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걸음
"출근 안 해서 좋겠다!"
재택근무를 주로 할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할 수 있던 일의 특성상 재택근무는 어떤 면에서 축복에 가까웠었다. 이동 시간을 절약해 일어남과 동시에 바로 출근이 가능한 상황이라니. 더 이상 대중교통에서 이리저리 치일 필요도 없고, 비 오는 날 지각할까 봐 전전긍긍할 걱정도 없어졌다. 그저 주어진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아니 재택근무 하는 거 말고 님 말이오. 백수라서 좋겠다고‼️"
백수의 정의를 살펴보니 [백수(白手)는 만 19세 이상인 성인이면서 직업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여 있었다. 19세 이상이기도 하고 뚜렷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이 없으니 확실히 백수라고 지칭해도 되겠다.
일단 좋은 점은 출근할 일이 없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정신을 차리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괜찮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눈이 쌓여 빙판이 형성된 궂은 날씨에도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을 집에서만 보내니 특별하게 보내지 않기는 한다.
"듣다 보니 묘하게 기분 나쁜데..? 지금 널널하다고 자랑하는 건가?"
반대로 걱정되는 상황도 많다. 당연하게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생계비가 들어가는데 이는 현실적인 문제인 만큼 백수의 정의대로 정말 아무것도 안 하다간 거지꼴을 겪게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4인 가족인 만큼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는 않다. 지금처럼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사는 일과도 필연적으로 작별을 고해야 한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행복만이 남을 것 같지만, 삶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학생 시절 최대의 고민은 시험을 잘 보는 일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약한 과목의 경우, 출제위원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능력을 바란 순간이 있다. 당연히 그런 능력이 주어질 턱이 없으니 성적은 공부하는 만큼 나왔다. 오직 수능시험이 목표였고, 지긋지긋한 수험생의 삶이 빨리 끝나기를 고대했다.
성인이 되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학비에 대한 고민도 생겼고, 진로에 대한 고민, 군복무, 연애 모든 것이 괴로웠다. 오히려 시험 걱정 원툴이었던 고등학교 시절이 나을 지경이었다. 무엇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고 몸으로 부딪혀 알아가야 하던 암흑의 시기였다.
취업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취업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내 앞에 무수히 많은 경쟁자가 존재했으며 취업은 그저 첫발을 내디딘 것뿐이었다.
단편적인 모습들만 떠올려 봤음에도 언제나 삶엔 물음표가 존재했다.
지금 처한 백수의 상황은 사실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다 주말이 되기만을 고대하던 삶을 벗어났을 땐 '혹시 이게 정답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치열함 속에서 원하지 않던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살던 삶에서 벗어나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카타르시스 보다도 강한 쾌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주어지자,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로 목표가 변해버렸다.
비로소 하던 일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으며, 회사를 벗어난 내가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출근하지 않는 삶이 주어졌건만 고민은 늘어나기만 할 뿐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구나.'
'나의 일을 찾아야겠어.'
진작부터 미리 찾아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늦게 퇴사까지 하고서야 [나의 일]을 찾겠다니. 합리성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이가 없었다.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만만한 일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이라도 하다 보면 쉽지 않았다.
"못하겠어 포기."
"포기합니다."
"포기할게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포자기해 버린 일이 꽤 많았다.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시야는 좁아졌다.
'그렇다고 계속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데..'
여전히 고민은 진행 중이고 속편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나름의 발버둥질을 해보는 중이다.
"오빠. 누구나 다 노력해. 근데 요즘 많이 나태해져 보이는데? 정말 노력 중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한테 늘 그랬잖아.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 한다며?"
'잘하고 싶다. 잘하고 싶은데 도대체 무엇을 잘해야 하는 거지? 방향만 정해진다면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할 텐데.'
이 와중에도 핑곗거리를 만들어냈다. 스스로 정해야 할 방향성을 대체 누가 정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내년의 목표를 정해 보기로 했다.
