대로 찝찝함이 남아 있던 글이 좀 더 나은 반응이 느껴질 때도 있다. (여기서의 반응은 그야말로 미미할 정도의 수치를 의미합니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 중이랄까?)
'쉽지 않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데, 글에서 확실한 나만의 색을 구현해 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만약 대중적으로 혹은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색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무명 가수 중에 뒤늦게 성공한 경우를 살펴보면, 대중에게 먹히는 음색을 발견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처음부터 반응이 나오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이 사람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구나라고 인정할 것이다. 글이라는 걸 써보니 확실한 한 가지는 깨달았다.
내게 천부적인 재능은 없다는 것.
천부적인 재능이 없어서 슬픈 것도 아니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무수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고 느꼈다. 어쩌면 노력만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잠시 접어 놓겠다. 설령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 이성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오빠‼️ 또 시작했네. K 신파가 지긋지긋한 것처럼, 오빠의 무한반성도 문제란 말이야. 뭘 맨날 노오력 타령이냐고. 게다가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구만."
"아니야. 나 노력하고 있어. 날마다 쓰잖아."
"아니 그거 몇 시간 깨작거리는 게 전부면서. 오빠 팔자가 상팔자여 아주!"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맞는 말을 들으니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이.."
"이번달 오빠가 쓴 돈이 얼마더라.."
돈 얘기에 어디론가 도망치려던 정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 많이 썼나?"
"보자. 외식비가.. 히에에엑?!"
하나 고백해 본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혹은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며 맛있는 거 사 먹자고 아내를 꼬드긴 죄인이 여기 있다. 소비를 함으로써 스트레스 푸는 사람이 나였을 줄이야.
"이럴 거면 글 그만 쓰고 알바라도 햇!"
"아아.. 으아아. (대략 열심히 써보겠다는 말이다.)"
"에휴.. 내가 속아서 결혼했지. 다른 친구 남편들은 말이야-"
'어라? 설마 이것이 나의 색깔인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몰아치는 아내의 달콤한 말을 듣다 보니 알 수 없는 황홀경에 다다랐다. 보인다 보여. 나의 색. 나의 정체성.
이상할 정도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 삼았을 때 안 써지던 글이 술술 써지는 이 느낌.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뭐!? 또 내 디스 글이나 쓰려는 거야?"
"어허 디스 글이 아니고 이것이 당신을 향한 나의 [헌폭지침(獻曝之忱)]임을 알아주오."
"문자 쓰지 마라?"
늘 그랬듯 시작은 무거웠지만 끝은 가벼워졌다. 운동을 하면 상쾌함과 뿌듯함을 느끼는 것처럼, 글을 쓰면서 무거웠던 마음과 머리가 정리되는 이 느낌을 원했다.
하나 더 고백하겠다.
- 뭘 자꾸 고백해요? 이게 말로만 듣던 고백공격인가?
'보통 이처럼 진지한 느낌 또는 부족함을 내세우며 글을 쓰는 것 또한 나의 콘텐츠임을 알아주시기를..'
이렇게 색깔 타령하며 오늘도 뚝딱 글 하나 완성 히히. 썼으니까 오늘도 한번 즐거운 하루를 보내보자.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헌폭지침(獻曝之忱)
: 소박하고 보잘것없음을 뜻한다. 남에게 선물을 주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 겸양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직역하면 햇볕을 바치는 정성이라는 의미이다.
P.S 가끔씩 알아두면 왠지 기분만 좋을 고사성어도 하나씩 알려주는 유익한 글을 쓰고 있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