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불루 화이불치

143 걸음

by 고성프리맨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華而不侈).

『삼국사기』 권 23 백제본기 제1 시조 온조왕 편


살고 싶은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소비성향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언제 매장을 들러서 옷을 구경해 봤더라?'


최소 몇 년 전이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옷뿐만 아니라 물건도 사본 지 오래된 거 같다. 라기엔 그래도 전자기기는 년 단위로 한두 개는 사고 있구나.


확실히 시간이 흘러갈수록 소비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고 있는 건 맞는 거 같다. 소비가 줄어드는 이유엔 [버는 돈이 줄어들어서]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을 거 같다. 그렇지만 돈이 좀 더 여유로워진다 해서 과연 소비가 늘어날까를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을 거 같다.


대신 먹는 음식의 질을 올리거나 문화적인 경험에 대해 소비하는 비용은 예전보다 늘었다. 이 또한 소비는 맞으니 소비가 줄었다기보다는 소비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게다가 회사도 안 다니다 보니 굳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이유도 많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다닐 때도 옷이나 시선을 신경 써 본 적은 크게 없었던 듯한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마음이 자유로워지자 삶이 조금 가벼워졌다. 가벼워진 삶의 모습은 행색에도 드러나는지 자연스럽게 검소해졌고 이제는 그 느낌을 나답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진화로 치자면 현재에 맞게 잘 진화되고 있는 중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거울 보기를 참 좋아하는 편이다. 미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거울에 맺힌 나를 바라보는 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었다. 가끔은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아내에게 들킨다면 엄청 부끄럽겠지만 (사실 많이 들켰었다.) 막상 발견하더라도 한숨 한번 내쉬고 지나갈 것이다.


오랫동안 마주해 온 내 얼굴은 제법 나이가 묻었다. 그도 그럴 것이 40대에 들어섰으니 20대의 얼굴과는 다른 것이 당연하겠지. 한참을 보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점을 좀 뺐으면 좋겠는데.'라거나

'착색된 피부를 좀 바꾸고 싶어.'라고 하기도 하고

'주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라며 어딘가에 억눌려 있던 소비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딱히 누구를 만나 보여줄 일이 없음에도 가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검소해진 생활과 달리 화려하고 수려해진 외향을 꿈꾸는 나를 마주할 땐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화려(華櫚)하다는 형용사로서 두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눈부시게 아름답다. 화미(華美)하다.
2. 보통의 사람이 누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거나 눈길을 끄는 상태에 있다. 호화롭다.

Oxford Languages


누구나 가지고 싶고 해보고 싶은 욕망과 연관된 무언가를 행한다면 그의 삶을 화려한 삶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해지기 쉬운 가장 빠른 길은 많은 재화를 활용해 사치품을 구매하거나, 대단한 사람과의 인맥을 보여주는 일 혹은 남이 가지지 못한 부를 드러내는 일 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태생자체가 화려하게 태어나 저절로 이목을 끄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에 해당하지 않는 입장이라면 화려해질 수 없는 걸까?


화려함이란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함의 결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드러나는 화려함과 달리 은은한 화려함도 있지 않을까?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내적인 모습이 화려한 사람. 그중에서도 생각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삶.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 폭발적인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수단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창작자. 내가 바라는 화려한 삶을 사는 이에 가깝다.


당장은 화려하지 못하더라도 훗날 나비로 변해 잠시나마 날아다닐 수 있기를 희망하는 고치의 삶. 덤덤히 부화해 화려한 비상을 할 그날을 꿈꾸는 중은 아닐까?




생각해 보니 소설을 쓸 때 로그라인을 써본 적이 없었다.


로그라인은 이야기의 중심 갈등을 설명하는 TV 프로그램, 영화, 단편 영화 또는 책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종종 이야기 줄거리의 개요와 관심을 자극하는 감정적 "유인"을 모두 제공합니다. (위키백과)


우연히 쓸 수 있었던 웹소설을 떠올려 보니 상당히 즉흥적으로 썼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든 쓰면 되겠지라며 하루하루 억지로 써내리다 보니 마지막에 가서는 당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 방향까지 잃어버렸었다.


'어떻게든 써봤으니 됐지 뭐. 다음엔 잘해보자.'


이다음도 쉽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머릿속에 작은 상상이라도 떠올라 어떻게든 쓸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빈곤한 상상력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혹은 나태지옥에 빠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화려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쓰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지금 잘 쓰고 있지 못하는 거 보면 일단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이어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불편해진다.


단편단편으로나마 소재를 써보자 싶어 도전해 보기도 하고, 지금처럼 브런치에 일상 글이라도 꾸준히 써보긴 하고 있다. 어쨌든 맥이 끊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어떻게 하면 다시 연재를 시작해 볼 수 있을까?'


이전의 방법으로 쓸 수 없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글에서 [로그라인 써보기]의 중요성을 보게 됐다.


[쓰고자 하는 소설의 내용을 몇 줄로 요약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썼던 글부터 로그라인을 도출해 보자 싶어 떠올려 봤는데, 명쾌하게 떠오르는 문장이 없었다.


'정말 느낌과 직관에만 의존해 썼었구나. 이제야 나의 고집을 꺾고 조언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구나. 무조건 1화를 완결 지어야 글을 썼다는 편견을 버리고, 단 몇 줄의 로그라인부터 여러 개 완성해 보자.'


새로운 목표를 수립하게 됐다. 이 목표를 얼마나 잘 지켜나갈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일단 해보자. 그렇게 여러 개의 로그라인을 작성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 하는 게 생길 수도 있지 않으려나.


다시 한번 화려한 생각을 펼쳐낼 연재를 제대로 해볼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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