1. 현실적인 일
2. 꿈꾸는 일
두 가지 측면에서 반드시 하겠다고 생각하는 일 한 가지씩 만들어내기. 다소 헐렁해 보이는 목표긴 한데, 지금 난 궁서체다.
'지금처럼 글 쓰는 일은 어디에 포함시켜야 맞는 거지?'
목표는 1이 되었으면 하나 현재는 2에 해당하는 일이니 [꿈꾸는 일]이 맞다.
"너무 안일하지 않아요? 솔직히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생도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 보기 힘든데요?"
안타깝지만 내 주변엔 문과생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문송하다]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와닿진 않는다. 단지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각 잡고 제대로 해도 빛을 보기 힘든다는 말을 한 건데.. 한두 살 먹은 양반도 아니면서 어째 그 뜻을 모르고 쯧쯧."
일단 [꿈꾸는 일] 하나는 찾았으니..
'아니지. 이건 원래 쭉 해오던 일이니까 새로운 [꿈꾸는 일] 하나를 더 찾아야 해.'
원점이다.
다른 걸 떠나서 현실적으로 하기 가장 좋은 일은 뭐가 있을까? 그 안에 [취업]은 빼놓고 생각하고 싶은데.. 찬밥과 더운밥을 가리는 걸 보니 여전히 배부른 상태긴 한 거 같다.
몇 가지를 추려봤다. 대부분은 온라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1. 블로그 운영
2. 온라인 스토어 운영
3. 영상 제작
그다지 새로워 보이는 건 없다. 접근성도 낮고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 이 중에서 2번은 현재 잠정적으로 쉬는 중이고 3번은 진행 중이다.
'좀 더 힘을 내서 2번과 3번을 활성화시켜 보는 게 어떨까?'
현실적인 일이라고는 하나 살짝 꿈꾸는 일과 경계에 있어 보인다. 게다가 꾸준히 지속하는 건 보통 정신력으론 쉽지가 않다. 아무리 시간부자여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건 여전히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겨내야지. 뭐 별 수 없잖아?'
그렇다면 일단 현실적인 일은 이렇게 해보는 걸로 정리하고, 다음으로 꿈꾸는 일에 추가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1. 각종 공모전 도전
2. 채널의 다각화
생각해 보면 쓰기만 할 뿐 도전해 본 적은 없었다. 나름의 이유는 존재했다.
"그게 말이죠. 가능성 있는 글은 알아서 먼저 연락 오니까, 연락이 없다면 재능이 없다고 보시면 돼요."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었다.
'내가 정말 글을 잘 쓴다면 먼저 다가와줬을 텐데.'
감히 행동으로 옮겨 보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혹시나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정말로 [재능 없음]이라는 낙인이라도 받게 될까 봐, 그래서 쓰고자 하는 마음까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도전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
두 번째로 채널을 좀 더 늘려보는 건데, 자칫 잘못하면 색을 잃어버리게 될 거 같았다.
'똑같은 내용의 글을 복붙 해서 여기저기 늘리는 게 도움은 될까?'
해본 적이 없으니 결과도 장담은 못하겠다. 그렇다면 영어 공부와 병행을 목표로 썼던 글을 영어로 번역해 올려 보는 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은 번역기를 이용할 거 같지만 이 또한 해보면 괜찮지 않을까?
대충 이 정도로 그럼 꿈꾸는 일도 정리해 보자.
"목표 잡는 게 영 어설퍼 보이는데.."
일단은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 결과는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예상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내년이 되어도 그리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지금의 내가 뾰족한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 수 없음을 안다. 단지 내년에도 지속력 있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현실과 꿈의 측면에서 하나씩 더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방향성을 잘못 잡아 실패를 한다면 뼈아프겠지만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단지 [달달한 응원]을 받기 위함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기록 또한 써 놓고 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바라는 바가 있다면, 부디 오늘 세운 목표를 꾸준히 하는 내가 되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