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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Oct 27. 2024

무채색에서 유채색이 되어가는 과정

150 걸음

"위기를 거꾸로 하면 뭐가 되는지 아십니까?"

"기.. 위..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 별 의미 없는 [기위]가 된다.


'잠깐만.. 정말로 아무 의미가 없을까?'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봤다.


???!!!


기위 - 어떤 시점보다 앞서. 다 끝나거나 지난 일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wordrow]


아무 의미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일 년 이상 매일 글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해 본 사람 손‼️


"지 자랑하려고 또 시동 거는구먼 -_-.."


그런 거 아닌데.. 일단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있다.


"뭐? 얼마나 변화가 생겼길래 그래?"


짜잔‼️ 놀랍게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기위]의 뜻을 찾아냈던 것처럼 억지로 유의미함을 한번 찾아볼까?


'흠.. 매일 쓰려는 습관? 아니 강박증상을 얻었다?'

'맞춤법을 조금 더 알게 됐다?'

'단어의 의미를 좀 더 찾아보려 한다?'


어떻게 보면 의미가 아예 없는 건 아닌가? 일단은 [꾸준히] 쓰긴 했으니 뭐라도 생기기야 했겠지. 그렇지만 그게 전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매일 글을 쓴다고 삶이 놀랍게 변하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것으로 인해 변화한다고 하던데, 어떤 [특이점]을 찾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면 내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쓰고 있는 방식이 잘못된 방향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배제시킬 순 없다. 흔하게 들었던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기에도 내 노력은 한참 부족하니 노력의 절대량 자체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투덜대질 말아야죠!"


원래가 투덜이 스머프 재질인지라 일단 징징 거리거나 투덜대고 나서, 다시 뭔가를 하는 편이긴 하다. 어차피 할 일이면서 일단은 티를 한번 내본달까?


그러니까 투덜거리고 징징대면서도 쓰는 거 같다. 어쩌면 그런 성향이 글을 쓰는 원동력인 듯 싶을 때도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거 아입니까?"


공산주의를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만큼은 인정이다. 기본적인 내 성향과 너무 잘 맞는달까. 물론 디테일의 차이가 중요해지는 구간부터는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 같은 행동의 주체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쥐를 잘 잡아 보는 게 우선이니까.




다시 한번 자문해 본다.


"정말로 일 년 이상 글을 써온 매 순간이 무의미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입을 떼어본다.


"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듣는 게 예의. 마법의 부사 [하지만]이 붙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저는 쓰고 있는 일상이 좋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래서 유의미하다는 건가요, 무의미하다는 건가요?"

"의미를 굳이 찾아야 하나요? 그냥 써서 좋은 감정이 생기고 마음이 비워지는 거 같긴 해요. 물론 금세 마음이 여러 생각으로 꽉 차버리긴 하지만.."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참으로 오래 걸렸다. 구불구불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길을 여기저기 헤매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못 찾는 것처럼,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 건 쉽지 않았다. 상상으로는 언제든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쓰고자 한다면 종이 앞에든, 노트북에 메모장이라도 띄워서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조차 해본 적은 없었다.


일 년 이상 글을 써온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했던가?


아마도 의미를 부여하는 기준을 어디에 뒀는지가 중요한 거 같다.


다시 한번 자문해 본다.


"글을 써온 순간이 진실로 무의미했다고 생각하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닙니다. 지금의 일상은 오랫동안 꿈꿨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글쓰기도 그런 순간 중의 하나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노력하세요."


얹었던 손을 내리고 감았던 눈을 떴다. 내 앞에는 흰 바탕의 빈 화면이 떠 있었다. 조심스럽게 키보드 위에 손가락 열개를 얹었다. 익숙한 감각을 느끼며 조심스레 한 글자를 쳐봤다. 한 글자의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뒤의 글자가 이어졌다. 글자는 모여서 단어를 이뤘고, 단어와 단어를 잇기 위해 조사를 붙였다. 그러자 문장이 되었다. 어느새 늘어난 문장을 보며 '어떻게 문장과 문장을 이어갈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문장은 결국 단락을 이루고, 단락이 모여 하나의 글이 완성됐다. 글이 완성된 순간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맞아. 이 느낌을 느끼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쓰고 있었구나.'


의미를 부여하자, 비로소 무채색이었던 글에 색이 입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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